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평화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요즈음, 장수의 젊은 사과 농부들이 북한에 사과묘목을 전하고, 재배기술을 전달하고, 시험포장을 만들어 사과를 함께 연구하고, 키우는 꿈이 상상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사는 장수는 산이 높고 일교차가 큰 고랭지로 사과가 유명하다. 장수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장수 홍로 사과를 추석 차례상에 많이들 올려놓으시고, 전국 어디에서도 장수사과라는 글씨가 선명한 사과상자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장수에 살면서 사과 농부들과 함께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사과가 어떻게 우리 밥상에 놓이게 되는가에 대한 강의 자리도 만들고, 사과는 빨간색 후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란 사과도 있고, 다양한 품종이 있다는 사실도 알리고, 장수 사과를 재료로 하는 밥상자리를 열기도 했다. 그 모든 자리에서 사과 농부들이 함께한 분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하나는 송재득이라는 분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북쪽에서 사과 농사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장수 사과는 1908년 계남면에 살던 하관빈이라는 분이 국광 실생묘를 재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장수는 사과의 주산지가 아니었다. 장수가 사과의 본격적인 고장이 된 것은 1987년 송재득 선생이 장수로 내려와 10여명과 함께 새로운 재배법으로 사과 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사과 유학을 다녀오고, 오래도록 사과를 연구하고 전파하던 일을 해오던 선생은 고랭지 장수의 기후환경과 산으로 둘러싸여 논농사도 밭농사도 어려웠던 점에 주목, 사과나무를 심으며 “산으로 어려운 자, 산으로 살게 하자”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송재득 선생과 몇몇 농부들이 사과농사를 시작한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민관의 여러 노력이 합쳐졌다. 새로운 재배법이 도입되었고 가을에 수확되는 홍로 사과를 심기 시작했다. 사과를 차례상에 올리는 추석 즈음에 사과가 출하될 수 있도록 홍로를 심어 농가소득을 보장하자는 생각과 실천이 지금의 장수 사과 시대를 만들었다. 전국에 어떤 농산물의 시작을 일군 사람을 기리는 흉상이 세워진 지역이 있을까? 장수에서 송재득 선생은 작물의 특성을 제대로 살피고, 농부의 편에 서서, 지역의 새로운 출발점을 만들어 놓은 위인 중의 위인이다. 송재득 선생과 함께 아무도 시작하지 않은 길을 열정으로 묵묵히 시작한 농부님들도 우리가 존경해야할 위인이다. 그런 송재득 선생의 생각은 1987년 장수에서 사과농사를 시작했던 아버지들의 아들들인 지금의 젊은 사과 농부들에게, 장수에서 새롭게 사과 농사를 시작하신 분들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장수의 젊은 사과농부들은 사과 강의를 하거나 장수 사과를 소개할 때면 “북한은 추운 곳이고, 사과는 한랭품목이니 북한에서 사과를 심고 가꾸는 일을 언젠가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기후변화로 사과 재배선이 달라진다는 걱정도 통일이 되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사과는 북한의 주요 과일 중 하나이다. 현재 남측에서 주로 먹는 품종도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재배기술도 떨어져 북한의 사과는 우리가 먹는 사과와는 다르겠지만 2014년 북한의 사과 총 생산량은 76만8607톤이고, 전체 과일 중 사과 생산량이 80%에 달하며, 그 나머지를 배와 복숭아가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북한은 식량 자급이 되지 않아 원조를 필요로 한다. 북한 주민들의 원활한 식량공급과 영양공급을 위해 주곡의 절대적 지원과 증산이 필요하지만 과일 농사 또한 필요하고, 또 공급되어야 한다.

북한의 농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북한의 농업생산, 과수 생산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방 정책을 통해 농업자본을 확충하고, 선진 기술력의 습득, 개량된 종자 보급, 생산 기반 시설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학자는 자연환경이 뛰어난 북한에서 농업이 활성화되면 농업과 관광이 연결되는 6차 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연구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었던 지난 11년 동안 농업의 남북교류도 중단되었지만 그 이전엔 통일농업을 지향하는 노력들이 있어왔다. 남북 농업 교류는 보편적 인류애이기도 하고, 통일의 징검다리이기도 했다. 금강산 삼일포에는 충북 제천의 사과나무가 심겨져 있고, 남북농업교류가 끊기기 전 장수에서도 사과 묘목을 북으로 보내 사과 농사를 지원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평화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요즈음, 송재득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은 장수의 젊은 사과 농부들이 북한에 사과묘목과 재배 기술을 전달하고, 시험포장을 만들어 사과를 함께 연구하고 키우는 꿈이 상상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꿈을 갖는 사람들이 장수 사과농부만 있을까, 논농사도, 다양한 작물의 밭농사도, 다양한 과수 농법의 지원과 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전국의 농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남북 교류 농업은 먹거리 정의 관점에서도 절실한 일이다.

북한은 황해도 해주 사과가 으뜸이라는데 황해도 해주 사과와 장수 사과가 나란히 밥상에 놓이는, 어떤 사과를 살까 즐거운 고민을 해보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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