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각 지역의 농업기술센터와 종자회사들은 이걸 심으면 소득이 늘어난다고 말한다. 물론 농업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해 수고하고 연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귀농하기 전 만나 뵙게 된 농부님들은 한결같이 정부가 심으라고 하는 걸 심으면 모두 망한다는 말을 했고 농촌에 내려와 살면서 나는 이 말도 이해하게 되었다. 
 

귀농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무슨 농사를 지을거냐고 물어오셨다. 이것저것 조금씩 밭농사를 지을거라도 대답드렸더니 대부분의 반응은 “돈이 안되는 농사를 하겠다는 거로군”이었다. 그러면서 “이걸 심어봐라, 저걸 심어봐라”하고 만나는 분들마다 새롭고 신기한 작물을 이야기해 주셨다. 귀농을 조언해주시는 분들은 1년, 혹은 몇 년동안 가지고 있는 돈을 쓰면서 살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1년 동안 가지고 있는 돈을 쓰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과 농사는 돈이 안된다는 말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딱 1년이 지나고 나니 너무 실감이 되었다.

농사로 먹고 살만하려면 뭘 심어야 하지? 남편과 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주변에 농사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 농사지으니 먹고살 만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우리 둘이 내린 결론은 “돈이 되는 작물은 없다”였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같은 사람들하고만 친하게 지내서 그래, 농사로 큰돈을 번 사람들이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거야” 하고 웃어넘기곤 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정말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썼을 때, 누군가 부업이라도 해야하나 싶을 때 남편이 소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소를 내다 팔 때는 목돈을 좀 가져보지 않겠냐고 말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소 팔아서 대학을 보내주셨다는 어린 시절에 자주 들어보았던 우골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상기된 표정으로 소 세 마리를 샀고, 될 수 있으면 풀을 주기 위해 남편은 날마다 들과 산을 누비며 꼴을 베러 다녔다. 아이들도 소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송아지가 태어날 때는 송아지 입힐 옷도 사고, 따뜻한 할로겐 전기 등도 달아주었다.

뉴스에서는 소를 일부러 굶겨 죽이고 있는 상황이 보도될 만큼 솟값이 날마다 떨어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애정을 가지고 소를 키웠다. 하지만 몇 년을 키우지 못하고, 우리는 소를 키우는 분에게 소를 팔았다. 소를 팔아 돈을 버는 일, 소의 몸집을 불리며 키우는 일이 우리 부부의 가치관하고는 맞지 않았고, 소를 키울 때 들어가는 노동력은 세 마리를 키우나 백마리를 키우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산업형 축산 시대에 우골탑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도 물론 함께 깨달았다.

어느 날 남편이 누가 일을 좀 도와달라 한다며 며칠 일을 다녔다. 호두나무를 심는 일이었다. 나무를 심고 당장 수확할 수는 없지만 밭 주인은 몇 해가 지나면 큰 소득이 보장되는 황금 호두밭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 밭은 일종의 투자였다. 지금 그 호두나무밭은 황금 호두밭이 되어있을까? 내가 아는 누군가는 황금밭을 꿈꾸며 아로니아를 심었고, 누군가는 블랙베리를 심었다. 누군가는 머루 포도를 심었다. 그리고 몇 년이 되어 모두 베어냈다. 어느 해에는 수많은 농부들이 종자를 지원해준다고 해서 양파를 잔뜩 심었다. 그리고 팔리지 않는 양파가 길가에 잔뜩 쌓여 산성이 되었다. 지난해와 올해 누군가들은 또 샤인머스켓을 심고 있다. 각 지역의 농업기술센터와 종자회사들은 이걸 심으면 소득이 늘어난다고 말한다. 물론 농업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해 수고하고 연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귀농하기 전 만나 뵙게 된 농부님들은 한결같이 정부가 심으라고 하는 걸 심으면 모두 망한다는 말을 했고 농촌에 내려와 살면서 나는 이 말도 이해하게 되었다.

새싹보리, 하미과, 샤인머스켓, 얌빈, 카사바, 잎새버섯... 2021년을 앞두고 각 시군이 앞다퉈 소득작물로 육성하겠다는 품목들이다. 새로운 품목뿐만 아니라 멜론, 양파, 딸기 같은 작물은 새로운 품종을 내놓기도 하고, 하우스나 스마트팜으로 키울 수 있는 여러 작물 기술 개발을 하기도 한다.

지난 11월 16일 통계청은 ‘통계로 본 농업의 구조변화’를 발표했다. 1993년~2019년까지 지난 27년간 영농형태별 농가소득은 연평균 축산농가 4.4%, 논벼 2.7%, 채소 2.0%, 과수 1.7%, 특용작물은 0.9% 증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2~3%대로 오르는 물가인상률을 생각해보면 농가의 소득 증가는 없었던 셈이다. 특히나 소득작물의 주를 이루었던 특용작물 소득 증가 현실은 다른 품목에 비해 형편없는 셈이다. 2019년 농업소득은 1020만원정도이고, 농가부채는 3500만원대에 달하며, 농축산물 판매가 500만원 이하인 농가수가 전체 농가의 51.4%에 달한다. 우리 농업 구조가 이와 같은데 육성하겠다는 소득 작물은 누가 시범 재배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시설을 갖추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가져야 가능할까? 말만 들어도 생소한 작물의 시장 개척은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소득 작물을 심어보기 위해 대출과 같은 무리한 투자를 해야 하고, 판로를 걱정해야 하지는 않을까?

수많은 농부들이 소득작물에 희망을 걸고 씨앗과 나무를 심었고, 그리고 몇 년 지나 밭을 엎었고, 나무를 뽑아냈다. 지자체에서 육성계획을 밝혔고, 농업기술센터와 관련 부서들이 지도를 했던 일들인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하고 개별 농부를 질타할 것인가? 잘사는 농업농촌 만들기는 농부와 정부, 지자체의 공동의 과제이고 목표이다. 농업소득 1000만원에 불과한, 전체 농민의 절반이 연평균 500만원 이하의 판매를 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한 때 유행처럼 스쳐지나가는 소득작물 육성보다 먼저 잘사는 농업농촌을 만들기 위한 진짜 필요한 정책적 선행 과제가 무엇인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과제와 필요한 소득작물 선정을 농민과 맞대고 협의하고 결정해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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