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먹거리가 정의롭다는 것은 농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농민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농산물 가격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가격 폭등과 폭락 사이를 완충할 사회적 안전망을 설치할 수는 없는가?


우리 집은 해마다 작은 텃밭에 수박 모종을 몇 개 심는다. 심을 때는 여름 내내 먹을 수 있길 기대하지만 다른 걸 다 심고 남는 땅에 심는데다가 수박에 대해 잘 모르고 키우니 먹기는 먹어도 우리 텃밭 수박에 의존해 여름을 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를 구분하는 일은 왜 그렇게 어려운 지, 잘 익었을 거야 하고 따면 아직 속이 하얗거나, 익었을까 하고 따면 너무 익어 버린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시장을 볼 때마다 커다란 수박 한 덩이를 사서 뿌듯하게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수박 앞에 섰다가 가격을 보고 놀라서는 사지 못하고 그냥 왔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 만4000원이었는데 어느새 수박값이 2만원 이상으로 뛰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농민은 얼마에 수박을 팔았을까?

내가 다니는 성당은 미사 후에 떡이나 과일을 함께 나누어 먹는데 요즘과 같은 더운 여름에는 보통 수박을 나누어 먹는다. 큰 수녀님이 진안 동향에서 수박농사를 지으시는 분에게 “수박을 성당에서 좀 사야겠어요, 마트 수박은 요즘 왜 이리 비싼지” 하셨는데 그분께서 “이미 다 팔렸는걸요” 하셨다. 수녀님과 몇 사람들이 “요새 수박값이 얼마나 비싼데 좋은 값에 팔았겠네” 하시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아니여, 우리는 개당 8500원만 받았어. 지금 수박 값이 좋으니 벌써 다 가져가고 없어. 가게에서 2만원씩 팔리지만 우린 8500원씩 받았다니까” 하셨다.

내가 사는 장수는 사과의 고장이다. 그런데 올해 사과 농사가 심상치 않다. 사과꽃이 피고, 사과가 열매를 맺기 시작할 때 즈음에는 냉해를 입었고, 지금은 폭염으로 사과가 익기 전에 데이고 있다. 벌써 8월 중순이니 이맘때쯤이면 벌써 밭떼기로 사과를 사가겠노라 유통업자들이 벌써 나서서 다녀야하는데 아직까지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다. 상품성이 어떻게 될지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몇해 전에 배추 한포기 만오천원, 배추 한망 4만원 하던 때에도 농민들은 유통업자들에게 배추 한포기당 천오백원, 이천원을 받고 넘겼다. 농민이 폭리를 취해 농산물 가격이 높아지는 일은 없다. 그런데도 늘상 뉴스에서는 채소값 폭등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과 거론 없이 이상기후, 폭염, 태풍 때문에 채소값이 폭등해 물가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고 매번 같은 말을 한다. 한편으로는 폭염, 태풍, 이상기온으로 농작물이 엉망이 된 농장과 농민의 한숨을 담은 인터뷰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자연재해가 수확량과 농산물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장 농민에게 반영되어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우리는 별다방에서 한잔에 오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천원에서 이천원으로 올라간 호박값을 아까워하고, 한끼에 몇만원짜리 음식을 먹으러 먼 길 마다하지 않으면서 배추 한포기, 양파 한망 가격 인상은 큰일 날 것같이 호들갑을 떤다. 폭락에는 그저 혀를 끌끌 차면 그만이다. 농산물 가격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가격 폭등과 폭락 사이를 완충할 사회적 안전망을 설치할 수는 없는가?

유례없는 폭염으로 농작물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는 채소와 가축의 생육관리 지원을 위해 현장 기술지원단을 운영하고, 축산농가에 냉방장치 설치 지원을 계속하고, 재해보험금 지급 소요기간을 단축하고, 관정개발 긴급지원을 확대하고, 농산물 수급 조절을 위한 TF팀을 구성한다는 계획을 내어놓았다. 이제 임기를 시작하는 이개호 농림부 장관은 가격 안정과 폭염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획 어디에도 농민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농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구체성이 보이지를 않는다.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자들은 대체식품을 찾거나 가격이 안정화될 때까지 잠시 소비를 조절하면 된다. 그러나 농민은 그 손해를 벗어나지 못한다.

먹거리가 정의롭다는 것은 농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농민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농민이 가격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농민에게는 무엇을 심을 지 결정할 권리도 있고,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을 결정할 권리도 있다. 벌써 수십년째인 일시적인 밥상 물가 인상과 유통업자의 이득 챙기기에 농민의 권리를 내어주지는 말자. 농민이 가격 결정권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신임 농림부 장관이 조직적 체계와 구체적 방식을 만들어주기를 당부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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