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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내 농산물은 어디로 갈까

[한국농어민신문]

김현희 청년농부·전북순창

애정을 다해 키운 나의 농산물 역시도 생산과잉 시대에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신세가 됐다. 맛있는 농산물 조차도 줄을 세워 놓고 크고 좋은 상품만 정상적인 가격을 받는 유통구조 속에서, 작고 흠 있는 농산물은 수매조차 해주지 않는 상향 평준화된 농산물 사이에서, 작지만 마음을 다해 키운 소중한 내 농산물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작년에 청년들과 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마음이 크게 상했던 사건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첫 방울토마토 수확을 하면서였는데, 몇몇 청년이 각자 지인으로부터 주문 들어온 방울토마토를 더 좋은 것으로 넣어주려고 따로 표시해 포장하는 일이 있었다. 물론 본인은 자신을 보고 시켜준 지인을 생각해 하는 행동이었겠지만, 그럼 다른 사람의 방울토마토는 상대적으로 소홀해도 된다는 뜻인가 하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공동 작업을 하면서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사건이다.

두 번째로 마음 상한 일은 첫 수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방울토마토에 잎곰팡이병이 오기 시작하면서 맛이 떨어져 갈 때의 일이다. 열심히 아침저녁으로 방제를 하니 병이 더 퍼지지는 않았고, 잘 익은 방울토마토가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어 어디로든 판로를 고민해야 할 시기였다. 회의 때 각자 주변에 홍보해서 팔아보자고 했는데 한 청년이 ‘맛이 없는 걸 지인들에게 홍보해서 팔기가 그렇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때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그럼 누구는 팔고 싶어서 파느냐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참고 대화로 잘 풀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사건은 이후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았다.

작년 우리의 방울토마토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데다 비료도 사용하지 않고 길렀지만 처음해보는 농사라 초반 습도 조절을 못해 수확량과 맛은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졌다. 결국 우리가 내세운 것이라고는 ‘초보 청년농부가 열심히 농사 지었다’는 사실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초라하지만 어느 정도는 용서될 것 같은 ‘초보 청년농부’라는 이름으로 주변에 힘겹게 방울토마토를 팔아야 했다.

보통 농산물을 팔 때는 내 것이 얼마나 다른 사람의 것보다 뛰어난가를 내세운다. 무농약이니, 유기농이니, 남다른 농법을 사용했느니, 당도가 높으니, 품종이 다르니 등 무언가 하나라도 남보다 나은 점을 홍보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정직하게 봤을 때 내 농산물이 남의 것만 못한 것 같으면, 그때는 무엇이라 말하고 팔아야 할까. 이는 사실 농사 초보인 나에게는 큰 고민이었다. 내 농산물을 누구와 어떻게 비교를 한단 말인가.

작년 우리의 방울토마토는 그나마 직거래로 팔았으니 몇백만원의 수익이라도 낸 것이지, 공판으로 나갔다면 더욱더 암울했을 것이다. 물량이 가장 많이 나왔던 7월은 선별을 마친 상품 방울토마토도 그다지 경락가가 높지 않았으니, 우리 것은 공판에 냈다면 물류비와 박스 값도 제대로 건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 우리 사회가 입시와 취업 등의 무한경쟁에 내몰린 것처럼, 애정을 다해 키운 나의 농산물 역시도 생산과잉 시대에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신세가 됐다. 맛있는 농산물 조차도 줄을 세워 놓고 크고 좋은 상품만 정상적인 가격을 받는 유통구조 속에서, 작고 흠 있는 농산물은 수매조차 해주지 않는 상향 평준화된 농산물 사이에서, 작지만 마음을 다해 키운 소중한 내 농산물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사실 올해 나의 판로는 그다지 복잡할 게 없다. 영세농인 나는 각 품목별 수확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전량 직거래로 다 소화가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두릅, 꿀, 블루베리를 팔았고 앞으로는 사과참외, 고구마, 참기름, 들기름 등을 판매할 예정인데, 고구마를 제외하면 모두 많이 팔아봐야 100박스도 안 되기 때문에 직거래로 파는 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직거래는 에너지가 정말 많이 드는 방식이다. 특히 저장기간이 짧은 농산물들은 사전에 미리 예약을 받아야 하고, 그에 맞춰 수확이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초보들이 실수 없이 진행하기가 정말 힘들다. 그나마 나는 서울에 부모님이 계서서 인맥을 통한 판매가 수월한 편이지만 농사만 지어오신 지역의 나이든 어르신들은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인터넷과 TV, 신문매체에서 접하는 농업은 온통 성공한 농사 이야기뿐이다. 새로운 품종, 최첨단 기술, 남다른 노하우를 가진 농부가 써내려가는 농촌 희망스토리이다. 여기서 그려지는 남과 비슷한 농사를 지었다가 겪는 실패는 성공을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 속 내 주변에서는 실패로 묘사되는, 가격과 날씨에 따라 울고 웃을 수밖에 없는 ‘보통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물론 정말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재능이 있어서 특출난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사람들이 잘되는 것에 불만은 없지만, 나는 이제 좀 더 보통의 평범한 농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일반적인 유통구조 속에서 평균 정도, 어쩌면 평균 이하의 농산물을 생산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이 어떻게든 내일을 기약하고 영농을 유지해 나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언론에서도 어떻게 하면 내 농산물을 차별화해서 살아남을까 하는 고민보다는, 평범한 농부들이 어떻게 하면 계속 농사를 안정적으로 지을 수 있을지, 좀 더 넓고 보편적인 시각에서 고민하며 써내려가는 이야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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