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순창읍 가운데에는 '금산'이라는 마을 산이 있다. 나도 매년 연초마다 해돋이를 보러 가거나 가끔 등산을 가기도 하는데, 순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호젓한 산이라 순창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금산에는 8만평의 9홀짜리 골프장이 있는데, 최근 이 골프장을 18홀로 만들기 위해 기존보다 규모를 4배 정도 늘린, 24만평의 개발 계획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금산이 훼손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추가적인 개발 반대에 나섰다. 나 역시 반대운동에 동참했다. 주민 주거지와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위치라 다양한 피해가 예상되기도 하고, 소수 사람의 레저 활동을 위해 수많은 읍민의 쉼터인 금산이 더 파헤쳐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올 초 농사짓는데 물이 없어 고생했던 농부님들을 생각하면, 수영장만큼 많은 물이 필요하고, 담수 기능도 적은 잔디를 심기 위해 산을 깎아내는 것을 묵인할 수 없었다.
지역에서 골프장 유치를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앞으로 순창의 경제를 일으켜줄 미래 먹거리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골프 치러오는 사람들과 종사자들이 상권 활성화와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지역에 18홀짜리 골프장 하나 없어서야 하겠냐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골프장 수는 2021년 기준으로 514개이며, 이들의 각각 평균 면적은 약 30만평 정도로 육지 면적 대비 0.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새로 지어진 것까지 합치면 훨씬 늘어날 것이고, 단일 스포츠 중 단연 최고의 국토 면적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골프장 숫자와 규모도 전 세계적으로도 8위에 해당할 만큼 많다고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농지와 산이 골프장으로 바뀌었을까. 올 초 유래 없는 가뭄 속에서 해남 농민들은 경작도 못 하고 속을 태우는데, 농어촌공사가 인근 골프장에 농업용수를 팔아왔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지역에서 골프장과 농지가 물을 두고 경합하다 못해 물을 뺏기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농민들은 생산비를 따라가지 못하는 농산물 값에 신음하는 데 더해 작물을 기르기 위한 물마저도 뺏기고 있었다.
최근 전라북도 귀농·귀촌인 미래워크숍에 참여했다. 전북지역에 사는 귀농·귀촌인들에게 농촌의 앞날과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가장 부정적인 농촌을 상상해보라고 했을 때 누군가가 ‘도시 식민지’라는 이야기를 했다. 도시로부터의 착취당하는 것이 당연시된 농촌을 뜻하는 ‘도시 식민지’. 그래서 자연도 풍광도 농업도 모두 도시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진 농촌을 상상해 보게 되었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 농사를 짓는 농부가 아닌, 도시에서 원하는 값싼 식량을 생산하는 기업화된 농장의 노동자가 된다. 한쪽에서는 도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아름다운 경관마다 산을 깎고 나무를 밀어내 관광을 할 수 있는 골프장 같은 레저시설 들을 계속 짓는다. 도시에서는 더 이상 만들기 어려운 쓰레기 처리장, 하수 처리장, 발전소 등을 짓고 관리하는 일도 농촌이 도맡게 된다. 지역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소농들이 사라지고 인구와 자원, 자연이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기만 할 뿐 돌아오지 않는 농촌만큼 절망적인 상황이 있을까.
그런데 순창의 상황만 놓고 생각해봐도 벌써 어느 정도는 우리의 우려대로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위기감이 든다. 행복하게 순창에서 농사지으며 늙어가고 싶은 농민분들과 함께 지역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일을 찾아 무엇이라도 실천해 나가야 하는 때인 것 같다. 가끔 지역에 있으면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이나 막막함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마음을 굳세게 하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