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를 만드는데 누가, 어떻게, 어떤 상태로, 무엇을 생산, 가공, 유통했는지 아는 것을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것이 GMO라면 더더욱 정보는 공개되어야 한다. 시대를 역행하는 GMO 깜깜이 행정의 혁신적인 변화 없이 국민들의 식품 안전이 보장되고 소비자로서의 알 권리가 충족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닭고기와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다. “이 맛있는 걸 못 먹다니! 엄마는 불쌍해” 하면서 우리 집 애들은 치킨을 먹을 때마다 나를 놀리곤 한다.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맛있는데” 하고 불판위에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먹으며 놀려댄다. 내 알레르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비싼 분이야 하는 농담과 함께 회식 메뉴가 돼지고기에서 소고기로 바뀌는 일이 많았다. 덕분에 비싼 거 먹네 하는 칭찬 아닌 칭찬도 종종 들으면서 말이다.

회식이 아니라 외식을 해야 할 자리에서도 동석하시는 분들은 내 알레르기를 고려해 메뉴를 선택하는 불편을 감수해주곤 하신다. 내 큰언니도 복숭아와 사과 알레르기가 있고, 우리 집 아이들도 알레르기가 있는데 큰 딸은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포도 알레르기가 있고, 막내는 후숙되지 않은 키위나 토마토를 먹으면 입술 주변이 붉어진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과일을 먹일 때는 상태를 잘 살피고 먹인다. 누구나 식품 알레르기가 있을 수 있으므로 나는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될 때 특정 식품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으면 미리 알려달라고 말씀드리곤 한다. 상대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으면 안 되는지 아는 것, 어찌 보면 이것은 사람 관계의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40대 중반인 내가 어릴 적에는 과자를 사먹을 때 식품 첨가물에 대한 표기가 있어야 하는 지도, 그게 중요한 것인지도 잘 모르고 사먹었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만들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질 수 있게 식품 안전과 표기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쫀득이도, 쫄쫄이도, 물에 타서 마시는 주스 분말도 별 거리낌 없이 먹었다. 한편 추억이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불량식품, 딱 그것인데 말이다.

아이들이 새 학기가 되어 받는 여러 종류의 안내장 중에는 특정 식품 알레르기가 있으면 알려 달라는 내용이 있다. 다달이 학교 급식안내장에도 식품 유발 알레르기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내가 어릴 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물론 여전히 허점은 많지만 생산, 제조, 수입, 유통, 소비되는 모든 과정, 농장에서, 공장에서 우리 식탁에 식품이 이르기까지 국가는 식품안전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식품사고가 발생될 경우, 위해식품이 발생될 경우, 국가는 국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해당 제품이 유통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바로 며칠 전에도 많은 사람들의 식탁에 자주 올랐을 법한, 유명 식품회사의 OO미트라는 혼합 프레스햄이 위해식품으로 회수되기도 했다.

종종 국내산으로 둔갑된 수입산 농산물이 무엇인지도 알려주고, 수입산 농산물과 국내산 농산물을 구분하는 방법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일을 마주하다 보면 도대체 무얼 먹어야 하지 하는 걱정이 커지지만 동시에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먹을 권리를 국가가 누리게 해준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가는 유전자변형(GMO) 농산물 앞에서는 도무지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해주지 않고 있다. GMO인지 아닌지 표기해 달라며 청와대 청원에 20만명 이상이 동참한 GMO 완전표시제를 ‘나몰라라’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8월 GM감자 안전성 승인을 위한 절차를 모두 완료해 내년 2월 식약처 최종 승인에 따라 실제 GM감자가 수입될 가능성이 매우 커지기도 했다. 국산 콩 재배농가들이 스스로 수입산 콩으로 만든 두부에 GMO가 검출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문제제기 해야 하는 상황이 국민의 한 사람인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OO미트햄은 위험하니 먹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 이 식품은 OO로 만들어졌고, OO와 같은 식품첨가물이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주는 것과 유전자변형농산물이 들어갔다고 알려주는 것은 나라에서 보기에 전혀 다른 일인걸까? 누구도 안전을 자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안전하다는 명분으로 마치 GMO 농산물에 대한 도전은 불가능하고 GMO 농산물은 성역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아니겠는가? 무엇이 GMO 농산물로 만들어졌는지 모르고 식품을 사먹어야 한다면, 국가가 나서서 불량식품 사회를 조장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해당 기업의 로비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사회가 GMO 깜깜이 사회가 될 이유가 전혀 없다.

생산, 가공, 유통, 소비되는 먹거리의 모든 과정이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식품 안전과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를 만드는데 누가, 어떻게, 어떤 상태로, 무엇을 생산, 가공, 유통했는지 아는 것을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것이 GMO라면 더더욱 정보는 공개되어야 한다. 시대를 역행하는 GMO 깜깜이 행정의 혁신적인 변화 없이 국민들의 식품 안전이 보장되고 소비자로서의 알 권리가 충족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소망한다.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 지 알 권리가 충족되는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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