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CSA, 로컬푸드, 로커보어, 푸드마일리지, 소셜다이닝…독자 분들은 이 글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다 알고 계실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이왕이면 우리말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 더 나은 먹거리 체계를 표현하고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노력이 시작되기를 기대해본다.


병원에 가면 마음이 편치가 않다. 환자들을 위해 의사들이 존재하고, 환자가 알아야할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있는데도 의사가 환자에게 증상을 설명할 때, 간호사에게 환자와 관련된 업무를 지시할 때, 회진을 할 때, 진단서를 발급받아 읽을 때. 의사들이 쓰는 전문용어는 오히려 환자를 소외시킨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면 좋으련만, 의학용어는 너무나 어려워 일상적으로 우리는 의학 용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법률도 마찬가지이다. 뭔가 필요한 일이 있어 법조항을 찾아보게 되거나 판결을 받아야할 때 법률 용어는 실제 용어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필요한 사람들의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전문영역이건 전문 언어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생노병사, 식의주처럼 삶과 밀접한 영역의 언어는 쉬워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의학용어, 법률용어를 쉽게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먹거리와 관련된 언어는 어떨까?

2009년 전북 장수로 내려와 유기농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회원제로 운영되는 채소꾸러미를 하게 되었다. 귀농을 해서 채소꾸러미를 하려고 마음먹고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보고 들은 단어는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였다. 종자값부터 수확 후 판매까지 걱정없이 농사지을 수 있도록 미리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시민들이 가족농, 소농을 지원하는 방식은 우리농촌에서 시작된 운동이 아니기에 본래의 의도를 정확하게 설명하려는 목적이었겠지만 우리말로 시민지원농업이라고 써도 좋을텐데(물론 그렇게 쓰는 분들도 계시다) CSA라는 말을 읽고, 듣고, 말하려면 무척이나 낯설었다.

많은 분들이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행정기관, 연구소, 학자, 먹거리운동 단체들이 로컬푸드라는 말을 사용할 때 농부에게, 시민들에게 저 말은 어떻게 들릴까 싶어지곤 했다. 로컬푸드를 먹는 ‘로커보어(Locavore)’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때에는 따로 설명을 듣지 않는 한 도대체 ‘로커보어’라는 저 말을 누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었다. 로컬푸드와 기후변화와 푸드마일리지(food mileage)이야기를 할 때에도 몇사람이나 듣자마자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지곤 한다. 슬로푸드 활동을 하면서 슬로푸드는 식품의 산업화 기업화에 저항하는 운동임에도 사람들에게 슬로푸드가 뭘까요? 하고 물어보면 “느리게 먹기”, “ 발효음식 먹기”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슬로푸드라는 말을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심각하게 들고는 했다.

밥을 먹으면서 특정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소셜다이닝(Social dining)을 시작하고 운영하면서 어떻게 이 말을 더 쉽고 편하게 쓸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이야기밥상이란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 며칠 전 좋은 농산물 구입을 희망한다며 전화를 주신 분께서는 단어만으로는 유기농과 무농약이 정확하게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시겠다며 차이를 이해하기 원하셨다. 어떤 분은 토종종자가 아닌 모든 것은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로 알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GMO가 나쁘다는데 GMO가 무엇인지 모르시거나 어렴풋이 알겠는데 종자 개량과 다른 것이 뭐냐고 묻는 분들도 많다.

독자분들은 이 글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다 알고 계실까? 독자분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들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먹거리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와인병 라벨을 읽는 것처럼, 어느 먼 나라의 메뉴판을 읽고 있는 것처럼 이 단어들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하고 있었으리라.

언어는 표현의 수단이자 의미전달의 수단이다. 먹거리는 식품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가공, 유통, 소비라는 사회적 체계로 존재하므로 먹거리와 관련된 언어는 먹거리사회구조를 담은 언어이며 사회를 향한 중요한 메시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메시지가 누구나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 외국에서 시작된 운동이라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없이 그대로 차용해서 쓰는 말이라고 한다면 이는 특정그룹만이 사용하는 언어이며, 누군가에게 우위를 점하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좋은 음식을 먹어야하는 것처럼 더 나은 먹거리체계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어려운 말들이 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면 당연히 이 장벽은 없어져야할 것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이왕이면 우리말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 더 나은 먹거리 체계를 표현하고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노력이 시작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렇지 못해왔음을 깊이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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