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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풀꽃 같은 마을사람들김현희 /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생생마을 콘테스튼가 나갔을 때도 진짜 너무 좋았거든. 딸들한테 자랑을 했어. 우리 동네가 500만원 탔다고 카톡하니까 다들 놀라고. 그때 너무 좋았어. 그때 정이 든 거 같애. 밤마다 연습한다고 만나서 같이 웃고 먹고. 전주 오고 갈 때, 대전 갈 때, 그때 정이 든 거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이다. 나에게는 우리 할머니가 참 풀꽃 같은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정이 많으셨지만 억세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으로 엄마에게 평생 사랑한다는 살가운 표현 한마디를 해본 적 없는 분이셨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의 행동과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딸인 엄마보다 아들만 우선하는 모습이 밉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생 때 건강이 크게 안 좋아진 할머니를 간병하면서, 나는 할머니를 오랫동안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얼마나 상처와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는지 그럼에도 얼마나 사랑스러운 성품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아프면서 어린아이 같아진 할머니는 손녀의 채근에 못 이겨 엄마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 줄 알게 되었고, 이후에는 병실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수시로 고맙고 예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여 간호사들이 따로 찾아올 정도로 애정을 받는 환자가 되었다. 할머니의 변화 과정을 보면서 나는 몰랐던 한 존재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신비한 일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진짜로 축적해야 하는 것들은 재산이나 부가 아니라, 이렇게 존재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험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찾아왔던 순간이었다. 

최근에 나에게 할머니와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마을 행사가 있었다. 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풍산면 두지마을에서 마을사람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 ‘복작복작 재미지게 산당께’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인원이 모이지는 못하고 마을사람들 위주로 조촐하게 출간기념회를 열었는데, 나는 두지마을의 언니와 함께 축하공연을 한다는 이유로 행사에 초대받게 됐다.

두지마을은 생생마을 콘테스트에서 전라북도 1등, 전국대회 입선을 한 마을로 밖에서 보기에도 활동적이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마을이다. 과거 두지마을은 농민운동을 하는 청년들이 몇몇 들어와 살고 있었는데, 투쟁하고 각자 생활하느라 마을일은 영 신경을 못 썼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 어르신이 “밥 먹고 잠자고, 차타고 휙 나가면 동네사람이 아니고 하숙생이여”하는 말을 듣고는 마을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단다. 이후 바깥 활동을 줄이고 마을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기 시작했고 사업을 받고 다양한 모임들을 만들어가며 복작복작 재미나게 살아가다가 이번엔 책도 출간했다.

책을 내기 위해 마을 출판사까지 창업한 선영언니는 구술 생애사를 통해 마을 할머니 세 분의 삶을 꼼꼼히 옮겨냈고, 마을사람들이 가진 기술과 재주, 살아가는 이야기들도 취재해서 담았다. 그 외에도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마을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꼭지씩 자신의 이야기를 실었다. 마을사람 모두의 삶이 이 350여 페이지 속에 꽉꽉 눌러 담겨있었다.

책을 읽어보니 한분 한분의 삶이 모두 한권의 소설 같았다. 어머니들이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산후조리도 못해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 시절 치열했던 서사를 읽으며 어르신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개인의 삶 없이 농촌에서 며느리와 엄마로서 살아야만 했던 어머니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그 시절 겪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풀어놓는 대목들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마을 콘테스트에 출전한 내용이었다.

“생생마을 콘테스튼가 나갔을 때도 진짜 너무 좋았거든. 딸들한테 자랑을 했어. 엄마는 아파갖고 춤은 못 춰도 무대에서 깃발은 들었다. 우리 동네가 500만원 탔다고 카톡하니까 다들 놀라고, 나는 자랑하고 그랬어. 그때 너무 좋았어. 젊은분들 와서 살아도 사실상 나하고는 편하게 대화할 시간이 없었잖아. 항상 낯선 사람으로만 생각이 들고, 대화가 없었으니까. 마주칠 시간도 없고 대화할 시간도 없고...그때 정이 든 거 같애. 밤마다 연습한다고 만나서 같이 웃고 먹고. 전주 오고 갈 때, 대전 갈 때, 그때 정이 든 거야.”

사실 나는 이전까지 마을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행복마을을 겨룬다는 내용에 좀 냉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회를 직접 준비했던 어머니의 말을 읽으며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콘테스트를 준비하는 시간과 과정이 서로를 더욱 자세히 보고, 오래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이 기회를 통해 마을에서는 이전에 몰랐던 서로의 예쁨과 사랑스러움을 발견했을 것이다.

마을에서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은 축적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 책만 해도 그렇다. 마을 안에서 선영언니와 어머니들은 몇 십년간 축적된 긴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속에 있는 이야기까지 안심하고 꺼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문 구술사가 가서 취재했다면 이렇게 내밀한 이야기들이 책에 실릴 수 있었을까. 아마 어머니들은 입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또 선영언니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봐왔던 어머니들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며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일을 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마을과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 한 자락 내어주지 못했던 나에게 이번 출간 기념회는 ‘뭣이 중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끔 만들어준 행사였다. 결국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앞으로는 나의 시간과 마음을 잘 재배치해서 이웃과 충분히 사용하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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