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어느덧 순창에 온 지도 6년을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일단 오르막길과 계단을 잘 못 오르는 몸이 됐다. 서울에서 살 때는 지하철만 해도 계단이 많고, 집도 경사진 곳에 있어서 일상에서 계단과 오르막길을 다닐 때가 참 많았는데, 순창에서는 2층 이상의 계단을 오를 일이 거의 없었다. 읍내 경천 근처 산책로도 그렇고 밭에 갈 때도 그렇고. 생각해보니 나는 오랜 시간을 계속 평지만 걸어왔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최근 급격한 오르막 경사를 오르다가 퇴화한 허벅지 근육에 크게 놀라는 사건이 있었다. 그 후 깊은 반성과 함께 매일 퇴근 후 같이 사는 친구와 한 시간씩 등산을 하고 있다. 봄철 시작될 농사를 위해 건강한 몸 만들기를 목표로 세우고 열심히 실천 중이다.

지금 사는 집에서 청년 3명이 함께 있었는데 같이 살던 한 친구가 최근 대전으로 떠났다. 이 친구는 순창에 왔을 때처럼 처음에는 한달살이로 조심스럽게 대전이란 지역을 탐색해보더니 여러 조건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예 그곳에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2018년 봄에 순창에 와 함께 협업농장을 하고 그 이후에 복작복작 함께 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아직 20대의 이 친구는 배우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순창에서의 순간순간들이 조금은 버거워 보일 때가 있었다. 지금은 순창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대전에서 배우면서 잘 지내는 것 같다. 집도 처음 구했던 원룸촌은 영 별로였는데, 이후에 바로 LH 청년임대아파트가 구해져서 큰 시름을 덜었다고 한다.

순창에 살면서 참 이별을 많이 했다. 가깝게 교류하던 많은 분들이 순창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청년학교를 열고, 청년협업농장을 하고, 다양한 청년 사업들을 받고, 개인적으로 숙소를 임대했던 것은 지역에 함께 살 수 있는 이웃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나의 개인적인 욕망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런 노력으로 연고 없는 젊은 청년들이 순창에 와서 자리 잡기도 했고, 그만큼 많이 떠나기도 했다. 사람이 귀한 곳이다 보니 사람이 들고 나는 티가 많이 났고, 거기에 너무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아서 사람에게 쏟는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줄이기도 했던 것 같다.

청년협업농장을 마치고 정착하려고 했었던 두 명의 친구는 계속 구해지지 않는 일자리와 불발되는 집 계약에 지쳐있을 무렵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다녀온 대전에서 바로 좋은 조건의 집을 구하게 되어 대전으로 떠났다. 지금은 둘 다 일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 가끔 순창에도 놀러온다.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젊은 청년은 최근 돈을 벌기 위해 전 직장이 있던 머나먼 중국으로 떠났다. 다시 돌아온다고는 하는데 얼마나 벌어야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교육을 받고 정착해 결혼까지 해서 읍내에 예쁜 식당을 열였던 젊은 부부도 다시 돌아왔던 곳으로 갔고 그동안 맛있게 먹던 단골 식당이 사라졌다.

이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떠났고, 그들의 떠난 자리는 크게 남았다. 이곳에 내가 처음 글을 쓰면서 ‘독립운동가의 마음처럼 굳건한 의지와 마음이 아니더라도 청년들이 농촌에 정착하고 적응할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지만, 아직까지 농촌은 그렇게 녹록한 곳은 아닌 것 같다. 떠난 사람들이 잘 준비해서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만, 떠난 곳에서도 행복하고 좋은 기억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들이 순창을 떠나고 간 곳에서 너무 힘들어 다시 순창을 찾게되길 바라진 않는다. 그곳에서 순창에서 채우지 못했던 것들을 잘 채우고 좋은 기회들을 많이 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은 나는 이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는 순창을 꿈꾸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겠다. 지금까지는 이별에 지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꺼려졌는데, 새해가 되니 다시 의욕이 생기는 것 같다. 다시 재미있는 일들을 계획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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