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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어떤 미래를 꿈꿀 것인가

[한국농어민신문]

김현희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 활동가

토양의 특성을 파악하고, 작물의 성숙 정도를 살피고, 적기에 필요한 기술을 가진 숙련된 농부의 지혜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한다…작물에 관해, 농사에 대해 잘 모르는 청년농부도 그저 스마트팜 시스템을 철저히 연구해서 알려주는 대로 관리하기만 하면 소위 말하는 대박 농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작년에 청년들과 함께 농사지은 토마토, 가지, 상추에 고기를 곁들여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언젠가는 이 토마토와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은 정말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 날이 올지도 몰라. 환경 파괴와 과학기술 발전으로 진짜 돼지를 기르지 않고 공장에서 고기 부위만 배양해서 기르고, 태양을 보고 자란 신선한 작물 대신 공장에서 영양을 계산해 나온 가짜 채소들을 먹을 테니까. 그때가 되면 자연적으로 기른 것들은 너무나 귀하고 비싼 음식이 돼서 유튜브 같은 동영상으로 스타들이 대신 먹는걸 보면서 어떤 맛일지 상상하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몰라.”

이 대화에 참여했던 모두가 그렇게 될 미래가 매우 끔찍하다고 말하면서도 있음직한 일이라는 의견을 나눴다. 지금 정부에서 그렇게 대단하게 조명하고 있는 ‘스마트팜’, ‘식물공장’ 등을 상상하자면 어느 정도는 그럴싸한 추측이다. 스마트팜은 첨단 기술을 이용해 농부가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농장을 꿈꾸고 있고, 식물공장은 더 나아가 햇빛도 필요 없는 식량 생산을 목표로 한다. 이들이 바라보는 농업의 미래는 어떤 그림일까. 농부도 농장도 없는 그저 식량 생산에만 고도화되어 있는 기계 같은 시스템이 펼쳐지는 농업 현장은 과연 아름다울까.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열심히 돈과 기술과 힘을 써가면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일까. 지금 당장 환경 파괴를 멈추면 될 일을, 환경 파괴 속에서도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진보한 미래 기술이라는 찬양을 하고 기존의 자연스러운 생산 방식을 경쟁력이 없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매도한다.

토양의 특성을 파악하고, 작물의 성숙 정도를 살피고, 적기에 필요한 기술을 가진 숙련된 농부의 지혜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한다. 작물을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 보내면 스마트팜 프로그램이 분석해서 생육 상태를 알려주고 해야 할 작업을 지시한다. 작물에 관해, 농사에 대해 잘 모르는 청년농부도 그저 스마트팜 시스템을 철저히 연구해서 알려주는 대로 관리하기만 하면 소위 말하는 대박 농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공장식 농업의 청사진 앞에서 우리가 참을 수 없이 분노하는 이유는 기존의 농업 및 농업 관련 종사자에 대한 멸시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뿌리고 거두는 농부, 농장을 친환경적으로 운영해가기 위한 오랜 세월의 지혜를 갖춘 농부를 그저 단순 생산직으로 치부하면서 자긍심을 갖고 지역과 땅을 건강하게 가꾸어 오던 수많은 농가들을 ‘구조조정’하길 원한다. 이미 농업인구를 국민의 5%까지 줄여놓고서도 여전히 우리나라 농업의 문제점 중 하나로 영세화를 꼽는다. 좀 더 거대화되고 거점에서 관리 가능한 규모로 만들어야 살충제 계란 파동도 막을 수 있고, 가축 전염병도 예방할 수 있으며, 작물별 수급조절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지속가능한 농장을 운영해오던 소농에 대항해 큰 규모로 농사를 지어야만 농업보조금을 지원하고, 위생 및 안전이란 미명으로 엄청난 비용의 시설들을 강제로 갖추게끔 한다. 결국 이런 과정을 겪다보면 자본의 위세에 눌린 대부분의 소농들은 버티지 못해 하나둘 농촌을 떠나고, 그중 백의 한 명 정도가 규모를 갖춰 이른바 성공한 농업인이 되면 이를 우리나라 농업의 성공사례로 치켜세운다. 이 얼마나 잔인한 농정이란 말인가.

농업 역시도 제품을 생산하는 하나의 산업군으로만 보는 환원주의적 시각에서 지금의 ‘농업혁신’, ‘스마트팜’, ‘미래형 영농’ 등의 부상은 필연적인 것이며, 되돌릴 수 없는 거대한 시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농부는 결코 그런 농촌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기계가 아닌 내가 직접 각각의 특성을 알고, 챙겨줄 수 있는 규모로만 돼지를 기르고 싶다. 처음에는 좀 헤메겠지만 해가 지날수록 농사기술과 작물에 대한 이해가 늘어가는 농사를 짓고 싶다. 지식이 아닌 지혜가 깊어지는 성찰적인 삶을 살고 싶고, 지역과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소통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한 농사 규모를 찾고, 땅과 자연을 살리는 건강한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잘 가꿔나가고 싶다.

우리 농촌도 그랬으면 좋겠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소농들이 더 많아지고, 또 그들이 지속가능한 친환경 농사를 영위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 들어오고, 건강하고 재미있는 삶을 꾸리는 기회는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지금처럼 사람을 내쫓기만 하는 농촌이 아니라 좀 어수룩한 청년들도 받아줄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되길, 이 새해에 감히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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