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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귀농인이 아니라 순창사람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귀농·귀촌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받은 혜택은 없는데 여기저기에서 “귀농·귀촌인만 우대한다.”, “원래 살던 지역민은 찬밥이다.” 등의 날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차라리 귀농·귀촌인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조장하는 이 용어가 없어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순창 사람 아니죠?” 작년 말 쯤 어느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하다가 받은 질문이다. 잠시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바로 “아뇨 저는 순창 사람인데요”라고 답했다. 지역 태생이 아니지 않냐는 질문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지만 순창에 주소지를 이전해 몇 년째 살고 있고, 지역에서 농사를 비롯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순창 사람이 아니냐고 물어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순창에 와서 첫 3년간은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일했고, 지금은 농사를 지으며 친환경 농민들이 결성한 유통조직에서 농산물을 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동갑내기 친구와 죽공예 공방도 운영하고 있는데, 공방은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해 작년에 입주자를 모집한 곳이다. 당시 군에서는 읍내에 오래된 건물 여러 채를 고쳐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임대공고를 냈고 우리는 추가모집 기간에 신청서를 넣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에 몇몇 사람들로부터 “귀농·귀촌인만 이런 공간을 빌릴 수 있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는 좀 놀랐다.

공간을 빌리는 조건에 귀농·귀촌인은 전혀 해당이 없었고, 우리는 지역 사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조건에 맞춰 신청서를 작성해 들어갔을 뿐인데 마을에서 우리 공방은 ‘귀농귀촌들끼리 모여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 얼마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인식이란 말인가. 순창에서 살면 살수록 나는 나에게 붙어있는 ‘귀농·귀촌’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어졌다.

사실 행정적으로는 나는 이제 귀농·귀촌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귀농·귀촌 관련 지원이나 융자는 주소를 이전하고 5년 안에만 신청이 가능한데 내년 3월이면 내려온 지 만 5년이 되기 때문이다. 몇 개월 뒤면 귀농·귀촌이 붙는 사업은 지원조차 할 수 없는 명실상부한 ‘혜택 없는 일반 지역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귀촌인’이라는 꼬리표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닐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좀 많이 억울했다.

내가 처음 순창에 왔을 때는 1인 가구로 내려온 귀농·귀촌인은 이사비나, 집수리비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융자지원 역시 받을 생각이 없었으니 내려와서 ‘귀농·귀촌인’이란 이름으로는 지원사업의 혜택은 전혀 본 바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역에서 받았던 지원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지원들을 받았는데, 이는 내가 귀농·귀촌인이라서가 아니라 지역 내 거주하는 청년이고 친환경 농민이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지원들이다.

결국 귀농·귀촌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받은 혜택은 없는데 여기저기에서 “귀농·귀촌인만 우대한다.”, “원래 살던 지역민은 찬밥이다.” 등의 날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차라리 귀농·귀촌인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조장하는 이 용어가 없어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귀농·귀촌’이라는 용어 자체가 부정적이거나 문제가 있는 단어는 아니다. 타지에서 살다가 지역에 정착하고자 내려온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고, 이들을 모아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교육하기 위해 활용된 용어이니 전혀 부정적일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역에서 사용되는 귀농귀촌인은 결국 지역민과는 구별되는 ‘외지 것’을 뜻한다. 이 용어를 통해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로 뭉뚱그려서 묘사되고, 지역 내에 갈등과 분란을 조장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거나. 특별한 혜택을 받는 사람들로 인식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원래 순창에서 태어났다가 타지에서 살다 돌아온 귀농·귀촌인들은 행정적으로는 동일한 지원을 받음에도 암암리에 ‘귀향인(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이라고 따로 구분해서 불릴까. 중립적이라고 생각했던 ‘귀농·귀촌인’이란 용어는 정착해서 경험해보니 부정적인 의미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마을 생활을 하면서는 귀농·귀촌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지역에서 그냥 농사를 짓는 순창사람으로 자리 잡고 싶었다. 그러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 인식의 틀을 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대적인 말투의 ‘굴러온 돌’이란 말을 듣고 나니, 마을에서 사람들의 인식을 뚫고 무언가를 한다는 게 덜컥 겁이 났고, ‘외지 것’이 나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 많이 위축되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책이나 용어에서부터 귀농·귀촌인과 지역민을 이분화 하는 구도를 조금씩 바꿔 나가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초기 정착을 돕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교육과 지원 사업 등에 ‘귀농·귀촌인’이라는 말을 쓰더라도 일정 시기가 지난 후에는 이 용어를 완전히 졸업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임이라든지, 교육 등도 귀농·귀촌의 이름을 붙이면 철저하게 특정 기간 안에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서, 새로 들어온 사람과 원래 살던 사람들 모두 몇 년이 지나면 ‘아 이 사람은 귀농·귀촌인을 졸업하고 이제는 완전히 지역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작은 부분에서부터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지역에서는 몇 십 년을 살아도 ‘외지 것’을 벗어나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농촌 지역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출신과 연고를 따지는 문화’ 속에서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소개할 지 좀 더 더욱 섬세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 같다. ‘외지 것’들이 아닌 순창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장치들이 행정과 민간 차원에서 생겨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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