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홍시를 만나 기르게 되면서 나는 새삼 농촌에 얼마나 유기된 개가 많은지, 또 학대수준으로 방치되어 있는 개들이 많은지를 주목하게 보게 되었다. 1미터 남짓 되는 줄에 묶여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거나, 밭 한켠 뜬장에 갇혀 하루 종일 짖기만 하는 개들을 많이 봐온 나로서는 농촌에서 개를 기르는 게 필수라는 말을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농촌에 내려온 뒤부터 내 주변에서는 개를 주겠다는 사람이 참 많았다. 바깥에 묶어 기르는 개들은 발정이 올 때마다 임신을 했고, 분양이 시급했던 주인들은 시골에 살면서 개 한 마리 정도는 길러야하지 않겠냐는 권유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제 몸 하나 건사 못하는데 무슨 개를 기르냐며 칼같이 거절하곤 했다.

그런데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일하던 시절 어느 날부터 비쩍 마른 흰 진돗개가 센터 앞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늦은 밤 도로 한가운데에 앉아있는 모습이 위험하기도 하고 빼빼 마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서 사료를 구해다가 주었더니 아침마다 센터 앞에서 출근하는 나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생김새가 예쁘고 눈빛이 깊은 개는 무언가 사연이 있는 느낌을 잔뜩 풍겼고 나는 그냥 사료만 주는 관계라면 큰 문제 없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풀려있는 개의 존재는 농촌에서도 용납될 수 없었다. 신고를 받고 면에서 개를 잡으러 사람들이 왔다. 나는 길들이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며 본의 아니게 개를 기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개를 만지기까지 딱 2주가 걸렸는데 만지는 것을 경계하던 개가 어느 날 족제비 새끼 정도로 추정되는 동물을 물고 왔다.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상태로 가져온 터라 많이 당황스러웠는데 그날 딱 신기하게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을 홍시로 정한 건 3주정도 지났을 때인데 처음에는 내 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고, 기르겠다고 마음먹은 후에는 어울리는 이름을 찾고 싶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때쯤 홍시가 임신한 상태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홍시를 묶어둘 수는 없었다. 목줄 비슷한 것만 손에 들어도 몇 백 미터 밖으로 도망쳤기 때문에 상당기간 불안한 동거가 계속 되었다. 홍시는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센터가 불안했는지 센터 앞 면사무소 건물 낮은 구석에 들어가 새끼를 낳았다. 경계심이 심해 새끼를 보려 가까이 간 마을 어르신을 공격했다는 이야기를 면 직원으로부터 들었다. 그날 바로 건물 아래로 기어들어가 새끼들을 빼서 센터로 데리고 왔다.  관사 앞에서 새끼들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찾아오는 사람에게 마다 이를 드러냈다. 결국 동물병원에서 안정제를 처방 받아다가 사료에 섞어 먹이곤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홍시에게 목줄을 매주었다.

이때쯤 나는 심적으로 구석에 몰려있었다. 총명한 눈빛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홍시가 참 보기 좋았다. 임신한 몸으로 나에게 의탁하긴 했지만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홍시가 행복해 보였다. 그러니 수유중인 개에게 약을 먹여 목줄을 채우고 줄에 묶여서 온몸을 떠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 괴로웠다. 사고가 나거나 잡힐지언정 자유로운 개로 살다가 가는 게 더 행복한건 아닐까 하는 진지한 고민도 했던 시점이었다.

그렇게 불안한 동거를 시작한지 어느덧 3년이 넘었다. 그 사이 홍시는 나와 4번의 이사를 함께하며 여러 사건사고를 겪었다. 다른 집 개와 닭 고양이, 돼지를 공격했고 죽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죄인이 되어 열심히 빌고 배상하고 그랬다. 다른 개와의 싸움 사이에 뛰어 들어가 뜯어 말리다가 무릎 뒷부분이 깊게 물리기도 했다. 이사 간 집마다 방충망을 다 뜯어 놓기도 했다.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좋았던 기억도 많았다. 밤에는 별과 반딧불이를 보며 함께 산책을 다녔고 낮에는 트럭 뒤에 타서 농사를 지으러 같이 밭에 다녔다. 중간에 중성화 수술을 했고, 피부병이 와서 털이 완전히 다 빠졌다가 치료를 통해 새로 나기도 했다. 

홍시를 만나서 좋은 점도 많았지만 힘든 점이 더 많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고될 줄 알았다면 매정하지만 처음 만났던 비쩍 마른 진돗개를 못 본 척 했을 것이다. 나에게 온전히 의존하고,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리고, 내 행동에 따라 행복이 결정되는 생명체를 기른다는 것은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다.

홍시를 만나 기르게 되면서 나는 새삼 농촌에 얼마나 유기된 개가 많은지, 또 학대수준으로 방치되어 있는 개들이 많은지를 주목하게 보게 되었다. 1미터 남짓 되는 줄에 묶여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거나, 밭 한켠 뜬장에 갇혀 하루 종일 짖기만 하는 개들을 많이 봐온 나로서는 농촌에서 개를 기르는 게 필수라는 말을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개와 같이 산책을 다니거나 집에서 기를 수 있을 정도의 여건과 의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개를 길러도 괜찮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건과 상황이 안 되는데도 개를 기르다보면 굳이 주지 않아도 될 고통을 동물에게 안겨주게 된다.

이제는 농촌이란 공간에서도 동물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을 가지는지 점차 인식의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개를 짧은 줄에 묶어두고, 뜬 장에 가둬두는 것은 전혀 이상한일이 아니지만, 매일 그 개를 끌고 산책을 나가면 마을에서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함부로 유기되고, 물건처럼 다뤄지는 개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더욱 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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