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내년에도 코로나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아이들과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때 친환경 농산물 교육이라고 무작정 신토불이를 외치며 관행 농산물은 나쁘고 친환경 농산물은 좋다 하는 당위적인 교육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아이들이 고민해볼 수 있는 생각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수업을 만들고 싶다.

코로나 19로 올해 정말 많은 삶의 지형이 바뀌었지만 농업에서는 체험 농가들의 피해가 참 컸다. 많은 체험과 프로그램이 취소되면서 농가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도 매년 친환경 농가들과 함께 친환경체험 교육을 진행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사업예산 대부분을 반납해야 했다. 조금 남은 예산으로는 학생들이 농가로 가는 게 아니라 농가에서 직접 체험할 거리들을 가지고 교실로 찾아가는 교육을 진행했는데, 아무래도 농장을 직접 보여주지 못하고 진행되는 것이라 한계가 많았다.


건강하게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장은 그 자체로 훌륭한 교육 현장이 된다. 친환경 논과 밭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살고 있고, 각 시기마다 변하는 식물의 다양한 모습은 완성된 수확물만 만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자극 거리가 된다. 이런 공간을 다 보여주지 못한 채 농산물만을 가지고 진행되는 교육은 무언가가 빠진 듯 한 밋밋한 느낌이었다.

이런 밋밋한 느낌을 채우기 위해 올해는 ‘먹거리 교육’에 조금 더 힘을 실었다. 토종씨앗을 채종하고 증식하는 순창 씨앗모임에 식생활 강사 양성 교육을 받은 언니들이 있어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교안을 만들었다. ‘건강한 맛 탐사 원정대’라는 주제로 체험하는 각 농가의 특징과 체험 하는 아이들의 연령대에 맞춰 식생활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농가들이 교실에서 체험 준비를 하는 중간 중간에 먹거리 교육을 진행했다.

이런 시국에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참 조심스러운 일이었지만, 아이들이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로부터 왔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즐거웠다. 나는 밀농사를 짓고 있는 하연언니 소세지빵 만들기 체험에 식생활 강사로 들어갔는데, 언니가 만드는 소세지 빵의 재료들이 모두 어디로부터 오는지 하나하나 소개하며 아이들과 직접 식품 구성 안내문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 밖에서 사 먹는 소세지빵의 식품구성 안내문과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 보기도 했다. 밖에서 사먹는 소세지빵은 빵과 소세지라는 단순한 구성인데도 등장하는 나라만 9개 나라였다. 돼지고기만 하더라도 미국,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온다고 적혀있었다.

생협에서 파는 핫도그와도 비교했는데 생협 핫도그는 무항생제 돼지고기를 비롯해 100% 국내산으로 만들었지만, 역시나 어디서 누가 생산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반면 우리가 함께 만드는 소세지빵에 들어가는 빵과 소세지, 양파와, 쌈채소, 방울토마토 등은 모두 순창 친환경 농가가 생산해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는지 소개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생산자를 알 수 있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로컬푸드라고 한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들과 직접 음식을 만들면서 학교 급식에 들어가고 있는 지역의 친환경 농가들을 소개할 수 있어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이 외에도 저학년 학생들은 다양한 농산물 오감 놀이를 진행했고, 고학년 학생들은 식품 첨가물 문제나 공정무역, 농산물 가격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보았다. 그러면서 느꼈다. 농사를 매개로 우리가 전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정말 무궁무진하구나. 그래서 하반기 순창 씨앗모임에서는 회원들의 요청으로 텃밭강사 양성교육을 열었다. 먹거리 정의 교육도 받고, 텃밭 교육 사례, 논살림 인문학 등 다양한 교육을 들었는데,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농업의 가치들이 수업으로 들으니 훨씬 더 구체적이고 다채롭게 다가왔다. 앞으로 농업을 매개로 아이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심도 있게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년에도 코로나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아이들과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때 친환경 농산물 교육이라고 무작정 신토불이를 외치며 관행 농산물은 나쁘고 친환경 농산물은 좋다 하는 당위적인 교육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아이들이 고민해볼 수 있는 생각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수업을 만들고 싶다.

왜 요즘 우리가 먹는 끼니의 대부분은 밀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2%도 안 되고, 우리 주변에 밀 농사를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인지. 왜 순창에는 생협이 없어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생협의 개념을 설명하기조차 힘든 것인지. 우리의 먹을거리 대부분이 우리가 알 수 없는 먼 곳에서 만들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왜 친환경 농가들은 판로도 마땅치 않고 기르기도 어려운 친환경 농사를 계속 짓고 있는지. 또 수확량도 떨어지는 토종씨앗을 왜 그렇게 힘들게 지키려는 것인지. 농산물이 비싸져도 왜 정작 농가들은 돈을 벌지 못하는지.

사실은 어른들조차도 잘 대답해줄 수 없는 이런 농촌의 상황을 아이들도 함께 고민하고, 때로는 아이들이 오히려 속 시원한 답을 내줄 수 있는 그런 교육 현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먹거리 문제와 농업농촌의 현실은 결국 이 다음 세대 아이들은 더 심각하게 맞이하게 될 문제이기에.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과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부디 2021년에는 코로나가 종식되어 아이들이 기껏 만든 체험 음식을 먹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가야 하는 일 없이, 같이 둘러앉아 건강한 농산물을 먹으며 마음껏 소감을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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