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먹는 것은 문화적 행위이며, 소통과 사회적 관계의 적극적 표현이며 행복한 삶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농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진짜 미식 사회는 먹거리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일 것이다. 농식품바우처 시범사업의 안착화, 공식 제도화를 염원한다.

1800년대를 살았던 프랑스 미식가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은 "그대가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 주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가 이 말을 한 지 200년이 훨씬 지났지만 우리는 종종 이 말을 떠올리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무엇을 먹는지는 그 사람의 취향은 물론이고 사회적 환경, 경제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심지어 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몇 해 전 뉴욕에서 활동하는 '스테파니 드 루즈'라는 포토그래퍼는 '당신의 냉장고 속'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람들의 냉장고 사진을 찍었다. 미국의 사진작가인 '마크 멘지바'도 5년 동안 사람들의 냉장고 사진을 찍었다. 한국의 환경단체인 환경정의도 사람들의 냉장고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브리야사바랭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냉장고는 냉장고 주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냉장고 사진을 찍은 작가들은 사람들이 냉장고 안을 보여주는 것을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로, 그래서 누군가는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다고 말했다. 냉장고 속 음식이 자신의 경제 상황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TV 프로그램과 SNS에는 무언가를 먹는 사람들의 사진이 넘쳐난다. 어떤 카페와 식당은 먹는 사진 한 장을 위해 꼭 가야만 하는 곳이 되기도 했다. 모두 다 잘 먹고 잘사는 것 같지만 우리 사회 누군가는 여전히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 놓여있다. 그들의 냉장고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텅텅 비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산업혁명 시대, 가난한 영국 어린이들은 여덟 살 정도부터 방직공장에서 일했고, 평균수명이 15세에 불과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장시간 일을 했고, 월급 대신 받은 식료품에는 무게를 늘리기 위해 모래가 섞여 있었다. 이런 상황은 로치데일이라는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으로 식료품 가게가 운영되도록 한 이유가 되기도 했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아침식사 프로그램이 도입되는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백여년 전부터 아동급식 프로그램이 운영된 영국과 유럽이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급식이 중단되면서 영국 아동 다섯명 중 한명이 결식아동이 되었다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이런 통계들은 먹거리 빈곤문제는 지원프로그램을 일찍 시작한 나라라고 해서 해결되고 있지 않다는 걸 생각하게 한다.

미국 역시 먹거리빈곤층이 많은 사회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미국은 1930년대부터 식품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로 보충영양프로그램(The 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SNAP, 일명 푸드바우처)을 시행하고 있는데 미국 인구의 12%가 이 프로그램을 적용받고 있다. 미국의 SNAP 프로그램은 먹거리 빈곤층의 식품 불안정을 해소하고 빈곤을 완화하며 농수산업, 교통업, 소매업 등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 경제가 악화될 때의 SNAP 프로그램은 농수산업 일자리 500개 이상을 만드는 효과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등의 원인으로 누군가는 좋은 먹거리 접근권이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늘 미국의 SNAP 제도를 부러워했다. 식품지원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복지부 사업으로 진행되지만 SNAP는 미국 농림부 프로그램으로 자국의 농업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오프라인 사용을 넘어 온라인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하고 있고, 특히나 농부들의 직거래장터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부러웠다. SNAP이 미국 농림부 사업이며, 미국 농업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부러웠다. 먹거리정의 사회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연구자들이, 그리고 활동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형 푸드바우처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2018년 서울시가 65세 이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어르신 영양꾸러미(식품바우처) 시범사업을 실시하면서 푸드바우처 시행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지더니 드디어 농식품바우처 시범 사업이 이달부터 11월까지 전북 완주군, 충남 청양군, 경북 김천시, 세종시에서 시행되기 시작했다. 시범사업이라 시행 지자체 수도 적고, 기간도 3개월로 한시적이다. 그러나 농림부에서 이 사업을 주관하는 점, 국내산 신선농산물을 취약계층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하고있는 점, 이 사업이 농업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 먹거리기본권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라 하겠다.

우리는 그동안 먹거리를 기본권리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식품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를 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나누고 베푸는 문제로, 먹거리빈곤과 영양증진이 아닌 결식 방지와 끼니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먹거리빈곤 문제를 다루어왔다. 그래서 학교의무급식을 복지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먹거리 보장과 관련된 문제들을 소모적인 사회적 논쟁으로 만들고 정치쟁점화 시켜왔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먹는 것은 생존의 필수이며, 건강한 삶의 밑바탕이다. 먹는 것은 문화적 행위이며, 소통과 사회적 관계의 적극적 표현이며 행복한 삶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농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진짜 미식 사회는 먹거리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일 것이다. 농식품바우처 시범사업의 안착화, 공식 제도화를 염원한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무엇을 먹는지 말하는 사회로, 서로의 냉장고 사진을 웃으며 찍을 수 있는 사회로 가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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