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미국의 농민시장은 단순히 직거래 시장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시장도 있고, 미국의 식량지원 프로그램인 푸드 바우처를 사용할 수도 있으며, 노인영양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농민시장도 있다.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을 누릴 권리가 이 시장에서 작동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농사를 짓는 지인 분들이 이곳 장수에서 농산물 봇짐을 꾸려 저 멀리 서울, 경기지역에서 열리는 농민시장에 판매자로 나가기 시작하셨다. 이런 장도 있었구나 아직은 낯선 시장에 가시는 분도 계시고, 농민시장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아마 알고 있지 않나 싶은 시장에 나가시는 분들도 계시다. 다녀오신 뒤에는 경험이지 하시기도 하고, 완판과 재구매의 기쁨을 말하기도 하신다. 가까운 곳에 농민시장이 있으면 좋으련만 자동차로 씽씽 달려 3시간이 넘는 거리. 그럼에도 며칠을 준비해 시장에 참가하시는 이유는 단순히 농산물을 파는 것을 넘어 농업의 중요성, 농부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이시리라.

몇해 전 농민시장에 나와 보시면 어때요 하는 몇 번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내가 멋있게 생각하는 농부들과 요리사들이 농민시장에서 많은 소비자들과 교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으로 참여할 수 없는 여러 이유를 생각해냈다. 너무 멀어, 팔아서 교통비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농부가 아닌 판매자로 규정될 것 같은 마음의 불편함, 네 아이를 건사해야하는 현실적인 이유 등이 내게는 있었다.

무엇보다 소비자로 오시는 분들이 확대될 수 있을까 싶었다. 이렇게 저렇게 농민시장을 나가지 않을 결심을 할 때면 원주농민새벽시장처럼 농민이 사는 지역에서 가깝고, 누구라도 거리낌 없이 올 수 있는 시장이 장수에서 가까운 곳에서 열리면 좋을텐데, 미국처럼 저소득층의 식량지원 프로그램인 푸드 바우처를 이용할 수 있는 농민시장이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1966년 UN은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을 체결했다. 1976년 발효된 이 규약의 11조는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생활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권리의 인정”과 “기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하고, 개별적으로 또는 국제협력을 통하여 아래 사항을 위하여 구체적 계획을 포함하는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해 미국은 ‘농민-소비자 직거래법’을 통과시켰다. ‘농민-소비자 직거래법’은 먹거리의 산업화가 진행되고, 슈퍼마켓 체인이 확산되자 오히려 지역 먹거리와 신선 먹거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농민과 소비자간 직거래를 후원하기 위해 제정되었는데 이 법 시행 이후 농민시장의 규모는 계속 증가했고, 미국 농림부는 1994년부터 농민시장의 수를 집계해 발표하기 시작했다. 농민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같은 해 발효되고 제정되었다는 것 외에 UN의 규약과 미국의 농민 소비자간 직거래법은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지만, 미국의 농민시장은 단순히 직거래 시장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시장도 있고, 미국의 식량지원 프로그램인 푸드 바우처를 사용할 수도 있으며, 노인영양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농민시장도 있다.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을 누릴 권리가 이 시장에서 작동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 농산물의 최대 구매자라고 불리는 미국 농림부 역시 이 시장이 먹거리 공동체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우리 농민시장에는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을 누릴 권리가 작동되지 못한다. 푸드 바우처 제도와 같은 식량지원 프로그램이 우리사회에 제도화되지 않은 탓이 가장 크겠지만 농민 중심성을 기반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탓도 있어 보인다. 시장의 이름도 어렵다. 농민시장이 어떤 먹거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지 분명한 좌표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생협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될 기회가 생기면 생협은 먹거리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왜 가난한 지역에 매장을 내지 않느냐고, 그래야하지 않겠냐고 물어보곤 한다. 농민시장들에게도 물어보고 싶어지곤 한다. 가난한 이들이 사는 지역에서 시장이 열리면 어떻겠냐고 그분들도 오실 수 있는 시장이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나는 농민시장을 열고 가꾸어가는 분들을 폄하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농민시장의 근본에 먹거리 공동체의 지향점이 담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올 수 있는 그런 시장들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생산자에 대한 존중과 공정함, 제한 없는 먹거리 접근권. 우리 농민시장들이 그렇게 운영되었으면 좋겠다. 정부도 농민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지원방안을 체계적으로 마련하며, 농민시장을 통해 먹거리 지원 프로그램이 시행되는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 현재로는 미국의 농민시장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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