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사회적 농업은 명백히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철학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사회적 농업에 대한 관심이 코로나 19팬데믹 상황 때문인 듯한 인상을 주지만 다른 나라들의 사회적농업 사례가 소개 되어진 지 이미 오래이고, 농촌진흥청은 이미 치유농업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 농활을 하기 전까지 한 번도 농촌에 다녀온 일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농촌에 친척이 없었기 때문일 테지만 우리 집에도 내가 살던 달동네 자투리 땅 그 어디에도 무언가 심겨진 것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먹고 사는 일에 전력투구해야 할 형편들이고, 있는 시간을 다 쥐어짜서 일을 해내야 나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으니 무언가 심을 여유가 없었으리라.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합창단 단원이었을 때가 있었다. 집에 일해주시는 분도 계셨던 어린 시절 잠시나마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때였는데 그때서야 마당에 장미가 넝쿨을 이루고, 나무가 자라고, 꽃들이 피어났다. 그때의 나는 꽃을 심고 흙을 만져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꽃이 피고 지는 걸 감상하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사업이 망하고, 다시 달동네로 돌아갔을 때 나는 아이들과 뛰어놀던 뒷동산의 아카시아와 거리의 가로수가 아니면 나무와 꽃을 볼 수 없었다. 자투리 땅마다 한 평의 방이 되는 마을들. 심고 거두는 일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이란 전혀 없었다. 어릴 때에는 가루 오렌지주스와 같은 간식을 신기해하며 먹던 일, 밥에 간장과 마가린을 넣고 비벼 먹는 일 정도의 기억만이 남아있으니 그 시절 농사에 대해 생각하고, 내 먹을 것이 농장에서 식탁까지 이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땅에 무언가 심고 가꾸고 거두어내는 일에 대해 생각이 이어지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대학생이 되어 구로동에 간 일이 있었는데 자투리 땅마다 한 평의 방이 되던 그 느낌을 다시 마주했다. 눈 뜨면 나가서 일을 하고 깜깜한 밤에 녹초가 되어 고단한 몸을 누일 한 평의 방이 꽃과 나무를 심을 땅보다 더 절실하다는 걸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노동조합 일을 할 때 체불임금 상담을 위해 일산의 한 웨딩업체를 찾아갔다. 그때 일산은 지금과 같지 않아서 길 한쪽은 아파트 단지가 올라가고 있었고 길 한쪽은 밭을 갈고 있었다. “옛날 강남은 허허벌판이었어. 논밭이었던 강남이 이렇게 될 지 누가 알았겠어” 하고 누군가에게 말로만 듣던 상황이 일산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꺼이 땅을 팔았고, 누군가는 농토를 지키며 농사를 짓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터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농에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농에 가까이 갈 수 없거나 농을 떠올릴 수 없는 사회구조로 고착화 된 것이다. 가난은 농을 알 수 없게 하고, 녹지 빈곤을 불러온다.

땅 한평 일구어본 경험도 없는 내가 2009년 장수로 내려와 농사를 지었다. 2010년에 지역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마을에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지 문의하셨다. 체험활동을 해보면 되겠지! 뜻이 맞는 마을 사람들 몇 분과 함께 마을과 숲을 경험할 수 있는 하루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리고 다음해에 방과후학교가 없어 돌봄 공백이 있는 날, 아이들이 마을로 와서, 농사와 먹거리와 환경을 배울 수 있는 마을학교를 운영했다.

2013년에는 영양플러스 대상자들과 함께 하는 서울농수산식품공사의 서울시먹거리시민학교를 운영하면서, 텃밭을 일구고, 환경을 배우는 연단위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사회적 농업을 한 것이었다. 내가 먹거리인문학 수업을 하고 있는 장수의 00지역아동센터는 00연수원의 텃밭 한쪽에서 정기적으로 농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 농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여기만 그러겠는가? 수없이 많은 지역과 단체, 기관과 모임이 이미 사회적 농업을 하고 있다. 사회적농업은 농업활동을 통해 장애인,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돌봄, 교육, 고용 등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역할을 할 사회적 농장은 장애인, 고령농, 범죄 피해 가족, 이주배경 여성 등에게 돌봄, 재활,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하여 사회 통합에 기여하거나 귀농귀촌인들이 농촌에 정착할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를 내고자 한다.

사회적 농업은 명백히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철학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사회적 농업에 대한 관심이 코로나 19팬데믹 상황 때문인 듯한 인상을 주지만 다른 나라들의 사회적농업 사례가 소개 되어진 지 이미 오래이고, 농촌진흥청은 이미 치유농업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사회적 농업과 치유농업은 잘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가끔씩 걱정이 밀려온다. 이미 장애인의 치유나 자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정신건강 보건을 위해, 취약계층 아동의 정서 발달을 위해, 다양한 사회적 의미들을 담아 사회적 농업을 자발적으로 만들어온 많은 기관 단체, 모임들이 있는데 사회적 농장으로 지정되어야 사회적 농업으로 인정받는 시기가 오는 것은 아닐까? 프로그램 시작 전과 시작 후에 혈압을 재고,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일이 필수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닐까? 취약계층이 치유 효과를 얻고 함께 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원되는 방식의 일이 되지는 않을까? 지역사회 바우처 사업의 사업유형으로만 자리잡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 모든 것은 기우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적 농업과 치유농업을 왜 지향하는 지에 대한 철학적 배경이 고민되지 않으면 이 모든 기우는 현실이 될 수 있다. 농의 철학,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는 사회적 농업, 치유농업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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