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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우리가 농부를 만나는 방식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우리는 날마다 누군가가 심고 거둔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도 농부와 농업을 만나는 대신 상품을 고르고 소비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상품의 소비가 아니라 농부와 소비자를 밥상공동체로 연결시키는 일, 이것이 농업이 지속가능한 사회의 전제일 것이다.

몇 년째 농사를 짓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농부였던 시절이 있었을까 하고 농사를 짓던 일이 까마득한 옛일로 느껴지곤 한다. 처음 소규모로 농사를 지으려던 시절, 먼저 농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친구가 “농산물을 어떻게 팔지?”라고 고민을 말하자 꾸러미를 해보라고 권했다. 꾸러미 판매는 소비자가 농부의 후원자가 되어 생산부터 수확까지 함께 책임을 지어주는 일이라는 설명도 해주었다. 앞으로 농촌에서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꾸러미 판매 방식이 궁금해져서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 읽고 또 읽었다.

우리가 농산물 꾸러미라고 말하는 방식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였다. 가족농, 소농을 응원하기 위해 꾸러미를 신청해주신 회원분들 덕분에 초보 농부인 우리는 힘든 지도 모르고 농사를 지었고, 무엇보다 모든 농부들의 고민이라는 판매는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8월의 요즘처럼 태풍이 불어오면 꾸러미 회원분들은 피해는 없는지 연락을 주셨고, 일기예보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고도 하셨다.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을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지고 마음이 든든했다. 그야말로 꾸러미는 농부도, 회원들도 같은 마음이 되고, 같은 농산물로 밥상을 차리는 밥상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게 된 후에도 꾸러미 회원분들은 우리 가족의 삶을 한결같이 온 마음으로 응원해주셨다.

이런 경험을 갖게 된 때문이어서, 농산물을 사게 되면 누가 어떻게 키웠는지, 어떤 회사가 어떤 의미로 이것을 판매하는지를 나 역시 꼼꼼히 살피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농산물 소비자를 넘어 밥상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먹는 일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내가 더 이상 농부가 아니더라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농업과 농부를 만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식생활 교육을 하게 되었고, 농부와 요리사, 로컬푸드가 함께 하는 소셜다이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알고 있는 감자를 말해주세요”

“아오리 사과는 진짜 초록사과일까요?”

“황도, 백도, 딱딱한 복숭아, 말랑한 복숭아, 그 맛은 다 같을까요?”

“토마토는 모두 빨간색일까요?”

“눈을 감고 아리수 사과를 먹어보아요.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우리가 맛 본 복숭아를 그려볼까요”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사과 한 알을 위해 지난겨울부터 올해 가을까지 농부는 어떤 일을 할까요?”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이런 질문이 넘나드는 수업에 참여한 참가자들의 그림 속에선 주황 토마토, 크림색 토마토가 빨간 토마토와 나란히 놓여있고, 빨갛게 익어가는 아오리 사과가 햇살을 받고 있다. 사과 수확이 모두 끝난 한겨울에도 사과농부는 쉬지 않고 일한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먹거리 철학을 갖고자 하는 소비자인 나의 선택이 교육과 장보기를 넘어 외식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농사를 지어보고, 먹거리 교육을 하다 보니 생각이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몇 해 전에 여러 대기업에서 “이곳에 오면 농부와 제철 농산물을 만날 수 있다”는 대대적인 선전을 하며 한식뷔페 사업에 줄줄이 진출했다. 매장에는 각 지역 농부의 사진이 크게 들어간 현수막이 휘날렸다. 정말 그런 의미였으면 좋았겠지만 농부와 제철 농산물을 만난다는 대기업의 한식뷔페는 외식사업 아이템을 변경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기업들의 사업과 달리 진짜 로컬푸드를 알리기 위해 로컬푸드로 요리하는 식당을 인증해주는 지자체도 있고, 로컬푸드 매장에 로컬푸드 식당이 자리잡기도 한다. 사업 아이템과 유행으로서가 아니라, 특정 지자체와 매장이 없는 곳에서도 농부와 로컬푸드를 만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싶어져서 농부와 요리사와 제철농산물로 함께 하는 소셜다이닝을 시작했다.

이 소셜다이닝에서는 “수년간 양파 농사를 지어왔는데 올해는 쉬어갑니다. 한자리에서 오래도록 양파 농사를 지어서 양파에 병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서요.”

“다양한 품종을 심고 거둡니다. 저는 씨앗 농부입니다.” 하는 농부의 이야기가 맛으로 표현되어 식탁에 오른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농부를 만나고 정성껏 음식을 먹는다.

우리는 날마다 누군가가 심고 거둔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도 농부와 농업을 만나는 대신 상품을 고르고 소비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상품의 소비가 아니라 농부와 소비자를 밥상공동체로 연결시키는 일, 이것이 농업이 지속가능한 사회의 전제일 것이다. 교육을 통해, 더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여러 지역,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이런 일들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교육이 사회의 가장 근본교육이 될 수 있는 정책적 제도적 방침이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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