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경기도 건강과일바우처 지원사업 소식을 접하면서 이런 정도의 사업구조는 되겠지 하고 예상했었는데 오로지 편의점을 통해서만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닌가. 경기도의 수많은 로컬푸드 매장이 떠올랐다. 동네마다 자리잡고, 시장마다 자리잡은 과일가게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오로지 편의점에서만 가능하다니. 과일을 받을 수 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해야할까? 
 

농부의 삶을 꿈꾸며 농촌으로 내려왔지만 농사일을 손에 놓은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우리 먹을 정도를 심는 일도 시간을 내고 수고를 들여야 하니 영 쉽지가 않아서 마치 농부인 적이 없던 것처럼 누가 생산한 농산물을, 어디서, 어떻게 사서 먹을 것인가 원칙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몇 년 동안 초보 농사꾼이었던 우리 집 농산물 꾸러미를 애정으로 드셔주신 그 모든 분들은 천사였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농부가 되고 철마다 다양한 품목을 심어 회원이 되어 주신 분들에게 여러 품목을 한 상자에 담는 소위 꾸러미를 보내드렸다. 그저 제철 유기농이라는 것 하나밖에 내세울 게 없었는데 초보 농부를 돕고 싶어서, 유기농법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많은 분들이 기꺼이 회원이 되어주셨다. 여름철 뜨거운 기운에 잎채소가 누렇게 떠서 가면, 왜 이런 걸 보내느냐 타박을 하시는 게 아니라 조심스럽게 상황을 전해주셨고, 시험 삼아 심어본 농산물을 넣어드리면 칭찬도 아낌없이 해주셨다.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를 모아서 보내주신 분들도 계셨고, 꾸러미를 받으시는 날마다 잊지 않고 정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감사 문자를 보내주신 분들도 계셨는데 그럴 때마다 하루의 피곤이 다 사라지곤 했다.

농사를 짓는 우리가 전하고픈 메시지는 ‘유기농산물은 누가 먹어야 하는 농산물일까요’와 ‘땅으로부터 식탁까지의 과정은 어때야할까요?’ 였다. 사람과 자연을 이롭게 하기 위한 유기농이 경제적 이유로 누군가만의 음식이 되는 것에 대해, 농사부터 소비까지의 그 모든 과정이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세상에 묻는 일이었는데 우리 회원 분들은 모두의 음식이 되어야 한다는 응원으로 우리가 취약계층에게 유기농산물을 전달할 수 있도록 스폰서가 되어주시기도 했고, 함께 농사짓는 공동 생산자의 마음을 가져주셨다.

그러다보니 공부방 급식에 유기농산물을 공급하고 싶어하는 분들을 만나 뵙게 되기도 하고, 먹는 것의 정의로움에 대해 생각하는 사회복지사님이 계신 복지관은 저소득층에게 친환경농산물 꾸러미를 정기적으로 보내드리는 사업 설계와 실행을 하기도 했다.

C시의 자활센터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에 한 달에 한 번씩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했고, 영양플러스 제도를 운영하게 되었을 때에는 이윤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품목을 친환경농산물로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이 분들은 취약계층이 좋은 먹을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런 일들이 농부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애쓰셨다. 재원 마련이 여의치 않아 이런 일들이 몇 년을 이어 계속되지는 않았지만 둘러보면 우리 말고도 이런 활동을 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또 정책들이 나오기도 해서 나비효과가 있었다고 혼자서 자부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함께 했고, 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사는 사람인 지라 전국 최초로 경기도가 가정보육 어린이들에게 건강과일바우처를 공급한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성남과 시흥, 김포는 00생협을 통해 가정에 꾸러미로 직접 공급하지만, 수원시 등 28개 시군은 4개의 편의점을 선정, 편의점에서 경기지역화폐를 활용해 과일을 구매하도록 사업이 설계됐다.

경기도의 수많은 로컬푸드 매장이 떠올랐다. 동네마다 자리잡고, 시장마다 자리 잡은 과일가게들이 떠올랐다. 건강과일바우처 공급 방식을 이렇게 이원화할 이유가 있었을까? 과일을 받을 수 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해야할까?

‘임산부친환경농산물꾸러미’라는 정부 사업이 있다. 2019년 국민참여예산제도의 높은 호응으로 시작된 사업인데 임산부와 신생아가 있는 가정이 일정 금액을 자부담하고 연간 48만원 상당의 친환경농산물을 받아볼 수 있는 제도이다. 2020년 시범사업을 거쳐 2021년 더 많은 지역으로 확대되었는데 농식품부는 2019년 9월부터 관련부처 및 부서, 지자체·유관기관, 유통업체, 생산자·소비자단체, 전문가 등으로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지원 TF’를 운영했고, 시범사업에 선정된 각 지자체는 친환경농산물을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도록 생산자단체나 광역단위 산지유통조직, 친환경농산물 취급자 등 유통업체 등과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에코이몰(Ecoemall)이라는 전용 쇼핑몰도 운영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평가해야 할 지점이 있기도 하겠지만 이를 시행하는 각 지자체들은 이 제도가 임산부와 신생아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농가를 위한 제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렇게 적은 규모의 시범사업밖에 할 수 없는가 하고 비판하고 싶지만 국민들의 먹거리기본권을 목표로 지난해부터 시범사업이 시작된 농식품바우처 사업도 이 제도가 취약계층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전달하는 한편 농가를 위한 제도임을 표명하고 있다.

지난해 농식품 바우처 시범사업 지역이었던 완주의 로컬푸드매장에서는 이곳에서 농식품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이용 안내 배너가 곳곳에 놓여있다. 물론 경기도의 어린이 건강과일꾸러미 역시 농사소득 확보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바우처 제도의 목적은 먹거리 기본권 보장과 동시에 우리 농업을 지속가능 하게 하는 데에 있다. 공급만을 목적으로 하는 바우처 제도는 행정편의에 다름 아니다. 경기도 건강과일바우처 운영의 변화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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