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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바람과 햇빛 농사는 농촌에서 짓나요?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농촌의 산자락은 자연환경의 보루이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 논과 밭은 농의 본질을 이어 누군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곳이다. 태양광 패널만 이어진 곳에서 농사짓는 삶을 이어갈 사람은 없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수수깡과 색종이로 바람개비를 만들곤 했다. 손에 손에 바람개비를 쥐고 동네를 뛰어다니다 보면 바람을 일으키는 기분도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기분도 들어 마음이 들뜨곤 했다. 바람을 맞으며 뛰어다니기 추운 겨울에는 잘 날리지도 못하면서 연을 날려보겠다고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 언덕으로 올라가곤 했다. 바람을 잘 타고 하늘 높이 연을 날리는 친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고개를 높이 들어 하늘 위를 떠다니는 색색의 연을 바라보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 바람은 친구이고, 놀이였다.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집에 있을 때 마땅히 다른 놀이할 거리가 없어서 그랬다. 해외명작선 같은 시리즈의 책들을 읽다 보면 배경으로 풍차가 나왔다. 이렇게 커다란 바람개비를 세울 수 있다니! 풍차가 방앗간이 되기도 하다니! 언젠가 꼭 한번 풍차를 보러 가야지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어느 언덕의 바람개비가 줄지어 돌아가는걸 보는 일도, 높은 산 풍차를 보는 일도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었다.

“터빈이 윙윙 돌아가면요, 얼마나 소음이 큰지 아세요? 말도 못 합니다. 그 소리를 견디는 게 너무 힘이 들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새들이 날아가다가 팍팍 부딪혀요. 풍력을 한다고 수백 그루의 나무가 다 잘려 나갔어요. 문서도 허위로 위조되었어요.”

십이 삼 년 전에 어느 날 만나 뵙게 된 어르신은 마을 산에 풍력 발전기 공사가 시작되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를 하셨다. 입지 선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게 된다면, 지역주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면 바람이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도, 사람도 자연도 고통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부끄럽게도 그때 처음 해보았다. 그 후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아도, 풍차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언덕을 보아도 어릴 때처럼 마음이 들뜨지 않았다. 풍력발전기가 있는 언덕에 아이들을 데리고 언제 한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 대신 우리가 자연을 이용하는 조건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안타깝게도 어르신이 고통을 호소했던 그곳은 대한민국에서 풍력단지가 가장 밀집해있는 지역이 되었다.

몇해 전부터 농촌에는 “햇빛 농사지으세요”라는 현수막이 자주 걸린다. 유선전화 두통이 온다면 그중 한 통은 태양광을 설치하라는 광고 전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양광 설치를 하라는 문자 메시지도 수시로 받는다. 그래서인지 더욱 연세가 들어 농사일을 하실 수 없는 어르신들이 “땅을 놀릴 수는 없는 일이고, 태양광은 좀 할만한 일인가?”고민을 해보시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발전소의 대부분은 지방에 위치해 있고, 태양광은 농촌, 그것도 특히나 산지로 집중되고 있다. 내가 에너지 문제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서울, 대전과 같은 대도시의 에너지 자급률이 한자리수라는 것을 알게 된 후였다. 지방에 비해 절대적인 에너지 사용량을 보이는 대도시들은 도대체 에너지를 어디서 가져오는 것일까? 도시에서 살 때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었다. 전국 여러 곳이 그렇겠지만 내가 사는 장수도 태양광 단지가 추진되는 마을에서 빈번하게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태양광이 들어오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는 누구를 위한 에너지이고 누가 쓰게 되는 것일까? 바람과 햇빛 농사는 누가 지어야할까? 지금처럼 재생에너지들이 지방과 특히 농촌 지역에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재생에너지 사회로의 가장 큰 전환 이유인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바람과 햇빛에너지 농사는 지을 지역과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농촌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지어져야 한다. 자연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할 것이 아니라 옥상에서, 건물에서, 거리에서, 유휴 공간에서 말 그대로 자연에너지가 되도록 지어져야 한다. 일부업자와 투기꾼들의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자기 지역 에너지가 되도록 만들어가며 궁극적으로 재생에너지로 지역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어차피 쓰지 않는 농촌의 산자락과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 논밭이 원자력을 대신할 재생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영농형 태양광을 만들면 된다는 말도 듣는다. 농촌의 산자락은 자연환경의 보루이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 논과 밭은 농의 본질을 이어 누군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곳이다. 태양광 패널만 이어진 곳에서 농사짓는 삶을 이어갈 사람은 없다. 영농형 태양광 지역과 농부가 주체가 되어 상용화해야 하는 일이다. 법령미비와 업자와의 갈등으로, 행정 공백과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재생에너지로 인한 소외와 갈등, 심각한 피해 상황에 놓이는 당사자는 농민이다. 농민이 태양광으로 인한 농사 악영향과 산사태를 걱정하지 않고 농사지을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가 재생에너지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바람과 햇빛 농사는 온 국민이 전국에서 해야 한다. 그게 진짜 재생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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