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탄소중립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고 이는 교육 현장도 다르지 않아 학교에서 어떻게 탄소중립을 실천할 것인가도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공교육에서의 식생활교육은 영양섭취와 칼로리 조절, 비만예방, 건강증진, 편식방지를 주요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탄소중립 실행방안은 다 먹는 날, 채식하는 날과 같이 저감과 동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ㅣ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다달이 ‘먹거리 정의를 이야기하는 30인의 밥상’이라는 소셜다이닝을 운영하던 때에 어느 분께 ‘식탁의 영성’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이 책은 16명의 종교사회학 전공자들이 각 종교에서 보는 먹거리의 의미와 먹는 것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 정치경제 및 사회적인 맥락에서의 먹거리 시스템의 문제점과 대안의 제시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처음 책장을 넘길 때에는 책을 주신 감사함, 이리 많은 종교가 먹는 것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 하는 흥미, 내가 접해보지 않았던 종교에 대한 궁금증, 영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성함에 이끌렸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 모든 종교가 한결같이 한마음으로 먹거리를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음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어떤 종교든 먹거리는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이에게 평등해야 할 인권의 시작이었고 개인이 아닌 사회가 책임져야할 공공의 영역이었다. 그 뒤로 사람들에게 먹거리 정의와 관련된 책을 좀 추천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책과 함께 이 책을 추천해드리기도 했다.

얼마 전에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사찰 봉사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천주교인이지만 불교의 가르침에 감명받을 때가 많이 있고, 답사 겸, 마음도 정화 시킬 겸 일부러 사찰을 찾아다니던 때와 불교환경연대라는 사회단체와 연대 활동을 하던 일도 있어 스스럼없이 모임에 참여했다. 이날 십여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한 줄로 앉아 자기 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오래 전 외워두었던 발우공양 소심계가 밥을 먹는 내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스님들의 발우공양처럼 해보려고 서툴게 김치 한 조각을 남겨 그릇을 닦아 보려던 서툴던 내 모습과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첫 문장이 너무도 강렬해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던 오래 전 기억도 떠올랐다.

언니들과 우리끼리 밥을 해 먹으며 살았고, 농촌에 친척 한 분 계시지 않아 “쌀 한 톨도 귀하게 먹어야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지 못했다. 밥상 위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 해본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농활에 가서였다. 얼른 도망쳐 나오고 싶었던 뜨거운 한 여름의 오이 하우스 안에서, 메어도 메어도 끝이 안보이던 콩밭의 풀을 뽑으며, 온몸을 던져 감자를 캐고 크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면서 내 체력으로 버틸 수 없는 상황을 이겨보고자 기도하듯 농민가를 속으로 불렀다. 그리고 삼천만 잠들었을 때 깨어있는 그 농민들이 늘 이런 노동을 해야 나에게 밥 한 그릇이 온다는 사실을 아주 입체적으로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먹는 것을 귀하고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내 머릿속 지우개는 싹 지워냈다.

내가 다시 먹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게 된 것은 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어린이 자연캠프 참가자들이 “밥은 하늘입니다” 김지하 시인의 시를 노래로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난 뒤였다.‘’밥은 하늘이지, 저런 걸 배우며 살아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십년 세월이 흐른 뒤에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식사 때마다 밥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캠프와 같은 특별한 때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밥을 귀하게 여기는 교육. 먹는 일이 도덕과 윤리로 연결되는 교육을 우리가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해본 일이 있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코로나19 시대 감염을 피해야 하는 적극적인 자기 돌봄과 경제적 위축으로 먹거리 격차가 심화되고, 기후위기의 대안으로서 탄소중립 실천 요구에 따라 먹는 일과 식생활교육은 보다 더 주목받는 일이 되었다. 한국에는 법령에 따라 조직 운영되는 식생활교육 단체들이 있고, 학교마다 영양교사들이 학생들의 식생활 교육을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운영한다.

앞장서서 식생활 강사를 양성하는 지자체도 많이 있다. 로컬푸드가 학교급식의 주요 식재료로 사용되는 흐름이 대세가 된 지도 오래여서 급식실 게시판에 우리 지역의 농부 이름과 사진이 붙어 있는 곳들도 많이 있다. 탄소중립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고 이는 교육 현장도 다르지 않아 학교에서 어떻게 탄소중립을 실천할 것인가도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공교육에서의 식생활교육은 영양섭취와 칼로리 조절, 비만예방, 건강증진, 편식방지를 주요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탄소중립 실행방안은 다 먹는 날, 채식하는 날과 같이 저감과 동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것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교육이다. 그러나 먹는 것이 생태와 인간의 존엄, 사회공동체를 지켜왔고 지켜가는 도덕과 윤리라는 기본 교육이 전제될 때 현재의 식생활 교육의 본질적이고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음식 윤리는 누구나 반드시 배우고 익혀야 할 공교육의 필수교육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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