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 활동가

[한국농어민신문]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모두에게 집을 구하는 문제는 넘어야 할 큰 산이겠지만, 청년들에게 유독 이 산은 더욱 험준하다. 우선 자본이 충분치 않고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빈집의 선택지 또한 많지 않기 때문이다…제 발로 찾아온 청년도 다 받아줄 수 없으면서 새로운 청년을 모집하는 귀농교육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농촌에 정착하기 위해 청년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농지보다도 농업 교육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살 집이라고 생각한다. 귀농을 생각하든 귀촌을 생각하든 살 집을 구하지 않고서는 그 이상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주거에 대한 고민 없이 청년들에게 농사를 짓고 창업하라고 독려하는 것은 공허한 구호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기반과 연고를 갖춘 농업후계자만을 염두에 두고 청년 귀농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면, 농촌에서의 청년 주거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 농촌에 내려온 청년들은 주거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청년을 위한 농촌 주거정책은 전무한 실정인 데다 오히려 다른 귀농자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나 역시 1인 가구로 순창에 내려왔기 때문에 2인 이상의 가구가 전입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이사비, 집수리비, 집들이비 등의 귀농귀촌 지원금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집수리비 등의 지원이 가능했다면 조금 상태가 안 좋은 빈집이라도 고쳐 살아 볼 엄두를 냈을 텐데, 그럴수 없다 보니 수리 없이 당장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느라 돈도 많이 쓰고 고생도 많이 해야 했다. 또 수리된 빈집에 1년간 살 수 있도록 운영되는 ‘귀농인의 집’ 역시 2인 가구가 우선이기 때문에 혼자 내려온 청년들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다.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모두에게 집을 구하는 문제는 넘어야 할 큰 산이겠지만, 청년들에게 유독 이 산은 더욱 험준하다. 우선 자본이 충분치 않고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빈집의 선택지 또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순창의 경우 인구는 매년 조금씩 줄고 있는데, 매해 집값과 땅값은 급등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 마을을 돌아봐도 한 집 걸러 한 집은 빈집이지만 정작 구입하거나 빌려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은 거의 전무하다. 이 문제가 비단 순창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방치된 빈집의 경우 도시에 있는 자식들이 팔 의지가 없는 경우도 있고, 설령 팔 의향이 있더라도 상속 등의 문제가 원활하게 처리되지 않아 그냥 묶여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임대로 살 수 있는 집은 노력하면 찾을 수는 있겠지만, 오래되고 방치된 빈집을 어느 정도 살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수리비가 많이 든다. 이를 임차인이 큰 돈을 들여 고쳐 살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치지 않고 바로 들어가 살 수 있는 빈집은 잘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귀한 몸이라 나오자마자 치열한 입주 경쟁이 벌어진다. 부동산이 없는 농촌에서 좋은 집을 얻는 것은 결국 마을 이장 등을 통한 정보전이 좌우하는데 이 과정에서 새롭게 내려와 농촌생활을 탐색하고 있는 청년들은 정보에 접근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귀농에 대한 꿈을 품고 농촌에 찾아왔지만, 집이라는 현실 문제에 가로막혀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제 발로 찾아온 청년도 다 받아줄 수 없으면서 새로운 청년을 모집하는 귀농교육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는 빈집을 수리해 장기임대 할 수 있는 사업을 받아 청년들에게 우선적으로 입주하게끔 하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계를 많이 느낀다. 10개의 빈집을 수소문해 돌아다니면 그 가운데 한정된 예산 안에 수리가 가능하고, 지원사업의 요건을 충족할 정도로 서류가 깨끗하게 정리된 집은 2~3채도 되지 않는다. 정책적으로 빈집을 정리하거나, 군유지 등을 활용한 청년 임대주택 등의 새로운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지금 상황에서는 청년들이 찾아와도 지역 정착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행 청년 농업정책의 경우 농지은행 등을 통해 농지를 구하는 부분에 대한 대책은 세워나가고 있지만 주거에 대한 부분은 대책이 없다. 청년들이 도시처럼 부동산 등을 이용해 발품을 팔면 집쯤은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7500만원의 귀농인 주택융자를 받아 빈 땅에 집을 척 올려서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일까? 어떻게 청년이 농촌에 들어와 정착할 것인지 세심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 새로운 청년들을 농촌에 정착하도록 할 의지가 있다면 농지나 농사기술보다 한 발 앞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 청년 주거 문제이다.

현재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청년귀농 장기교육으로 함께 농사짓고 있는 5명의 청년들이 가장 만족하는 부분 중 하나가 주거다. 귀농인 마을의 빈집 4채를 교육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모두들 안전하고 부담 없이 지낼 수 있는 집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계속 순창에 남고 싶지만 교육 이후에 머물 수 있는 집을 구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크다.

다양한 형태의 주거시설이 밀집돼 있는 도시에서도 청년 임대주택 등의 청년 주거정책들이 하나 둘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은, 자본이 없는 청년들이 접근할 수 있는 주거시설이 비싸고 열악해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도시보다 더 열악하다고 할 수 있는 농촌 주거환경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 속에서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맞춤형 주거정책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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