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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당신의 배달 라이더는 안녕한가요?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먹거리가 정의롭다는 것은 먹거리와 관계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것을 포함한다. 식품기업 노동자들의 권리, 외식업 노동자들의 권리, 배달노동자들의 권익이 보호되지 않는데 그 음식을 먹는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

어릴 적 늦도록 동네 어귀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노라면 “000야 저녁밥 먹어야지 얼른 들어와라” 하고 엄마들이 부르는 소리가 어둑어둑 해질녘 노을을 따라 들려왔다. 더 놀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한 켠에 접고 내일 보자는 인사를 친구들과 나누고 집으로 달려오면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바쁘게 일하느라 반기는 사람이 없는 날이라도 행여 식을까 아랫목 이불 밑에 놓인 따뜻한 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촌에 살고 있어 마을에서 뛰어노는 막내를 “이제 그만 놀고 밥 먹어라” 하고 부르는 일을 엄마인 나도 이제 하게 되었지만 이런 풍경은 그러나 대체로 모두 옛날 것, 많은 이들의 추억 속 장면이 되었다. 보온밥솥이 있고, 전자레인지가 있어 아랫목 이불에 밥을 넣어둘 이유도 없고, 빽빽한 아파트숲이 주거의 대부분으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이다.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보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더 많고, 일 마치고 종종거리며 집에 돌아와 저녁밥 준비를 하는 이들이 많으니 밥 먹으라 불러댈 상황도 별로 없다.

게다가 외식업 자영업이 많은 한국이니 발길 돌리는 곳마다 식당이고, 휴대폰 마다 배달 앱이 한두개씩 깔려있으니 집에서 밥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식당의 음식을 배달해서 먹는 일은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우리는 그저 음식을 시켜먹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밥을 배달해 먹을 때에는 음식을 만드는 이의 노동과 더불어 음식을 배달하는 이의 노동까지 사고 있는 것이다.

음식 배달이 시작된 것은 우리 생각보다 오래되어서 1920년대 신문기사에도 언급되고 있으니 음식배달은 족히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100년 동안, 그리고 지금, 음식 배달노동자의 노동은 어떠할까?

10여년 전에 000피자업체에서 30분 배달보증제를 시행한 적이 있다. 30분 이내에 배달되지 않으면 무료라는 강력한 메시지 뒤에는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배달 노동이 감추어져 있었다. 안그래도 늘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배달시간 제약까지 더해지는 것은 배달노동자에게 매우 위험한 정책이라는 문제 제기가 계속 되었으나 시행은 이어졌고, 결국 피자 배달 소년이 버스와 충돌해 사망하고 나서야 해당 기업은 이 제도를 폐지했다. 30분 이내 배달보증제가 기업 경쟁력을 위해 배달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잡는 제도라는 사실이 나이 어린 노동자의 슬픈 죽음을 통해 증명되어야 했던 것이다. 음식을 누군가에게 배달해주는 일은 언제나 위험을 안고 있는 노동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일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음식 배달은 식당 직원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전과는 양상이 다른 플랫폼 노동이 되었다. 앱이나 SNS 등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이 거래되는 고용 형태를 플랫폼(platform) 노동이라고 한다. 요즘 음식 배달 노동자들은 정해진 한 식당이 아니라 플랫폼을 매개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을 라이더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배달해 먹고, 코로나19 이후 그동안 배달서비스를 하지 않던 외식업 사업체들도 매출 진작을 위해 밀키트 판매 전략을 세우며 배달 서비스를 늘려가고 있다. 2019년 8월 배달음식 월별거래액은 9143억이었고, 2020년 동월 배달음식 거래액은 1조 6729억으로 추정된다.

배달 플랫폼에 기대어 사람들은 음식을 주문하고, 라이더들은 음식을 배달한다. 한건당 00원, 00 배달 하고 올라오는 내용을 보고 빨리 눌러서 일거리를 잡아야 한다. 라이더는 분명히 노동자인데 누구와 어떻게 계약을 한 것인 지 따져보려고 하면 모두들 자신들과 계약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배달을 하다가 사고가 나도 산재 처리를 해주려는 곳이 없다. 라이더들의 노동권리는 제도권 밖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2019년 라이더노조가 설립되었고, 2020년 플랫폼운영사(배달의 민족, 요기요 등), 라이더유니온, 공익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안 포럼’을 만들었다. 그리고 10월 6일 ‘플랫폼 경제 발전과 플랫폼 노동 종사자 권익 보장에 관한 협약(배달 서비스업을 중심으로)’을 발표했다. 자율협약이라 강제성이 발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배달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먹거리가 정의롭다는 것은 먹거리와 관계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것을 포함한다. 식품기업 노동자들의 권리, 외식업 노동자들의 권리, 배달노동자들의 권익이 보호되지 않는데 그 음식을 먹는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 이제 ‘빨리 가져다주세요’가 아니라 배달라이더의 안녕, 그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우리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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