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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농촌에서 아프다는 것

[한국농어민신문]

김현희 청년농부·전북순창

미련하고 게으른 초보농부는 올해 고구마 수확에 유독 시간을 많이 썼다.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고구마 수확이 지지부진 했고 그 사이 나는 초초해졌다. 밭에서 고구마가 어는 상상과 배고파진 멧돼지가 고구마 밭을 헤집는 상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마지막 밭은 염치불구하고 농사 선생님께 부탁해 경운기로 두둑에 골을 한번 탔다. 낮에는 고구마를 정신없이 줍고, 저녁에는 집 앞에 불을 켜두고 줄기와 흙을 털어내 컨테이너 상자를 비우는 작업을 밤늦게까지 했다.

목이 붓고 몸이 으슬으슬 아프기 시작했지만, 아파서는 안됐다. 날은 점점 더 추워지고 있었다. 약국에서 대충 약을 사서 먹은 후 아침에는 다른 농장에 가서 날일을 하고, 오후에는 전날 비운 컨테이너에 다시 고구마를 주워 담았다. 그렇게 마지막 밭까지 수확을 마치고 창고에 옮겼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오한이 찾아왔다. 밤새 약국에서 산 약과 죽을 먹으며 덜덜 떨었다. 먹은 약과 죽을 다 토하고선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아 순창의료원 응급실로 갔다. 토요일 새벽이었는데 응급실은 조용했다. 병상에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고, 간호사 한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열을 재니 39.8도. 자다 일어난 젊은 당직의사는 온도를 알려주는 간호사의 이야기를 듣고는 무심하게 증상을 물어보았다. 전날부터 인후통이 있었던 것, 몸살증세와 토했던 것을 말하니 링거와 약 처방을 해주고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목의 상태를 확인한다던가 하는 형식적인 진료도 없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였다. 넓은 응급실에 혼자 누워 간호사가 놔주는 링거를 맞았다. 열이 내리면서 땀이 비오듯 나는데 응급실에는 그나마 있던 간호사도 보이지 않았다. 한시간정도 혼자 외롭게 링거를 맞고 처방전을 들고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내렸던 열이 다시 오르며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도저히 약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친한 언니에게 부탁해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상황을 설명하고 입원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더 이상 여기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읍내의 병원이 닫기 전에 가서 입원을 하는 것은 어떠냐”고 말했다.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대체 무엇을 해주었다고,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는 것인지. 열 한번 재고 주사 맞은 게 다인데,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면 대체 응급실은 왜 있는거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도 없어 다시 전화로 언니를 불러 읍내의 입원 가능한 내과로 향했다. 많이 안 아파봐서 나는 토요일은 오전까지는 일반 병원에서 진료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내과에 가니 의사는 열을 확인하고 목을 확인하더니 편도에 농양이 생겼다며, 중이염이 생기진 않았는지 귀를 확인했다. 의료원에서 받았던 처방전을 보고서는 아마 이 약은 먹었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다 토했을 거라며 입원치료를 권했다. 내가 알던 지극히 상식적인 병원 진료였는데도, 새벽의 받았던 냉대와 비교가 되면서 가슴 한켠이 찡해지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입원 후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항생제 주사를 맞았다. 첫날은 죽도 약도 먹는 족족 계속 토했다. 의사는 토요일 점심 이후에는 퇴근을 해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일요일에는 엄마가 내려와 몇 번이고 같이 서울로 올라가 입원할 것을 권했다. 괜찮다고 안심시키고는 엄마를 보냈다. 같은 병실에 할머니들은 나의 미련함에 혀를 찼다. 순창은 11월 넘어 고구마 수확해도 아무렇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서둘렀느냐고 타박을 했다. 무리하면 안 된다고 당부 하면서도 할머니들은 집에서 일을 보고 온다고 낮에는 거의 병실에 안계셨다.

병원에서 혼자 아프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오자마자 당장 서울 병원으로 옮기자고 하는 엄마와 아무것도 해줄게 없다는 순창의료원, 텅텅 비어있던 응급실이 생각이 났다. 올 초에 죽공예를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깊게 베었을 때도, 의료원 응급실에 가니 여기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덜컥 겁을 먹고 광주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더니 그곳 의사는 왜 순창에서 치료받지 않고 광주까지 왔느냐고 타박했다. 응급환자들 사이에서 3시간을 기다려 치료를 받고 돌아갔던 기억이 났다. 더 앞서 순창에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기침을 오래도록 해서 면에 보건소를 찾았는데, 의사가 청진기 한번 안대보고 감기약만 처방해줘서 결핵인 걸 한참 뒤에야 알게 됐던 기억도 났다.

퇴원 후 서러웠던 병원 진료 후기를 몇몇 사람들과 나누었는데, 반응은 한결같았다. 자신들은 의료원에 안간지 오래 됐다는 것이다. 다들 조금만 심하게 아파도 바로 광주나 전주 병원으로 향한다고 했다. 크게 아픈 것 같을 때는 아예 서울로 간다고 했다. 나도 몇 번 아프고 나니 그런 선택이 아주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순창의 의료원은 건물의 규모나 모습으로 보면 어느 종합병원과 다를 게 없지만, 실제로는 다른 병원으로 안내하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막대한 운영비로 텅텅 비어있게 운영하기보다는 순창에서 아픈 사람들을 인근의 큰 병원으로 이송해주는데 돈을 쓰는 게 더 군민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정부는 상급 종합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고민 하고 있다고 한다. 상급종합병원이 경증 환자를 받지 못하도록 의료 수가 등에 불이익을 주는 개편안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정책을 입안한 사람들은, 길게는 초진까지 한 달을 기다려야 하고, 응급실에서 불편하게 대기해야 하는 상급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농촌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누구보다도 아플 때마다 편하게 관내 의료원 응급실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앞으로 내가 아프다면 과연 그곳을 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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