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꽃을 즐기는 일이 큰맘 먹어야 하는 일이 아니게 되려면 꽃을 사는 일이 무리가 아니라고 느껴질 만한 소득구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소득불평등이 완화되고, 소득격차가 해소되어야만 꽃소비는 안정적으로 진작될 것이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될 것이다.  

큰 아이가 올해 대학생이 된다. 백신 접종이 이제 시작되었으나 코로나19 펜데믹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므로 입학식은 당연히 열리지 않는다. 합격을 기뻐하며 등록금도 내고, 입학을 축하하며 큰맘 먹고 노트북도 사주었건만 그래도 마음 한편 서운한 것은 대견한 표정을 짓고 꽃다발을 건넬 수 없기 때문이리라. 입학식이 열렸다면 학교들이 있는 길거리마다 꽃을 파는 손길들이 분주하고, 향긋한 프리지아 한다발, 화사한 튤립꽃 한다발을 저마다 손에 들고 있었으리라. 화사하고도 생기 넘치는 분위기를 느껴볼 수 없는 건 그야말로 섭섭한 일이다. 

마당에 여러 꽃을 심어두기도 했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는 것처럼 지나다가 화원이 보이면 들어가 모종을 사서 나올 정도로 꽃을 좋아한다. 꽃을 살 때의 설레는 그 마음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꽃을 사는 일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축하해줄 일이 생겼을 때, 행사장을 빛내야 할 때, 마음을 전해야 할 때, 무얼 선물해야 할지 딱히 모를 때 그럴 때가 내가 꽃을 사는 순간이다.

지난해에는 언제 꽃을 샀나 생각해보니 창립행사를 여는 곳에, 장례식장에 화환을 보낸 것이 다였다. 요즘은 꽃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업체들도 제법 많아 나도 꽃을 정기구독해볼까 하고 가끔 생각하지만 늘 생각에 머물러있다. 주문 버튼을 누르려다가도 이 돈이면 다른 걸 할 수 있을텐데, 내가 키우면 될 텐데, 꽃병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와 결국 주문을 포기한다. 

그런데 이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비슷해서 어느 가수가 노래하듯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할 정도로 너나없이 꽃을 사랑해도 꽃을 사는 순간은 마치 국롤처럼 선물과 행사로 정해져있다. 한국인에게 꽃은 사치품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생활필수품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화훼농가들은 졸업과 입학,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처럼 대규모로 꽃이 소비되는 시즌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런 시즌들이 코로나19로 모두 취소되었으니 화훼농가의 어려움이 얼마나 클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물론이고, 많은 지자체들이 나서 화훼농가에게 희망을 주자며 꽃을 선물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나도 꽃을 살 생각이다. 그런데 꽃 한송이 사는 일에 동참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난해에도 꽃 사주기 운동은 있었고, 오프라인 행사들이 다시 열릴 수 있다고 해도 꽃이 한철 장사 같다면 화훼농가는 늘 어려울 수밖에 없다. 

화훼농가 살리기에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코로나19로 인해 농어민과 화훼농가의 피해가 심각하게 계속되고 있지만 창원시, 김해시 등 일부 지자체들이 화훼농가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을 뿐, 재난지원금 4차 지급을 논의하는 지금까지도 농어민과 화훼농가가 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당장은 국가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 농어민과 화훼농가가 포함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민 모두의 소득구조가 안정적이어야 하고, 꽃을 인식하고 소비하는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농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다양한 교육현장에서 농업에 대한 적극적이고 일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인들은 꽃을 생활필수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화훼류의 한·일 소비행태 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높을수록, 화훼 관련 교육이나 꽃꽂이 강습 경험이 있을수록 화훼소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높았고, 경제 여건 호조 시 화훼 소비를 증가시키겠다는 응답도 높았다. 어쩌면 요원한 일인 것 같아 이 문장을 쓰는 이 순간 마음이 무겁지만 꽃을 즐기는 일이 큰맘 먹어야 하는 일이 아니게 되려면 꽃을 사는 일이 무리가 아니라고 느껴질 만한 소득구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소득불평등이 완화되고, 소득격차가 해소되어야만 꽃소비는 안정적으로 진작될 것이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될 것이다.  

지난해 00군의 로컬체험프로그램 연구용역을 진행하면서 Eat & Play 박스를 만들었다. 로컬 농산물과 체험키트, 현장에 와서 사용해야 하는 체험쿠폰을 함께 넣어 상자로 구성했는데 반드시 꽃이 하나의 품목으로 포함되도록 설계했다. 화훼가 농업의 한 분야이고, 꽃을 구입하는 일이 농산물을 구입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지역의 로컬푸드 직매장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아닌 일상적인 일들로 여느 농산물을 팔듯 꽃을 팔고 또 소비자들은 이곳에서 꽃을 산다. 꽃을 사는 일 역시 생산자의 얼굴을 아는 소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꽃이 일상의 풍경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일이 적극적인 로컬푸드 운동이 될 때,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농협이 팔아주기가 아니라 정책적이고 지속가능한 화훼산업 발전 방안을 만들어낼 때, 교육부와 관련 단체들이 꽃을 함께 심고 배울 때, 원예 치유농업의 활성화가 이루어질 때 그때 비로소 화훼농가가 좀 살만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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