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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이상기후 시대에 농부로 살기

[한국농어민신문]

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태풍 링링이 지나가고 난 뒤 피해를 채 다 복구하기도 전에 태풍 타파가 휩쓸고 갔다. 밖에 나가면 어디다 눈을 둬야 할지 모를 만큼 처참한 논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부만 쓰러진 경우도 있지만, 완전히 다 누워버린 논도 적지 않다. 태풍 관측 전까지만 하더라도 논농사는 올해 전례 없는 풍년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었다. 이제는 이 관측이 허탈해 질 정도로 한해 농사를 망친 농가들이 많다. 원래 농촌에서의 가을은 익어가는 논을 보면서 생겨나는 기대감과 활력이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매년마다 이상기후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작년에는 기록적인 한파와, 폭염이 찾아왔다면, 올해는 가을태풍, 집중호우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상기후는 기온이나 강수량 따위가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난 상태를 뜻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예측이 어렵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기후는 사계절의 특징들이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이제는 그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장마와 소나기로 물 걱정은 없을 것 같았던 여름에는 오히려 비가 많이 안 오다가, 거둬들이고 말려야 하는 가을이 되니 연일 비와 태풍이 이어진다. 지구온난화 추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서리가 내리지 않는 무상일수도 늘어나야 하지만, 올해의 경우는 늦은 봄까지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경향성도 없고 매년 들쑥날쑥이다.

심고, 기르고, 거두는 것이 계절에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뤄지던 것인데, 이 흐름이 자꾸만 깨지고 있다. 농사를 오랫동안 지어오던 어르신들도 "이런 날씨는 처음"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한다. 불안하니 갈수록 파종 시기는 빨라진다. 혹여나 날씨가 잘못되면 나중에 다시 심을 수 있어야 해서다. 농작업거리도 많아진다. 이상기후가 오기 전 일찍 커야 피해를 막을 수 있으니 약과 비료도 미리미리 한 번 더 친다. 높아지는 농사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앞으로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아니 더 심해진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야 할까. 이러한 궁금증을 가진 채로 올 6월부터 전주에서 진행중인 생태농업 공부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어떻게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공부하고, 의견을 나눈다. 여기서도 단연 주요 화두는 기후변화이다.

공부하며 놀랐던 것은 농촌진흥청 등의 농정당국에서 스마트팜을 ‘지속가능한 농업’이라고 명명한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기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갈수록 노지 농사는 어렵고, 환경과 온도 등을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팜에서의 농사가 지속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에서다.

그러나 지금의 기후변화의 원인을 두고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무분별한 화석연료의 사용과 에너지 과다이용 등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과다하게 외부 에너지를 사용하는 스마트팜의 확대 보급이 해결책이라는 의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친환경농업 분야에서 주로 사용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이란 용어를 스마트팜에 사용하는 것도 기만처럼 느껴진다.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상황에서 대규모의 단일작물 재배는 큰 위험성을 동반한다. 여기에 고비용의 시설은 고장의 이중부담까지 져야 한다. 태풍 등으로 인한 피해 집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시설 파손이다. 시설농업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상기후 시대에 나의 대응책은 일차적으로는 기후변화에 피해를 덜 받는 다양한 작물들을 심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씨받는 농부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이상기후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것 이상으로 작물들은 기후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우리 지역의 이상기후를 경험한 작물들이 남긴 씨앗 안에는 이에 대한 기억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세대를 지나다보면 이상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힘과 가능성 역시 발현될 것이다. 이렇게 높은 적응력을 가진 지역 종자를 재배하고 보급시켜나가는 것은 지금 당장은 보잘 것 없어보여도, 언젠가는 크게 필요하게 될 일이라 믿고 있다.

순창의 씨앗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런 마음으로 바쁜 영농 기간 중에도 시간을 내서 채종포를 관리하러 모이고, 각자 자기 밭에서 한 종류씩 책임증식을 해온다. 나는 이것이 기후변화 시대를 맞이하는 책임 있는 농부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농업을 대하는 현대 과학자, 농정당국은 계속 농업을 통제 가능한 영역까지 끌어내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연은 실험실과 같은 환경이 아니다. 어느 특정요인이 변화했을 때 수많은 영역의 생태계가 여기에 동조하고, 영향을 미치고 변화한다. 이 과정은 과학자들의 실험처럼 다 통제·예측 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이다. 마치 우리나라 생태계를 위협하던 여러 외래종들이 10년 정도 지났을 때는 천적의 등장으로 적절한 개체수가 조절됐던 것처럼, 자연은 균형의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힘을 존중하고, 최대한 이러한 생태 균형을 돕는 방식으로 앞으로의 농사를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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