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빈집이 한 채 나왔는데, 1400이래.", "정말요? 한번 보러 가도 되나요?"

1400만원. 정부가 내놓은 청년 희망 적금에 가입해 매달 50만원씩 2년간 저축하면 이자까지 해서 1300만원이 된다고 하니, 거기에 100만원 정도만 더 보태면 되는 돈이다. 아니 내집 마련이 꿈이라는 오늘날 1400만원이면 집을 한 채 살 수 있다고? 너무 솔깃한 이야기였다. 당장 주말에 집을 보러 갔다. 사실 내가 살 마음은 아니었고, 그 마을에 집을 구하고 있는 언니를 한 명 알고 있어서 언니를 대동하고 갔다.

집은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기대 이상이었다. 마을 전체가 담장 보수사업을 해서, 단정한 담장이 세워져 있었고, 작지만 마당이 있고 행랑채를 부쉈던 공간은 시멘트가 아닌 흙으로 덮혀 있어 무언가를 기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본채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었고, 최근까지도 사람이 살았던 듯 많이 손봐야하는 상태도 아니었다. 여기에 200~300만원 정도 하는 저온 저장고까지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상태로 마당에 세워져 있었다. 너무 마을 가운데 있었다면 좀 답답했을 텐데, 적당히 마을 외곽에 집이 위치해 있어 그 점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보러갔던 언니는 하루를 고민하더니 다른 집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정말 나쁘지 않았던 조건이라, 고민하다가 그냥 덜컥 내가 하겠다고 해버렸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해도 실제 계약까지 성사될 확률은 10%도 안 될 것이다. 이 집은 혼자 남은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남은 자식들이 도시에서 돌아올 계획이 없어 팔려고 하는 집이라, 내가 사겠다고 말을 해도 분명 다른 가족들의 반대와 서류상의 문제 등등 여타의 문제로 안 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집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집은 지금은 번듯해도 몇 년 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게 되면 이후에는 정말 살지 못할 폐가가 되어버릴 것이다.

팔지 않을 거면 내놓지를 말지, 생각보다 반응 확인용으로 집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이런 집도 내가 판다고 하면 사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집을 내놓고는 실제로 팔지는 않는 것이다. 실제 시간과 발품을 들여 집을 구경하고 몇 일을 고민해 사겠다고 하면, 다시 팔 계획이 없다고 슬그머니 발뺌하는 일들을 이미 많이 경험해서, 나는 이제 누가 집을 판다고 하면 처음에는 큰 기대나 마음을 쓰지 않고 가볍게 접근하게 된다.

그런데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농사를 매우 잘 짓는 지역 토박이 언니는, 나를 채근해서 다시 집을 보러 가서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찾아냈다. 해가 늦게 드는 서향이고, 옛날집이라 바닥이 너무 낮고 배수공사도 잘 안 돼 있어서 아래서 습이 다 올라올 것이고, 지붕 슬레이트(석면)가 그냥 다 노출돼있고...

내가 봤을 땐 문제없고 멀쩡한 집이었는데, 언니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영 사람이 못살 집이 되어있었다. 나는 ‘아니 그럼 1400만원에 무슨 정남향 한옥집을 바랄까. 이 정도면 그래도 준수하지’하고 짜증을 냈다. 언니는 주변에다가도 소문을 내면서 내가 이 집을 못 사게 말려야 한다고 했다.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1400만원이면 그냥 사라. 사지 말라 등등. 어쨌든 이 집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나는 사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한 달째 집을 판다는 쪽에서는 따로 연락이 오지 않는다. 만류하는 언니들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둘러보면서 마을도 한번 둘러봤다. 새뜰사업을 받아 담장과 길이 잘 정비되어있는 깔끔한 마을이었는데도 한집 걸러 한 집은 빈집이었다. 그래도 도시에서 일 년에 몇 번씩을 와서 청소를 하고 가는 집이 있는가 하면, 몇 년째 방치된 집도 여러 채 보였다. 그러나 역시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없었다.

마을에 들어가게 된다면, 가급적 집을 사서 들어가고 싶었다. 1년짜리 귀농인의 집이나 5년 임대 방식으로는, 마을에서의 지속적인 삶은 담보할 수 없으니, 집을 사야 마을 분들도 나를 이곳에 남을 사람으로 인식하고, 나도 더 마음을 붙이고 마을에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빈집을 구하는 문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현재 내 동거인은 면단위에 새로 짓는다는 공공임대주택을 알아보고 있다.

살아보니 읍이나 면소재지에서의 삶은 농촌 마을보다 더 쾌적하고 편한 점이 많다. 특히 차가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빈집을 기다리기보다는 지원을 받아 새롭게 지어지는 공공임대주택을 청년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더 좋은 대안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내 머리 속에는 여전히 빈집이 가득한 마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마을 안에서 복작거리며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로망은 여전히 버리지 못했지만, 언제쯤 현실의 벽을 넘어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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