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ㆍ독자투고
[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가을
   
 

김현희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 활동가

돈 없이, 연고 없이 시골에 와 감수해야 하는 서러운 일은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집이다…예전에는 빈집에 사람 온기 들어가는 게 어디냐며 1년에 벌초 한 번으로, 혹은 무료로도 살 수 있는 집이 간간이 나왔다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이렇게 집도 없으면서 어쩌자고 청년들을 꾀어내어 1년 농사를 하자고 했을까 하는 자책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직접 살면서 농촌에 품었던 ‘로망’을 실현해보겠다고 시작한 순창청년로망시험포. 지난 2월부터 열심히 달려왔던 교육사업도 이제 점차 끝을 향해가고 있다. 참여했던 다섯 명의 청년들 모두 농사를 전업으로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다들 지역에 정착해 살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이 과정에서 겪게 된 서러움을 글로나마 풀어내고 싶다. 집을 구하며 청년들이 겪어야 했던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들.

청년들이 정착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한 5월여부터 오늘까지 순창 곳곳을 다니며 거의 스무 곳에 가까운 빈집을 보러 다녔다. 정화조와 화장실이 없는 집, 상수도가 안들어 간 집, 지붕이 새는 집, 바닥을 뜯고 보일러를 완전히 새로 해야 하는 집, 흙벽 틈새로 바깥이 보이는 집 등 정말 다양한 빈집을 만났다. 사람의 온기가 떠난 집은 1년만 방치해도 금방 낡은 티가 난다. 몇 달 전까지 할머니가 사시다가 요양병원에 들어간 집에서부터 10년 이상 방치된 집까지 집마다 사연도 다양했다.

이런 집들을 집수리 사업비 등을 받아 수리하려고 하면 건물 등기가 안되어 있거나, 근저당이 잡혀 있거나, 집과 건물의 명의자가 다르거나, 상속인이 여러 명이거나 해서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나마 서류가 깨끗하고 사업예산으로 수리가 가능한 집은 계약하기로 한 날 갑자기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지 않으면 안하겠다고 어깃장을 놓는 경우도 있었다. 청년 5명의 집을 구해주기 위해 지역을 뛰어다닌 이야기로만 책 한 권이 나올 정도다.

이렇게 백방으로 노력했는데 글을 쓰는 지금 현재, 교육 이후 갈 곳이 확정된 청년은 단 한 명뿐이다. 네 명은 여전히 집을 구하지 못한 상태다. 함께하는 청년들 모두 빈집을 결정해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서류가 정리되지 않아 틀어지거나, 주인의 마음이 바뀌거나 해서 계약을 못하게 된 일들을 최소 한 번씩은 겪었다.

앞으로 5년간의 살 집을 결정한다는 것은 마음을 많이 쓰는 일이다. 마을은 어떨지, 집은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앞으로 연고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놓고 심사숙고하고 마음을 다잡아 결정한다. 그리고선 일이 틀어져 버리면 열심히 다잡았던 마음이 푹 하고 꺼져버린다. 머릿속에 있던 앞으로의 계획도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다시 의지를 다지기까진 심력을 많이 소모해야 한다.

이렇게 집이 틀어지고 나면 나부터도 며칠간은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히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집도 없으면서 어쩌자고 청년들을 꾀어내어 1년 농사를 하자고 했을까’ 하는 자책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초반에는 그래도 ‘곧 좋은 집이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지만, 벌써 10월이 다 돼가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니 낙담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고마운 것은 이젠 오히려 함께하는 청년들이 몇 번의 실패를 겪고 나선 담담하게 ‘좀 더 기다려 보자’며 다독여 준다.

돈 없이, 연고 없이 시골에 와 감수해야 하는 서러운 일은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집이다.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2012년 교육을 시작한 이래로 내려와 집을 구하고자 하는 교육생들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나오는 집은 적으니 갈수록 조건은 안 좋아진다.

예전에는 빈집에 사람 온기 들어가는 게 어디냐며 1년에 벌초 한 번으로, 혹은 무료로도 살 수 있는 집이 간간이 나왔다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몇 억씩 오르는 집값에 익숙해진 도시의 자녀들은 큰돈 되지 않는 농촌 빈집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팔지도 않고, 임대로 내놓지도 않은 채 어정쩡한 상태로 집들은 방치된다. 남은 소수의 집들은 구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갈수록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집이 없으니 들어오려는 청년들은 집이 많이 불편해도, 조건이 부당한 것 같아도, 이를 다 감수해야 할 판이다.

현실은 청년들에게 로망을 버리라고 말한다. 당장 집이 급한 처지에, 집주인이 갑자기 월세 5만원을 올리겠다고 배짱을 부린들 감수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래도 도시랑 비교해서는 여전히 훨씬 싸고 좋은 조건이 아니냐고 말한다. 집의 위치와 마을 분위기, 수리비 등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말한다. 농촌에 정착할 마음과 의지가 그 정도 밖에 안 되느냐고.

그러면 청년들은 자신들이 소중히 가슴에 품어왔던 로망과 현실을 번갈아 바라보며, 조건을 따졌던 자신이 배부른 투정을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때 아닌 자기 검열을 한다. 그리 큰 것을 바란 것도 아니건만, 얼마나 더 기본적인 조건들을 포기하고 마음을 비워야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걸까 생각하다 보면 아득해진다.

바로 며칠 전 수리를 위해 견적까지 다 뽑았던 집의 서류가 깨끗하지 않아 계약이 불발되는 일이 또 있었다. 견적까지 뽑았던 터라 한 숨 놓고 다들 축하해주던 분위기였다. 다들 이러한 좌절에 익숙해지고 있는 점이 서글프다. 귀농센터에서 일한다면서 기본적인 집조차 해결해주지 못해 자괴감이 드는 요즘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어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관련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