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지금처럼 보유기능과 신청 중심의 명인 제도로 인해 명인의 위상이 높아지지 않고, 명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명인을 신청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개선할 여지는 없는 지 살펴보는 일은 매우 필요할 것이다.

ㅣ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두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빨갛게 버무려진 김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백김치, 동치미는 맛있게 먹었지만 고춧가루로 양념 된 배추김치는 하루에 한 조각도 먹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김치는 백김치만 먹으니 나 하나 때문에 엄마는 따로 백김치를 담는 수고를 하셔야 했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로 갖게 되는 수많은 식사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 참, 한국 사람이 이상하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하므로 그 말이 딱히 비난처럼 여겨지지도 않았다. 김치를 좋아하지 않아서 식생활에 불편을 겪는 일이 그러니까 전혀 없었던 셈이다.

결혼을 한 뒤에도 나는 김치 때문에 불편할 일이 없었다. 부부만의 독립 결혼 생할을 했으면 내 손으로 김치를 담그고 했을 텐데, 결혼 후 20년 가까이 시어머니께서 살림을 챙겨주신 덕분에 김치를 담는 일은 내 일이 아니었다.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 깍두기 등 다양한 김치들이 밥상 위에 올라왔다. 근무하지 않는 주말에 시어머니가 김치를 담그셔서 나도 할 요량으로 옆에서 팔을 걷어붙이면 시어머니는 잔심부름만 시키셨다. 그래서 밥이며 반찬은 모두 내가 했지만 40대 후반까지 내 손으로 김치를 담아본 적이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김치가 밥상에서 떨어진 날도 없었으므로 김치에 대해 고민할 일도 당연히 없었다.

몇해 전까지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해마다 김장용 배추와 무를 키우고 팔았다. 초겨울이 되어 추위에 얼까 조심조심 날씨를 살피고 배추와 무를 수확하는 일은 그해 농사의 마지막 일이었다. 수확한 배추를 창고 가득 쌓고, 저온 저장고에 무를 보관하면 저물어가는 한해가 실감이 났다. 누군가의 밥상에 귀한 김치로 올라갈 그 배추를 키우면서도 정작 나는 배추와 친해지지 않았다.    

나는 사별 한부모가족의 가장이다. 남편과 사별한 후 시어머님께서는 거처를 달리하셨다. 김치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아직 김치냉장고 가득 들어있었던 김치를 꺼내어주다가 여름, 볕이 집으로 가득 들어올 때 마당 텃밭에 조금 심은 열무를 뽑아 태어나 처음, 내 손으로 열무김치를 담갔다. 아삭아삭한 열무김치로 비빔밥을 해 먹고, 비빔국수를 해 먹었다. 시장에서 쪽파를 사서 파김치를 담고, 마당에서 얼갈이배추를 뽑아 물김치를 담갔다. 하나씩 하나씩 담을 수 있는 김치의 종류는 늘어났지만 여전히 배추김치는 숙제 같았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오고, 아이들이 비대면 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학교급식으로 나가는 김치가 너무 많이 남아 판매가 시급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학교급식 생산자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지 잘 알았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김치를 주문했다. 김치는 맛있었고, 무엇보다 공공을 위해 담가진 김치를 구입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리고 어느날 불현 듯 엄마와 시어머니가 주신 김치가 그저 김치가 아니라 살림이었음을, 두분은 밥상 명인이었음을, 김치를 파는 업체 중 어느 업체는 미사여구가 전혀 없어도 살림의 마음으로 김치를 담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로 나는 날마다 여느 한국인처럼 김치를 먹는다.

요즘 썩고 곰팡이가 핀 배추와 무로 만들어진 명인 김치의 충격적 제조 실태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김치는 한국인 밥상의 기본이고, 존경할만한 기능인인 명인의 이름의 이름으로 브랜딩된 김치였으니 과히 명인 김치 파동이라 불릴만하다. 명인 식품 사고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명인이 스스로의 명예를 훼손한 식품사고들도 있고, 허위로 식품명인을 표시해 판매하다 적발된 사고들도 많다. 명인들은 수십 년 한길을 걸으며 전통문화를 지켜오고자 기능을 갈고 닦아 왔으니 이번 김치 파동으로 명인들이 모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처럼 보유기능과 신청 중심의 명인 제도로 인해 명인의 위상이 높아지지 않고, 명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명인을 신청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개선할 여지는 없는 지 살펴보는 일은 매우 필요할 것이다.

good, clean, fair food를 기본 철학으로 하는 국제슬로푸드협회는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전통식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지난 1997년부터 ‘맛의 방주’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전세계 5,700여개, 한국은 103개가 등재되었다. 맛의 방주에 오른 한국의 대표품목은 제주푸른콩장, 진주앉은뱅이밀, 영덕가자미밥식혜 등이다. 식품명인은 기능과 이를 보유한 사람을, 맛의 방주는 지켜야 할 종자나 식품을 지정의 근거로 한다.

제주푸른콩장은 맛의 방주에 올라있으면서도 식품명인 지정이 되어 있기도 하다. 기능보유자와 품목을 동시에 지정하고, 공공 영역에서 이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전제로 식품명인 제도를 보완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형 맛의 방주제도라 불러도 좋겠다. 식품명인은 기능인이 아니라 생물다양성, 전통문화의 다양성을 지속가능하게 지키는 생명 살림꾼, 파수꾼이어야 한다. 우리사회가 마땅히 존경할 수 있도록!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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