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춥고 높은 고지에 사는 탓에 다른 지역보다 열흘 정도 늦게 꽃이 피는 우리 집 앞마당에도 수선화가 피고, 가시오가피 순이 돋아나는 걸 보니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이번 겨울은 여느 해보다 춥지 않은 탓에 다들 좀 더 서둘러 봄 농사일을 시작하려나 했는데 절기 따라 움직이는 것이 순리라고 보셨는지, 삼사월에도 갑자기 서리가 내리는 지역 특성 때문인지 요즘 들어서야 봄 농사일이 바쁘게 돌아간다.

다들 퇴비를 뿌리고 밭을 간다. 조금만 지나면 어디를 보나 푸릇푸릇 하겠구나 생각하니 저절로 마음이 산뜻해진다. 농촌의 영농철, 농기계들도 작업을 시작한다. 집집마다 구비하기에는 너무 비싸고, 그렇다고 안 쓸 수는 없는 것이 농기계. 우리도 귀농할 때 우리 마을이 농기계를 공동 사용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었다.

귀농을 하고 농기계를 다루는 남편을 보면서 한편 뭔가 멋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무척 위험하게 느껴서 작업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어느 새 조마조마해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대학시절 농활을 갔을 때 그 마을에 농기계 사고로 팔을 다쳤던 농민 분이 계셨다. 몇해 뒤 농촌으로 이주한 대학선배도 농사일을 하다가 손가락 하나를 잘렸다.

이십 몇 년 전만 그랬던 게 아니다. 귀농 후 어느날 우리 가족들은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다가 경운기 교통사고를 목격하기도 했다. 뒤에 타고 있던 할머니가 거의 날아가시듯이 튀어 올라 우리 모두 깜짝 놀랐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지만 그 할머니는 괜찮으실까. 우리 가족들은 두고두고 걱정을 했더랬다.

코로나19로 학교를 못가고 있는 아이들은 집에서 열심히 게임을 한다. 여느 부모들처럼 나 역시 그런 아이들에게 못마땅한 표정을 짓곤 한다. 이런 엄마에게 우리가 하는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고 심지어 유익한지 알려주겠다며 아이들은 종종 내게 게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한다. “엄마 이거 봐. 우리마을 내 농장, 정말 깔끔하지? 이건 친구 농장, 성격대로 관리하는 거 같지?” 이 말을 하면서도 손은 쉴 새 없이 농사를 짓고 있다. 아이들이 하는 게임은 판타지 타운이다.

많은 사람들은 농촌을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 호미를 대면 줄줄이 따라 나오는 감자, 바구니 가득한 풍성함으로 떠올린다. 이 이미지는 농업·농촌이 얼마나 위험한 작업공간인지에 대한 상상을 불허한다. 그러나 농촌은 판타지 타운이 결단코 아니다. 농업은 심기만 하면 저절로 농산물이 자라 풍성해지는 판타스틱한 곳이 아니다.

농촌 곳곳은 다치고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이 언제든 도사리고 있다. 농기구도, 농기계도, 농약도 사고 유발이 높다. 나는 고구마를 수확하기 위해 순을 치다가 낫에 손가락을 베인 적도 있고, 콩 타작기를 돌리다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멈춘 적도 있다. 남편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모터를 돌리다가 갑자기 뜨거운 물이 솟구쳐 얼굴에 화상을 입은 적도 있다. 어느 분은 농약살포기에 깔려서, 어느 분은 사과를 수확하기 위해 만들어진 높은 사다리위에서 떨어져 유명을 달리하기도 하셨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방청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평균 1천여 건의 농기계 사고가 일어나 63명이 숨지고 237명이 다친다고 한다. 사고의 원인은 운전 미숙, 운전자 부주의로 인한 것이 86.3%라고 한다. 그래서 딱 이맘 때가 되면 바쁜 영농철 농기계 사고에 유념해 달라는 관계기관의 당부의 말이 나온다. 사고에 유의해줄 것, 기계 조작을 잘 해줄 것을 당부한다.

사고를 내고 싶어 사고를 내는 농부는 없다. 기계 조작이 간편하고 안전하다면 농부가 어렵게 조작할 이유가 없다. 농어민 안전을 위해 보험을 만들고, 사고 후를 위해 보험에 가입하는 건 위험한 작업장에 대한 대안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니 스마트농법이니 거창한 말들이 오고가는데 정작 농부들이 사용하기 편하고 안전한 농기계를 만들고 투자하는 정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농기계 비용은 수천에서 수백이다. 그래서. 농기계를 하나 산다는 말은 빚을 진다는 말과 같다. 빚을 지고 위험을 집에 들이는 사람은 없다. 농민이 안전하도록 안전 농기계를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진짜 스마트한 농업은 언제쯤 세상에 나오게 될까?

우리는 농약의 위험성을 이야기 하면 대부분 음독을 생각한다. 그러나 음독이 아니더라도 농약은 만성농약중독을 일으키는 위험한 물질이다. 만성농약중독은 면역기능, 피부염, 류마티스 관절염, 망막변성, 대사증후군 및 당뇨, 청력손실, 호르몬기능 변화 등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의로운 먹거리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될 때마다 청중들에게 누구를 위해 친환경농산물을 선택하는지 묻곤 한다. 그러면 대부분 나와 가족을 위해서, 환경을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농약의 위험에 가장 먼저 직면하는 사람은 농부들이다. 친환경 농사가 필요한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안전하게 농사지을 농부의 권리 보장에 있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작업할 권리를 가지듯이 농부 역시 안전하게 농사지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농약으로부터, 그리고 농기계로부터 농부들이 안전하게 농사지을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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