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외손녀가 서울 유학을 이유로 할머니집에 들어가 둥지를 틀기 전까지 친정엄마는 혼자 사는 고령자셨다. 엄마의 냉장고에는 소분된 여러 식재료들이 가득 차 있었다. 한 번씩 친정엄마 집에 갈 때마다 이제 너무 오래 보관되어 버려야할 것들을 정리하려고 들면 엄마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먹을 예정이라며 하나도 버리지 못하게 하셨다.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 식재료는 여전히 그냥 보관된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엄마의 냉장고가 그런 상태로 있는 것은 혼자 생활하는 노인이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엄마는 만성 지병이 있어 식사 관리를 비교적 잘 하시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 가구 노인인 엄마의 식사는 혼자 잘 차려먹을 이유를 못 찾거나, 귀찮거나, 아껴야 하겠다는 여러 이유로 물 말아 뚝딱 몇 숟가락일 경우가 많았다.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 식사를 하고 나시면 안부 전화 저 너머로 오래간만에 맛난 것을 먹었다는 말씀을 전하시곤 한다. 어디 우리 엄마뿐일까?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 함께 식사를 하신다는, 그날 그 식탁에 앉으셨던 엄마의 친구 분들 모두 고립감 대신 연대로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즐기셨으리라. 그리고 그 식탁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이라는 정기 모임을 만드셨으리라.

먹거리정의 활동을 시작했던 8년 전 쯤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연이어 스스로 생을 달리하는 슬픈 일이 있었다. 임대아파트에는 1인 가구의, 고령의, 지병을 가진 거주자들이 많다는 점에 주목해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먹거리 교육, 공동식사, 먹거리 바우처 제도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사회적 공헌 활동을 모공사에 제안했었다.

지금은 지역마다 푸드플랜을 논의하고, 먹거리 기본권 보장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 중 하나로 인식되고 저소득층 식품 바우처 제도 도입, 돌봄교실 간식 공급 등의 정책 사업이 추진 실행되고 있지만 먹거리정의 활동을 시작했던 그 때만 해도 먹거리 빈곤층의 좋은 먹거리 접근권 확보, 먹거리 돌봄을 통한 사회적 관계망 형성과 고립감 해소의 필요성을 우리 사회는 줄곧 외면해 왔다. 그리고 이런 일은 관련된 정책과 제도의 필요성 보다는 개인의 선한 의지에 기대어 도움을 주는 정도의 일로 여기곤 했다. 취지에 공감하나 사회적 배경이 성숙하지 못해 하지 못했던 그 일이 지금은 여러 곳에서 자발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게는 필자의 엄마처럼 지인들의 작은 모임으로, 크게는 법인을 만들어 하는 일까지 말이다.

공동부엌, 마을부엌, 그 이름이 무엇으로 불리건, 쪽방촌, 아파트, 작은가게, 그 공간이 어디건, 공동육아, 마을주민, 청년, 고령자, 그 대상이 누구이건, 공동식사, 반찬나눔, 요리교육, 그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먹거리로 서로를 돌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공간을 만들거나 찾아내고, 모이고, 함께 밥을 먹는다. 특히나 먹거리로 서로를 돌보는 공간과 관계, 그 활동은 부엌이 없는 열악한 주거공간의 사람들과 1인 가구에게는 더 절실한 필요의 이유가 된다. 그래서 몇몇 지자체들은 마을부엌, 공동부엌을 지원하기도 한다.

그런데 마을부엌, 공동부엌이 절실한 필요가 아닌 유행하는 아이템으로 여겨지는 경우를 요즘 들어 종종 보게 되곤 한다. 마치 농촌이라면 어느 지역이건 가공식품 산업을 지원하거나 6차 산업을 지원하는 것처럼 마을부엌, 공동부엌이 농촌지역 발전을 위한 새로운 사업 영역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공동부엌이 로컬푸드 매장에서 팔고 남은 것을 반찬으로 만들어 공급하는 사업 공간, 농촌지역에서의 먹거리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부엌으로 사업계획에 담기고 이를 위한 컨설팅과 교육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로컬푸드 매장에서 팔고 남은 것을 활용하는 계획도, 먹거리창업을 지원하는 일도 모두 다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공동부엌인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미 이런 의미의 사업은 사회적 경제 모델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앞서 말했듯이 공동부엌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운영하는가에 따라 다른 색을 띤다. 주거공간에 부엌이 있지 않고, 저소득층이 밀집된 쪽방촌에서의 공동부엌과, 공동육아나 생활의 편의를 목적으로 한 공동부엌은 운영 취지와 내용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어 외부의 설계로 강제되거나 사업아이템의 하나로 취급된다면 제대로 운영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나 대다수의 주민이 공동주택이 아닌 단독주택에 거주하며 마을단위 생활에 기반한 고령자 밀집 지역인 농촌에서는 이미 마을회관 공동식사와 같은 공동부엌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이를 보다 더 잘 활용한 방안을 강구하는 일이 어쩌면 더 절실할 수 있다.

먹거리 아동 돌봄이 필요하다면 지역아동센터의 급식, 공공급식, 결식아동 급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 지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첫 걸음이다. 요리 교육이 필요하다면 여러 지원사업으로 지어지고 그 쓸모를 찾지 못한 공간을 어떻게 이런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반찬나눔이 필요하다면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는 사업장이 어떻게 지역 주민들을 주체화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는 일이 먼저다. 여러 지역의 고민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 기본권과 복지 관점이 배제된 채 마치 새로운 지원사업의 유형을 찾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지자체들이 공동부엌을 만들고, 식생활 강사 양성하듯 공동부엌 코디네이터 양성이라는 교육을 할 필요가 있을까?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같은 유형의 공동부엌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공동부엌의 선행 과제는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