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나는 이번 수해가 조속히 복구되고 사람들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가 이를 단순히 극복해야 하는 재난 정도로 치부할 게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하고 변화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는 조금 물 들어왔는데 이 정도는 괜찮아, 그보다 풍산 언니네가 걱정이다.

밤새 쏟아붓는 비가 내린 후 맞은 지난 토요일 아침, 여기저기 서로의 상황과 안부를 묻는 연락이 쇄도했다. 섬진강 방류가 계속되면서 강줄기 주변 마을 사람들은 급히 대피하고, 침수된 축사에서 소를 구출하고, 도로로 밀려 내려온 토사를 급히 치우는 등 급박한 상황을 맞았다. 당장 내 앞에 닥친 일인데도 뉴스를 보는 것처럼 현실감이 들지 않고 멍한 기분이었다.

순창에서는 80대 할아버지도 생전 처음 겪는다는 물난리를 겪었다. 섬진강 하류지역인 구례, 곡성, 담양 등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남부지역은 그렇게 비 피해가 심각할 것이란 예보도 없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주변 모두가 큰비에 힘들고 시름 했지만 아픈 티도 못 냈다. 옆에 더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집안 주방으로 물이 들어오고 논밭이 잠겨도 ‘그래도 이 정도면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몇 개 마을은 섬진강 방류로 완전히 잠겨 버렸기에 논밭이 무너진 건 피해 축에도 못 들었다. 나 역시 집에는 피해가 없었고 고구마밭만 둑이 무너졌는데 장비 들여 복구하는 건 가을 이후에나 엄두를 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을 인간의 편의대로 이용하려는 오만함은 많은 참극을 낳았다. 사람이 이용하기 좋게 가둬둔 물은 많은 빗속에서 그대로 사람을 덮치는 물이 되었다. 더 큰 규모로 중앙에서 관리하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전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은 그저 환상이었다. 수자원공사는 인근 지역민들에게 방류할 때 제대로 안내도 못했고, 그 이전에 안전하게 수문을 관리하지도 못했다. 이번 수해가 인재라고 계속 지적되는 이유다.

여기에 계속 위험하다고 지적돼왔던, 야산에 설치한 태양광 시설도 문제가 됐다. 나무와 풀이 꽉 붙잡고 있어도 위험했을 땅인데 보호해줄 덮개 작물 하나 없이 맨살이 드러난 태양광 시설은 큰비에 그대로 마을을 덮쳤다. 밭과 임야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 이미 농민단체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이 우려가 현실이 되었으니 이제라도 농토에 태양광 설치를 장려하는 정책을 다시금 제고해 봐야 할 것이다.

이번 수해는 근본적으로 파고들자면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땅속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늘어나 발생하는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는 올해 유례 없이 긴 장마를 겪어야 했다. 기상청은 장마 중반부터 아예 정확한 예보를 포기했다.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현상으로 한반도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기후를 겪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7월 평균 기온이 6월보다 낮았으며, 중부지역 장마는 50일을 넘기면서 관측 이래 최장기간을 기록했다고 한다.

탄소배출로 인한 환경오염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는 말을 몇 년 전부터 들었다. 몇몇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제는 단순히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다시금 토양 안에 집어넣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추세로 볼 때 앞으로도 우리는 이전에는 경험해본 적 없는 다양한 이상 기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되돌아갈 길을 지나친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번 수해가 조속히 복구되고 사람들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가 이를 단순히 극복해야 하는 재난 정도로 치부할 게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하고 변화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19와 같은 상시적인 전염병 위험과 함께 기후재난을 대비해야 하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이제는 자본과 경제에 논리에 따라 대규모의 개발과 경제적 팽창을 추구했던 삶의 방향을 버리고 안전과 보호, 연대와 돌봄을 중요시하는 시대를 살아야 한다. 새롭게 만들고 지어지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우리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에 더 집중해야 한다. 평당 가격으로 국토의 가치가 매겨질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가지는 자연적, 사회적 보호기능에 따라 새롭게 가치가 정립돼야 한다.

작물이 자라는 토양의 표토층 1cm가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데는 100여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귀한 표토층은 이번 비에 도로와 물길을 막는 골칫덩이로 전락해 쓸려 내려가고 치워졌다. 이렇게 잃어버린 것들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 그 빈 곳이 더욱 커져 메울 수 없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잃어버린 것들은 아예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회복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의 후회가 너무 늦지만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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