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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농민은 바보가 아니다
   
 

김현희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 활동가

우리나라 영농이 ‘스마트’하지 않아서 경쟁력이 없으며, 청년들은 힘든 노동이 싫어 농촌으로 오지 않는다는 분석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잘못된 전제일 뿐만 아니라 청년들과 농민들을 우롱하는 무례한 태도다.


최근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전국 4곳에 생산과 유통,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기술혁신을 통해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더 나아가 청년농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를 뒷받침하듯 최근에는 청년들을 겨냥한 스마트팜 홍보 영상도 나왔다. 영상은 인기 온라인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패러디한 것으로, 힘든 일이 싫어 농촌을 기피하고 있는 청년들이 스마트팜에서 게임하듯 쉽고 재밌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이 홍보 영상을 보면서 나는 이 영상을 만든 사람이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책상물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팜을 통해 작물 생육에 최적화된 환경제어는 가능할지라도 여전히 다른 많은 부분은 사람의 손에 의존해야 한다. 정식부터 순지르기, 줄기 유인, 해충관리, 수확 등은 게임하듯 화면만 들여다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과정마다 많은 기술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면 농사는 선택하지 않는 게 좋다. 농사는 땀 흘려 일하고 수확하는 데 매력이 있다. 홍보 영상 속의 농사는 하나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게임 캐릭터 복장을 하고 파프리카 농장에 들어가 잘 자란 파프리카 대신 테블릿PC 화면을 쳐다보고, 농장 안에서 수증기가 분사된다고 우산을 펴는 청년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만 했다.

어째서 스마트팜의 주요 타깃층이 청년농인 것일까. 상대적으로 기존 농가보다 기반도, 시설도 없는데 말이다. 이는 기존 농가의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는 원예시설 현대화 사업을 비롯한 스마트팜 조성사업 예산 상당수가 불용됐다. 올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실수요가 없자 아직 농촌에 들어오지도 않은 청년들이 스마트팜의 잠재적 수요층으로 대두됐다. 이들은 아직 실체가 없으나 정부 분석에 따르면 힘든 일 하는 것을 기피하는, 그래서 농촌으로 들어오지 않는 세대다.

왜 기존 농가들은 스마트팜 조성사업을 받지 않을까. 농가가 스마트하지 못해서일까. 고되게 일 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자동화 시설을 피하는 것일까. 예전에 한 화훼 농가를 찾아가 화훼관련 시설 현대화 사업을 받지 않는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농가에서는 ‘투자 대비 더 나은 수익이 나올 것이라는 계산만 선다면 굳이 국가가 지원 사업을 해주지 않아도 농가가 먼저 하겠다고 나설 것’이라는 말로 짧게 답변했다. 우문현답이다.

농업생산에 있어 투자 대비 소득을 생각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작물을 생산하는 데 모든 걸 다 자동화한 최첨단 시설이 반드시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최첨단 시설이라고 최고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 또한 아니다. 정말 꼭 필요한 시설들은 농가들이 이미 갖추고 있다. 최소한의 투자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게 스마트한 것이다. 투자 대비 수익이나 수요 부분도 생각하지 않고, 일단 최첨단 기술이니까, 제대로 다 갖춰서 대규모로 투자하겠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나마 어느 정도의 자본이 받쳐준다면 백 번 양보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 없는 청년이 빚을 지고 대규모의 최첨단 농장을 조성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오히려 바보 같은 결정이 아닐까.

올해 초 많은 인기를 끌었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연예인 김생민이 나와 일반인이 제출한 영수증을 분석해 재무상담을 해주며 불필요한 소비에 대해 어리석다는 뜻의 ‘스튜핏’을 외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지금의 스마트팜이 이 프로그램에 나간다면 ‘스튜핏’을 연달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작물이 심겨져 있는 농장에 농민이 가지 않고도 돌볼 수 있다는 게 무슨 대단한 장점이라고 강조해서 홍보하는지 모르겠다. 농장 구석구석에 고가의 센서를 달아서 작물의 생체정보와 온습도 등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해서 알 수 있게끔 한다는 게 그렇게 혁신적인 것일까. 농부가 밭에 직접 가서 작물의 생육 상황을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주면 되는 일인데, 그걸 못해서 비싼 장비를 구입하다 못해 아예 완전히 새로 지으라고 권유하는 것은 그야말로 ‘스튜핏’을 외쳐야 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정부가 ‘스마트팜’, ‘혁신’ 이런 걸 홍보하는 과정에서 농촌을 열심히 지켜오며 온 힘을 다해 농사 지어온 분들을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높은 농자재 값에 널뛰는 농산물 값, 매년 바뀌는 졸속 정책 하에서도 계속 농사를 지어왔다는 건 끈기와 노력, 높은 기술력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이런 기존 영농 방식에 대해 농정당국의 담당자가 스마트팜의 일자리와 대비해 ‘단순 생산직’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에서 나는 큰 실망감을 넘어 분노마저 느꼈다.

우리나라 영농이 ‘스마트’하지 않아서 경쟁력이 없으며, 청년들은 힘든 노동이 싫어 농촌으로 오지 않는다는 분석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잘못된 전제일 뿐만 아니라 청년들과 농민들을 우롱하는 무례한 태도다. 정부가 좀 더 깊이 있는 농정 철학과 정책으로 접근해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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