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1.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고, SNS에는 확진자가 있는 지역 마트에 생필품이 동나고 있다는 사진이 간혹 올라오곤 한다. 대한민국 곳곳이 마트, 편의점이고, 온라인 쇼핑몰도 셀 수 없이 많아 실제로 확진자가 더욱 많아진다고 해서 사재기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일은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한쪽에선 이렇게 생필품이 동나고 있지만 외식업체들은 남아도는 식재료로 고통을 받고 있다.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열 수도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구에서 새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외식업체 이름, 해당외식업체 메뉴, 소진되어야하는 식재료 정보를 SNS로 공유하고, 이를 본 시민들이 주문을 이어가며 외식업체 식재료가 소진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식재료를 선택할 때 지불 여력, 맛, 신선함, 건강 등 몇가지 기본적인 키워드를 작동시킨다. 그리고 거기에 정보와 가치 기준을 접목한다.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가, 이걸 소비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먹거리를 어떻게 선택하고 소비하는가는 생산과 유통, 먹거리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고리이다. 대구시민들은 먹거리 선택 키워드를 서로에 대한 연대로 작동시켰다. 그리고 어떤 소비가 서로를 살리는 소비가 되는지 분명하게 드러내어 주었다.

슬로푸드 운동에서는 음식시민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음식시민이란 단순한 먹거리 구매자가 아니라 좋은 음식, 깨끗한 음식, 정의로운 음식이 생산, 가공, 유통, 소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구 시민들의 서로를 향한 먹거리 연대는 음식시민의 기준을 확장해냈다. 이제 대구는 음식시민의 도시이다.

2. 외출하지 않는 것이 나와 남을 위해 이로운 일이라는 생각과 대면접촉의 불안한 마음은 쇼핑까지 이어져 온라인 쇼핑이 더욱 증가했다. 이 시기에 몇몇 쇼핑몰은 그야말로 핫하게 주목받고 있다. 편성표에는 없지만, 공영홈쇼핑에 마스크 판매 방송이 나온다며 하루 종일 공영홈쇼핑을 틀어놓고 마스크 판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농협과 우정사업본부를 통한 정부의 마스크 판매 정책이 발표되자 농협몰과 우체국쇼핑몰에 접속자가 몰리며 접속 장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몇해 전부터 농협 콕뱅크 앱을 휴대폰에 깔아두고 사용한다. 종종 콕뱅크 앱으로 콕푸드(농협쇼핑몰)장을 보기도 하고, 우체국 쇼핑몰에서 생선을 사기도 한다. 가끔씩 SNS 농부 친구가 공영홈쇼핑에서 과일을 판다고 하면 눈을 크게 뜨고 방송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런데 마스크 판매 소식이 전해진 이전까지 나는 콕푸드와 우체국쇼핑몰이 접속 장애를 겪는 일을 본 적이 없다. 공영홈쇼핑이 검색어 1위를 기록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사러 접속했다가 다른 상품들도 쭉 둘러보게 될까? 여기서 농수산물과 생필품을 구입하게 될까? 이 쇼핑몰들이 오픈마켓과 대형마트의 온라인 쇼핑몰과 변별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공영홈쇼핑은 중소벤처기업과 농수산물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이고, 우체국 쇼핑몰 역시 전국의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곳이다. 농협몰은 농협의 공식 온라인 쇼핑몰이다.

먹거리가 생산, 가공, 유통, 소비되는 모든 과정에서의 공정함은 농협이 추구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농협은 “농협이 아니라 은행이다”, “누구를 위한 조직인지 모르겠다”는 비난 앞에서도 지난 수십년 동안 자기 개혁의 발걸음을 더디 해왔다. 개혁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 농업 생산량 조절, 정당한 수매가 책정, 적극적인 판매 등 제대로 된 자기 역할을 수행해왔다면 농협은 진작에 온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농산물 판매처가 되었을 것이다. 농협매장이 농협다웠다면 다시 로컬푸드 매장을 만들어내는 수고를 덜했을 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농민 중에 농협 조합원 아닌 사람이 있던가? 농협이 농협다워 지는 일은 대한민국 농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국민들에게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일이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산물을 사기 위해서, 우리 농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농협매장과 농협몰을 찾는 국민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농협이 자기 개혁의 길을 부지런히 가기를 희망해본다.

3.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영화 작은아씨들을 보았다. 어릴 적 읽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를 보다가 베스가 성홍열에 걸려 생을 달리하는 장면을 마주했다. 베스는 엄마가 가엾게 여기며 살림을 살펴주던 가난한 이들의 집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성홍열에 전염되었다.

어릴 때에는 막연하게 사랑스러운 베스가 죽었다는 사실이 슬펐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성홍열이 전염병이라는 사실과, 베스가 보살피러 갔던 집이 굶주림이 일상인 가난한 가정이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가난과 굶주림, 병자와의 접촉은 인류의 전염병 감염의 공식인 셈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여러 가지 건강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굳이 여러 통계를 나열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신종 바이러스들은 몇 년을 주기로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국민 건강을 증진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푸드바우처 제도가 신속히 도입되고 국민영양관리가 일상적으로 이뤄진다면 사회적 고민 하나를 줄여낼 수 있다. 각 지역의 푸드 플랜이, 중앙정부의 푸드 바우처제도 도입 노력이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시행되기를 바라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