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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먹거리정의 이야기] 지역화폐, 지역농민, 그리고 로컬푸드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완주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로컬푸드 매장에 들러 정부 긴급재난기금으로 한아름 장을 보았다. 완주 용진농협 로컬푸드 매장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로컬푸드를 이끌어온 선구자이니 장을 보지 않고 매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인데 정부 긴급재난기금으로 결제가 되니 현명한 소비를 한 것 같기도 하고, 횡재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완주를 비롯해 로컬푸드 직매장이 있는 곳에 사시는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직매장이 있는 지역에 갈 때마다 로컬푸드 매장을 들러 장을 보는 일은 내게는 어쩌다 누리는 호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로컬푸드 매장에서 사온 농산물들은 하나같이 더 맛있다.

정부 긴급재난기금 말고도 지역 재난지원금으로 지역상품권을 받았다. 요즘 장보기를 비롯해 지역에서의 웬만한 소비생활은 지역상품권을 사용해 해결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역상품권을 써야할 때에는 뭔가 쭈뼛쭈뼛하게 되기도 했는데 모든 군민이 재난지원금으로 나온 상품권을 사용하게 되니 상품권을 내미는 나도, 받으시는 분도 이제는 그저 자연스럽기만 하다.

과천의 ‘아리’, 대전 한밭레츠 ‘두루’, 마포의 ‘모아’, 구미 ‘사랑고리’. 지난 20여년간 마을공동체를 고민해 온 분들이 만들어 사용해온 대안화폐들이다. 우리 마을도 몇 년 전 ‘땀’이라는 마을 화폐를 만들어 품앗이 활동과 마을내 구매에 사용하곤 했다. 코로나19가 결정타처럼 여겨지겠지만 여러 지역 사람들의 대안화폐에 대한 그동안의 고민과 노력이 모이고 모여 각 지자체의 지역화폐가 탄생했고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으로 선택될 수 있었을 터이다. 대전 마을부엌에 갔다가 한밭레츠 두루로 유정란을 사고,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마을 땀으로 마을안 빵집의 빵을 사먹으며 언제쯤 대안화폐가 일상이 되는 그런 세상이 오려나 했는데 사회적 재난의 파고를 타고 00지역상품권이라는 이름을 달고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지역화폐가 통용되는 시절이 드디어 왔다.

지역화폐는 지역 안에서 지역경제를 순환시키는 일을 한다. 자본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 상품권을 받은 이후 농산물을 살 때마다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동안 과일이나 저장성 좋은 채소들은 농부에게 직거래하거나 사회적 경제를 지향하는 농업유통회사에서 구입해왔는데 지역화폐로는 구입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우리 지역 농부들의 농산물을 사려고 해도 지역화폐로 구입 가능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지역주민에게는 생활비가 되고, 소상공인에게는 수입이 되는 지역화폐가 농민에게는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까? 지역 농산물

 

소비가 지역화폐로 이어지고 있을까? 우리 지역 농부들은 지역화폐로 무엇을 할까? 생각이 많아졌다.

전라북도 로컬푸드 직매장 인증 심사위원이었던 적이 있었다. 로컬푸드 직매장 인증은 지역농산물 취급정도, 농민의 가격결정권 여부, 생산자 중 소농의 비율, 판매금액 농가환원 비율, 생산자 교육 등 그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만 받을 수 있다. 하나라도 기준에 미흡하면 이미 인증을 받은 매장이라도 인증이 취소될 정도로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는 제도이다. 완주의 지역재난기금은 로컬푸드 직매장 인증을 받은 완주 로컬푸드 매장에서 쓸 수 있다. 지역화폐가 농산물 소비로 이어지고 농민 소득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제주 공심채라는 농업회사법인은 제주지역 재난지원금을 사용하여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농업수익을 만들어내고 있다. 완주처럼 로컬푸드 직매장이 있는 지역이 아니라면, 공심채처럼 지역상품권 가맹점이 되어 적극적으로 이를 알려내는 농업관계 법인 조직이 있지 않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정책과 사람이 있지 않다면 지역상품권은 지역 농민의 농산물을 사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화폐 사용이 가능한 농촌 지역의 농협매장도 자기지역 농산물만을 팔지 않는다.

심지어 지역농협매장 내 로컬푸드 매대에서 지역농산물이 아닌 일반농산물을 팔아 적발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농협 마트에서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지역농부에게 수익이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현재로서는 그저 바람에 그칠 뿐이다. 지역화폐가 농민 수익으로 이어지는 일이 드문 경우이니 농업이 생업인 농민은 다른 생업에 종사하는 지역주민처럼 지역화폐의 소비자가 되었다.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농민과 결부시키는 것은 지역화폐의 농업소득으로서의 연결이 아니라 농민 수당으로 지역화폐를 지급하겠다는 정책이다.

먹거리가 생산지로부터 밥상에 오르는 물리적 거리를 줄여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일, 누가 생산하는지를 알고 먹는 일, 친환경농업과 생물다양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일, 이를 통해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하고 농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일 등이 우리가 로컬푸드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지역의 농민이 지역의 농업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고, 지역 사람을 살려서 다시 지역농업을 살리고 농민을 살리는 선순환, 이것이 로컬푸드의 본질이다. 화폐 역시 로컬이 된 시대. 굳이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고민이 아니더라도 로컬푸드와 지역화폐가 서로를 살리는 시대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지역화폐가 지역 농민과 농업을 소외시키지 않는 시대를 위한 정책 설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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