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농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농민들의 삶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농업의 공익성을 법으로 보장하고, 그에 따라 농민기본소득을 보장받는다면 우리 농촌은 지속가능한 농촌으로 그 체질을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다. 


6월 13일은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다. 지방선거가 예년처럼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래도 선거철은 선거철이 맞나보다.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꼬불꼬불 올라와야 찾을 수 있는 우리 마을까지 선거차량이 밀려 올라오고, 우리 집 현관문도 선거운동원들의 노크 소리로 며칠째 종일 바쁘기만 하다.

내가 사는 장수는 인구 2만 3000명이 사는 작은 지역이지만 이곳의 시민들은 더 나은 지역 만들기를 위해 시민원탁 토론회를 열어 다양한 분야의 정책 과제들을 선별하고, 군수 후보들을 상대로 농업, 귀농귀촌, 교육, 장애인복지, 사회복지 등에 대한 정책을 질의했다.

시민들이 주최하는 공개적인 토론회에 참석해서 답변을 한 후보도 있고, 서면으로 답변을 갈음한 후보도 있는데 6월 7일 후보들의 답변서가 모두 공개되었다. 수십 개에 달하는 시민들의 질문과 답변 중 내 시선을 묶어놓은 질문은 농민수당 월 20만원 도입, 쌀 가격 24만원 보전, 농산물 최저가격보상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반영하는 농민헌법 제정 운동 지원 등 농업과 관련한 질의였는데 그중에서도 내일의 군수가 되기 위해 달리고 있는 후보들은 뭐라고 답변을 했을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농민수당 월 20만원에 대한 답변이었다. 어떤 후보는 필요성을 인정하고, 재원 확보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대답했고, 어떤 후보는 가을 벼 수매 전 수입이 없는 농민에게 결제대금의 일정 비율을 분할하여 월급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소위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하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장수군 후보들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다른 농촌지역 시군구 후보들도 농업인 월급제 시행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중앙정당들도 농민기본소득제 도입이나 농업인 월급제 등 농민소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나름의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농업인 월급제는 2012년 경기도 화성시의 계획을 시작으로 시행하는 지자체들이 하나둘 늘어난 제도이다. 2013년부터 화성시는 벼 재배농가들을 대상으로 벼 예상수매가를 월별 분할하여 지급하고 농협 등을 통해 이자를 지원 받은 뒤 수매 후 이를 갚도록 했다. 그 후 대상 품목이 쌀 뿐만 아니라 고구마, 사과 등으로 다양해지기도 했고, 시행하는 지자체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농민들의 평균 소득이 낮고, 농업의 특성상 수확 후 수입이 생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현재 여러 지자체에서 시행되고 있는 농업인 월급제가 농민들의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농민기본소득과 농업인 월급제는 그 성격과 내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농업소득은 1005만원으로 지난 20년 동안 농업소득은 1000만원선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농민소득이 무려 20년 동안 1천만원대에 머무르고 있는 근원적인 이유를 처방하지 않고, 특정 품목의 수매가를 미리 저리 대출로 분할하여 월로 나누어 받은 뒤 이를 다시 갚는 것은 그 필요성 여부와 효율성 여부를 떠나, 지급 대상이 한정되어 모든 농민을 아우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연평균 일천만원이라는 농민소득의 기본 구조를 바꾸어내지 못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농민소득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없이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농업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될 수 있겠는가? 소멸위험지역이 농업인 월급제로 되살아날 수 있겠는가? 가난한 농민으로 살 게 되는 구조를 수십년 동안 바꾸지 못하고 있는데 농업인 월급제를 믿고 누가 농촌에 와서 농사를 짓고, 다양한 연령대가 조화롭게 사는, 젊은이도 농사를 짓는, 세대에서 세대로 농업이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농촌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사회가 법제화하여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을 뿐 국토 보존, 환경 보존, 자연경관 조성, 물 보전, 식량안전 보장 등 농업은 어떤 산업보다 공익적 기능을 하는 공익 산업이다. 공익적 기능을 하고 있는 공익 산업인 농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농민들의 삶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농업의 공익성을 법으로 보장하고, 그에 따라 농민기본소득을 보장받는다면 우리 농촌은 지속가능한 농촌으로 그 체질을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농민만 기본소득을 받으면 되는가 하는 사회적 질문과 토론과 사회적 갈등은 응당 뒤따라올 수밖에 없는 문제이지만 농업의 가치가 돈의 가치가 아니라 우리 삶의 공익 가치로 인식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거친다면 농민기복소득제는 충분히 사회적 합의 과정에 이를 수 있으리라 생각될 만큼 우리 사회는 성숙해졌다. 농민월급제보다 농민기본소득을! 농민월급제가 농민 기본소득제를 대체하지 않고, 기본소득제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로 그 소명을 어느 순간 다 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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