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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누가 권리를 주었는가

[한국농어민신문]

김현희 청년농부·전북순창

지혜로운 농부들은 수 천년간 누군가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온 씨앗이 내 것이 아닌 모두의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전국의 수많은 청년농부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청년농부’라는 명칭을 그들은 대체 무슨 근거로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순창에는 토종씨앗모임이 있다. 순창 지역을 비롯한 다양한 토종 종자들을 수집하고 증식해서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모임이다. 초기에는 해마다 몇 번 정기적으로 모여 씨앗을 나누고 했던 것이 작년부터는 함께 공동 채종포를 만들고 정기적으로 모여 농작업을 하면서 순창의 씨앗 자원들을 지켜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씨앗모임의 지원 속에 두 언니가 읍내에 방앗간을 열었다. 토종 곡식류를 심어도 도정해주는 곳이 없었는데 이런 소농들을 위해 소규모 잡곡도 도정할 수 있고 모임도 가질 수 있는 복합공간을 만든 것이다. 지난 5월 초에 개업식을 했는데 이날 씨앗모임 회원들이 정성을 다해 기른 토종 모종들을 비롯한 토종 씨앗 등을 방문객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눠주었다.

‘농부는 굶어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농부는 씨앗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재미있게도 씨앗으로 쓴다고 하면 아무런 대가 없이 종자를 선뜻 나눠주곤 한다. 황금보다 비싼 씨앗이니, 종자전쟁이니 하는 말이 심심찮게 사용되지만, 씨앗을 독점하려고 하는 것은 대기업의 종자회사들 뿐 농업 현장에서 농민들은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받은 씨앗을 퍼트린다. 이들은 내가 받은 씨앗이 온전한 ‘내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천년간 누군가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왔기에 오늘날 내가 이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것이며, 나의 손 역시 이 씨앗의 역사에 잠시 스쳤다가 지나갈 뿐이다. 그런데 어찌 감히 내가 이 씨앗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그저 잠시나마 이 장대하고도 무구한 씨앗의 서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씨앗을 받아쓰고 나누게 되는 것이다.

처음 내가 순창에 내려와 씨앗모임에 나갔을 때는 씨앗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괜찮다 싶은 씨앗은 다 심어볼 요량으로 죄다 얻어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씨앗 한두 개 만이라도 제대로 받아서 꾸준히 채종해 나누는 게 목표다. 대단한 일을 이뤄내고 많이 가져야겠다는 욕심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가꿔가고 싶다는 책임감이 생기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농부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최근 모종이나 종자에 관련된 규정들이 점차 까다로워지고, 기업들에게 유리해지고, 소농들의 판매를 보장할 수 없게끔 바뀌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대체 누가 이들에게 독점적으로 씨앗을 판매할 권리를 주었을까. 몇 천년 동안 손에서 손으로 이어진 씨앗을 잠시 실험실에 넣어서 특징을 뽑아냈다고, 그 기업에만 판매권을 보장한다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모르겠다. 농가들이 소규모로 모종을 내서 주변 농가들에게 공급하던 것도 이제는 ‘육묘업 등록제’가 적용돼서 어려워졌다는데, 왜 자연스럽게 해오던 일들을 다 불법으로 만드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지혜로운 농부들은 씨앗이 내 것이 아닌 모두의 것임을 알고 있어서 수확한 농산물만 내 것이라 하고 씨앗에는 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이걸 기업들이 법을 만들고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니 참 기가 막힐 따름이다.

최근 비슷한 이유로 분노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강원도의 한 단체가 ‘청년농부’라는 명칭을 특허청에 등록하고 이에 대한 독점적인 사용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먼저는 이러한 단어를 등록하게끔 허락한 특허청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두 번째로는 ‘청년농부’의 명칭을 사용해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 청년농부들에게 실질적인 제동을 건 해당 협동조합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들은 ‘청년농부’란 명칭을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이 단체는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에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다른 수많은 청년농업인의 권리를 뻬앗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청년농부’의 이미지를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것으로 인식시켜버렸다. 대체 누가 이들에게 이럴 권리를 주었는가. 특허청은 전국의 수많은 청년농부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을 권한이 있는가. 또 독점을 주장하는 단체는 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 대체 어떤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 궁금하다.

줄어가는 청년농부들을 늘리기 위해 국가가 나서 다양한 정책과 홍보를 펴고 있는 이때에 ‘청년농부’의 독점적 사용을 주장하는 것은 열심히 정착하고자 노력하는 수많은 청년농부들을 위축시키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누구도 ‘청년농부’라는 말을 독점적으로 쓸 권리를 줄 수 없고 주어서도 안 된다.

과거의 농부들이 자신의 씨앗이 귀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자신만 심었다면, 지금 우리가 심는 토종 씨앗도 없었을 것이다. 씨앗은 더 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고, 나눠질 때 생명력을 가지고 멀리멀리 퍼질 수 있다. 이처럼 ‘청년농부’라는 명칭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하고 널리 퍼져야 그 의미가 있는 것이지, 몇 명도 채 안 되는 단체에서만 사용하게 된다면 이 명칭은 오히려 생명력을 잃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해당 단체는 다시금 진지하게 이 부분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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