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나는 더 이상 수박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 아쉽다. 옛날에는 자연에서 나와 각각 맛이 다를 수 있는 농산물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을 대하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달지 않은 수박은 교환해줘야하는 ‘불량품’이 되어 버리다보니 농가에서는 신품종과 발전된 재배법을 통해 더욱 단 수박을 만들어낸다.

나 어렸을 적만 해도 수박을 사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여름철에 동네 청과상에 가장 좋은 자리에 위풍당당하게 진열된 수박은 한 통당 가격이 결코 싸지 않은 귀한 과일이었다. 장을 보러 엄마랑 나가면 진열된 수박 앞에서 하나씩 통통 두드려 보면서 어떤 수박 소리가 제일 좋은지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달고 맛있는 수박을 고를 때도 있었지만 어쩔 때는 맹맹한 수박을 고르게 될 때도 있었다. 그런 수박은 시원한 맛으로 먹다가 질리면 사이다와 함께 화채로 먹거나 그랬다. 그때는 여름철만 되면 잡지나 신문, TV등에서 맛있는 수박 고르는 요령이나 팁을 소개하고는 했다. 무늬가 진하고 꼭지가 시들하지 않고, 두드렸을 때 경쾌한 소리가 나는 게 맛있는 수박이라고 했지만, 그게 꼭 다 맞아 떨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요즘에는 이런 팁을 잘 못 들어봤다. 어린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잘 모르는 것 같다. 예전에는 여름철 상식과도 같았던 맛있는 수박 고르는 요령이 사라진 이유는 이제는 굳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맛있는 수박만 시장에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대형마트에서는 비파괴 당도검사를 통해 일정 브릭스 이상의 수박만을 유통하고 있으며, 소비자가 달지 않다고 민원을 넣으면 수박을 환불해주기까지 한다. 청과상을 통해 구입하는 수박도 가져와서 먹어보면 다 단맛이 난다. 예전처럼 맛이 없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른 과일들도 마찬가지다. 크게 노력하지 않고, 큰 지출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달고 맛있는 과일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노지에서 재배되는 과일류는 아직까지 날씨의 영향을 받지만, 수박과 같은 과채류는 하우스 안에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품질이 규격화 됐다. 농가는 물의 양과 온도를 조절하고, 양액을 주입하면서 원하는 모양과 맛의 수박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유통 역시 고도화되면서 수박은 더욱 엄격한 검증 시스템을 거쳐 일정 품위 이상의 수박만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얘기일수 있겠지만 나는 더 이상 수박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 아쉽다. 옛날에는 자연에서 나와 각각 맛이 다를 수 있는 농산물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을 대하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달지 않은 수박은 교환해줘야하는 ‘불량품’이 되어 버리다보니 농가에서는 신품종과 발전된 재배법을 통해 더욱 단 수박을 만들어낸다. 망고수박, 미니수박 등 품종은 다양해진 듯 하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

이렇게 당도를 기준으로 치면 올해 우리 채종밭에 잔뜩 심은 참외들은 모두 불량품이다. 꾸러미에 넣기 위해 채종포에서 토종참외를 기르고 있는데 단맛이 나는 품종도 있지만, 대부분의 토종참외는 시판 참외보다는 덜 달다. 그러나 먹어봤을 때 각각의 매력이 있다. 최근에는 얼룩덜룩한 초록 깐지참외가 잘 익었길래 몇 개 따서 사무실에 가져와 후숙을 시켰다가 먹었다. 부드럽게 잘 익어 참외향이 물씬 나고 아삭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했지만 시중 참외만큼 달지는 않았다. 다들 언제 먹을거냐며 성화였던 사무실 사람들의 분위기가 짜게 식었다. ‘맛이 없다’는 것이다. 달지 않은 것이지 맛은 충분히 참외 맛이 아니냐고 항변했지만 그게 바로 맛이 없다는 것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세상에 이런 과일을 돈 받고 팔면 욕먹는다는 쓴소리도 들었다. 아니 참외가 좀 안달수도 있지 어떻게 다 맛있냐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요즘 참외는 다 달다. 안 달면 욕을 먹을 만한 세상이다. 그러나 노지에서 기르면 다 맛있을 수는 없다. 비를 많이 맞아서 좀 맹맹할 수도 있고, 살짝 모양이 안 예쁠 수도 있다. 농부가 모든 상황을 다 통제할 수 없고 자연에서 작물이 생존하면서 자라다보니 일률적인 모습의 작물이 나올 수 없다. 그걸 알기 때문에 달지 않은 참외도 나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지만,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예쁘고 단 참외만 만났으니 그렇게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텃밭을 가꿀 때는 거의 대부분이 맹맹한 참외였고 그러나 가끔 만나는 단 참외가 더 반갑고 맛있게 느껴졌는데, 돈을 주고 산다고 했을때는 달지 않은 참외는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토종참외도 단 맛을 걷어내고 보면 다채로운 맛이 기다리고 있다. 사과참외, 개구리참외, 깐지참외 모두 맛이 다르고, 향과 식감도 다르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고 기르는 땅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다. 당도가 높지 않아 오히려 텁텁하지 않고 청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맛이 없다’로 매도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다채로운 맛들이다.

그러나 이런 다채로운 자연의 맛을 즐기기에 우리 입은 너무나 단 음식들에 길들여져 버렸다. 단조로우면서도 스트레스가 많은 도시의 생활이 더욱 이런 입맛을 가속화 시키는 것 같다. 실제로 단맛이 적은 토종참외일지라도 밭에서 일을 하고 땀을 잔득 흘린 후에 먹으면 참 시원하고 맛있지만, 도시에 가져가 에어컨을 쐬며 먹으면 밍밍하고 퍽퍽하게만 느껴진다. 먹는 문제는 우리의 삶의 형태와 무관하지 않다.

토종작물을 기르면서 나는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참외종자가 있었고, 맛과 특징이 전부 다르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지금은 노랗고 길쭉한 참외가 참외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지만, 다양한 모양과 맛을 가진 참외들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일을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누군가는 분명 이 맛을 그리워하고 새롭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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