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우리는 땅값 좋은 노른자 땅으로, 한평이라도 더 넓은 집으로 가고자 하면서도 농축산이주노동자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는 지는 돌아보거나 개선할 여력을 가지지 못한 괴물 사회를 만들어왔다.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 아버지가 사업에 망해서 소위 서초동 하꼬방이라는 동네에 일년 정도 살았었다. 비닐하우스촌이라고도 불리는 가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화장실은 공동화장실, 집에서는 어떻게 목욕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미로 같아서 우리가 사는 집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남의 집에 잘못 들어가기도 했다. 35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서초동을 지나갈 일이 생기거나 줄지어 있는 화훼단지들을 보면 춥거나 더웠던, 우리 가족에겐 집이었고, 남들에겐 비닐하우스였던 집이라 할 수 없는 집에 살았던 기억들이 밀려오곤 한다.

지난달 20일, 경기도 포천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 여성 노동자가 운명을 달리했다. 한파 경보가 발령된 때였지만 비닐하우스는 난방이 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슬프고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어서, 비닐하우스에서 살아본 나는 이주노동자가 운명을 달리한 숙소가 어떤 상태였을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뉴스를 보다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비닐하우스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곳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였다.

농림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1월 6일 농‧어업 분야에 고용된 외국인 근로자의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주거환경 실태를 조사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였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농축산분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관련한 사회적 요구에 남의 일처럼 대처해온 농림부 반응을 생각해볼 때 파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신속했다. 전례 없는 신속한 반응에는 사안이 심각하다는 판단이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언젠가 이런 비극이 있으리라 예측될 만큼 이주노동자들의 주거 상태는 늘 심각했다.

2012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주거 자유의 보장, 쾌적한 생활, 공동숙소의 법령 기준 준수의 내용이 포함된 ‘이주인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법무부 등 관련 부처에 정책 방향을 적극 반영할 것을 권고했고, 2014년에는 농축산이주노동자 근로조건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고용노동부장관에게 농축산이주노동자들의 장시간 저임금 등 고용 구조 개선을 촉구했는데 열악한 숙소 문제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인권위 조사 당시 농축산이주노동자들의 67.7%가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 가건물 숙소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난 6일 농림부 발표에는 이같은 숙소에 거주하는 비율이 69.6%로 오히려 늘어났다. 지난 10년 동안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최근 펜트하우스라는 드라마가 연일 화제였다. 최상류층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을 배경으로 한 인물들의 대립과 사건, 서민들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는 펜트하우스가 배경이어서 몰입감을 더욱 끌어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뉴스에서는 연일 부동산 시세가 오르내리고, 집을 대신 구해주는 예능방송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인에게 집이란 욕망의 투사이며, 불변의 재테크 수단이고, 자신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땅값 좋은 노른자 땅으로, 한평이라도 더 넓은 집으로 가고자 하면서도 농축산이주노동자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는 지는 돌아보거나 개선할 여력을 가지지 못한 괴물 사회를 만들어왔다.

농림부와 고용노동부는 2021년 1월 1일부로 비닐하우스내 가설 건축물 고용허가를 불허한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농어가 주거시설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 빈집 등 유휴시설을 활용해 외국인 여성근로자의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하고, 외국인어선원 복지회관 건립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새롭게 마련한 방안처럼 보이지만 농업분야 외국인 여성근로자 주거지원사업은 2021년도 국민참여예산 제도를 통해 제안된 사업이고 외국인 어선원 복지회관 건립도 이미 시행이 되고 있는 사업이다. 이미 시행해야할 사업의 양을 조금 늘려 생색내기만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시행 예정인 제도를 대책이라고 발표해야 하는 때가 아니라 보다 실효성 높은 정책이 무엇인 지 적극적으로 찾고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때이다.

좋은 숙소가 준비되지 못하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도록 하는 일은 이미 이주노동자에 기대지 않으면 수확이 이루어지지 않는 농촌의 현실을 되돌아볼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농장주가 갑자기 돈이 생겨 좋은 숙소를 마련할 일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농어촌 지역에 각종 지원사업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건물만 남아있는 숙박 시설을 파악해 고용노동부와 지방정부가 보증을 서고 숙소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귀농인의 집이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이주노동자의 집을 운영할 수도 있고, 기업의 사회적공헌 기금, 농장주와 지자체, 관계기관, 이렇게 민관이 함께 재원을 조성해 농촌이주노동자복지회관, 공동주택 건립 추진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폐교된 학교를 공동숙소로 리모델링할 수도 있고, 농촌중심지 사업에 이주노동자를 위한 공간을 포함해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촌이주노동자를 위한 일을 하는 담당자가 각 자자체 농축산어업 관련 부서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이 생겨야 대책을 마련하는 방식을 벗어날 수 있고, 농축산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다.

농축산업이주노동자에게 집다운 집을! 숙소다운 숙소를! 신속하고 과감하게 농축산이주노동자 숙소를 개선해야 한다.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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