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지원사업이 함정같다는 말은 지금까지 농촌사업과 관련해 들은 말 중 가장 마음이 아픈 말이었다. 잘 사는 농업농촌을 위해 기획된 각종의 지원사업이 함정같은 일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필요한 것은 지원사업 위에 또 다른 지원사업을 얹어 사업을 외형적으로 지속하게 하는 옥상옥 구조가 아니라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평가하고 멘토링해주는 일이 아니었을까? 
 

나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를 다녔다. 친구와 뛰어놀거나 거리를 걷다가도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멈춰서 국기에 경례를 했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웠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나오는 장면들. 우리세대가 지나온 세월이 이렇다. 반공이 국시였으므로 반공에 대한 웅변대회가 수시로 열렸고, 미술시간과 숙제로 각종 포스터 그리기가 이어졌다. 몇 번 웅변대회와 포스터 그리기대회에서 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운동도 매우 중요한 일로 배웠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하는 새마을운동 노래를 쉽게 흥얼거렸다. 지금도 기억할 만큼 말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를 사서 노래를 들을 때 마지막 노래는 건전가요였다.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지나온 시간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달라졌다. 반공 웅변대회도 없고, 포스터를 그릴 일도 건전가요를 들을 일도 없다. 국가가 주도해 하향시책 사업으로 진행된 새마을운동이라는 단어는 더더욱 떠올릴 일이 없었다. 그런데 농촌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새마을운동의 뉘앙스를 담고 있는 일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사는 마을은 **마을만들기 지원사업을 받았다. 귀농한 다음 해였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우리 마을을 **마을로 만들어서 마을이 경제적 공동체가 되는 것이었다. 공동으로 꾸러미를 할 수도 있겠구나, 마을 경작계획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속으로 여러가지 기대를 했다. 마을작업장에 청년들이 들어와 상주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마을홍보용 영화를 찍기도 하고 청소년들은 직접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작업기간 동안 상주했던 청년들이 살뜰해서 마을사업에 대해 좋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파주에 있는 **으로 소위 선진지 견학을 다녀오기도 했고 마을도농교류센터가 지어졌다. 주민들이 수시로 모이기도 했고 건물도 지어졌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을 이름으로 사업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마을 사업을 진행할 당시 대부분의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농사 규모도 다르고, 의지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니 경제적 공동체가 될 수는 없었다. 처음에 의도한 것은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저 커다란 마을회관이 생겼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도농교류센터의 이름을 단 건물이 우리 마을 안에 자리잡고 있어서 제 기능은 하지 못하지만 관리가 되어 흉물로 방치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걸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니! 농촌마을은 경제적 공동체인가? 정보화마을, 녹색마을, 향토산업마을, 창조적마을, 농촌치유마을. 이름이 무엇이건가에 마을단위의 사업이 이루어지려면 마을이 경제적 공동체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마을을 기반으로 경제적 공동체의 유형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정부의 사업방침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새마을운동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농촌청년창업, 커뮤니티 비지니스, 농촌형 사회적경제 만들기, 산림자원화 사업, 6차산업화 사업. 마을단위 사업뿐만 아니라 농촌에는 여러가지 지원 사업이 다양한 이름을 걸고 진행되고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고 필요한 사업이다. 공동체 창업 교육을 받은 후 실제 창업을 하고 성실하게 일해 온 분이 얼마 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좋은 재료를 썼고, 재료를 아끼지 않았고, 원칙을 지켰고, 정직하게 일했어요. 누군가는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지요. 지금까지 월급 한 번 제대로 가져가본 적 없이 희생에 희생을 거듭하며 여기까지 버텨왔어요. 힘들어서 그만둘만 하면 이런 사업도 있으니 해보라고 지원을 해준대요. 그래서 더 나아질 희망을 가지고 지원을 받고 일을 하다가 힘이 부치면 또 다른 지원사업을 해준다고 해요. 우리는 열심히 살았고, 성실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디만큼 왔나 되돌아보니 빚만 잔뜩 있어요. 지원사업 할 때마다 자부담을 빚으로 만들어냈어요. 지원사업이 함정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어떤 사업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아요.”

지원사업이 함정같다는 말은 지금까지 농촌사업과 관련해 들은 말 중 가장 마음이 아픈 말이었다. 잘 사는 농업농촌을 위해 기획된 각종 지원사업이 함정같은 일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필요한 것은 지원사업 위에 또 다른 지원사업을 얹어 사업을 외형적으로 지속하게 하는 옥상옥 구조가 아니라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평가하고 멘토링해주는 일이 아니었을까? 이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이 아닐까?

잘 사는 농업농촌, 농촌의 지속가능성은 현재와 같은 지원사업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농촌의 사회적 비즈니스 모델은 현재와 다르게 구축되어야 한다. 농촌의 지속가능성은 농의 본질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지역이 변두리가 아니라 지역으로서의 의미를 어떻게 갖게 할 것인가에서 찾아져야 한다. 농식품부와 관계부처가 지원사업을 정하고 공모하고 내려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지속가능농업기금을 조성하고 민관, 전문가와 주민이 참여하는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필요한 이들이 필요한 상황에 맞게 예산을 책정하고 투입해 사업을 펼칠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대가 변하고 변했다. 위에서 내리꽂는 농정도 혁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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