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순창군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일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 센터 출신의 한 형님이 플리마켓을 열어보자고 제안했다. ‘곡성에도, 구례에도 멋진 플리마켓이 열리는데 왜 순창에는 없느냐’는 게 그 이유였다. 이때부터 순창에도 ‘촌빨작렬 시시콜콜 시골골목장’이란 이름의 작은 장터가 열리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활성화를 위해 떡볶이와 어묵 탕을 만들 사람, 전 부칠 사람, 중고물품 판매할 사람, 수공예품 팔사람 등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적성에 맞춰 강제로 역할을 배정받아야 했다. 공간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군립도서관 앞에서 했다가, 순창농협 군지부 앞으로 이동했었고, 이후 순창시장 농협 앞 공터, 군청 앞 잔디밭 등 계속 장소를 바꿔가며 장터를 이어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촌시장은 왠지 이민자 시장 같은 느낌이 났다. 과거 외국에서 장기 체류할 적에 인근 공원에서 주말마다 열렸던 이민자 시장은 단순한 재화의 교환 장소가 아닌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정보를 교환하고, 안부를 묻는 활발한 사교의 장이었다. 촌시장 역시 가까운 귀농자들을 중심으로 참여 독려나 홍보가 이뤄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장은 오랫동안 못 봤던 이웃 귀농자들을 만나는 만남의 장이 되었다. 집은 구했는지, 요즘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농사를 짓는 지 등을 들으며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고 안 쓰는 물건들도 팔면서 시장은 이어졌다. 각자 맛있는 음식을 해서 가져오기도 하고, 맥주나 술을 담가 선보이기도 했다.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은 양이 많지 않아 가져오는 족족 잘 팔려나갔다. 직접 만든 비누나 액세서리를 꾸준히 가지고 나오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순창 내 유동인구가 적고, 외부인의 유입이 많이 않다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시장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판매자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물건이 많이 팔리지 않으니 더 이상 나오지 않기 시작했고, 초기에 열심히 참여했던 사람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며 침체기를 맞게 됐다. 여기에 더해 아무리 노력해도 촌시장이 귀농자들만의 장터처럼 비춰지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후 지역 태생의 다른 청년 그룹이 촌시장을 맡아 열기도 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활성화가 되지 않자 금방 다시 열리지 않게 되었다. 

재작년부터 촌시장은 내가 죽공예 공방으로 입주해 있는 창림동 문화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창림마을에 입주한 공방 사람들과 소소한 방아실, 요일부억 마슬이 함께 모여 준비하고 있다. 비록 공방 앞 공터는 협소한데다, 참석하는 셀러들(파는 사람)의 면면이나 장터 분위기를 봐도, 다른 일반적인 플리마켓의 힙함(멋있음)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외부 방문객도 많지 않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을 만나 반갑고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어 좋다. 

작년부터 올해까지는 코로나로 인해 비정기적으로 열렸는데, 중간 중간 순창청소년 만화동아리 학생들이 와서 캐리커쳐를 그려주기도 하고, 봄에는 씨앗모임에서 모종 나눔 행사를 하며 신고가 들어올 정도의 흥행을 내기도 했다. 연말까지는 행정의 지원을 받아 문화체험 행사들을 다양하게 진행하다 보니 마을 어르신들과 모르던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5년째 열리지만 여전히 작고 소소한 장인 촌시장. 작년부터 내가 담당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크게 촌시장을 부흥시키겠다는 기대가 없었기에 별 부담 없이 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계속 지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까지가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지키다 보면, 힙한 감각을 가진 누군가가 또 뒤를 이어 더 멋지고 반가운 시장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가지며 이번 달에도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릴 촌시장을 준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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