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사회적 약자가 조합원으로 같이 가는 길을 만들어낼 수는 없겠느냐고, 물류센터나 건물을 짓는 것보다 로컬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일을 할 수는 없겠냐고, 노조를 인정하고 진짜 상생을 할 수는 없겠느냐고, 생협들 서로가 연대할 수는 없겠느냐고.


나는 A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이다. 농촌에 사니 생산자조합원인가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소비자 조합원이다. 그러나 이용을 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농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살 때에는 매장을 이용하는 일도 쉬웠고, 생활재 구입일 이라고 지정된 날에 주문한 물건이 배송 되는 것을 기다리는 일도 참을만했다. 생협에 가입한 것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가치에 동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물건 도착이 늦어지더라도 그 물건을 쓰는 것만큼 산 것에 의미를 두었기에 정 필요하면 친환경전문매장에서 조금 사서 쓰기도 했다. 그러니 물건이 늦어진다고 별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농촌에 살기 시작한 이후에는 생협 매장은 도시로 나가야 있고, 지정된 날을 이용하는 것도 다른 대체 매장이 있지 않으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마음도 변했다. 친환경농산물이 아니면 어떠랴. 이 땅의 6%밖에 남지 않은 농민들이 농사를 지은 것인데 싶어졌고, 생협이 아니면 어떠랴 좋은 농산물을 공급해주는 좋은 유통인들이 있는걸! 싶어졌다. 농장 직거래도 하고, 로컬푸드 매장도 이용하고, 공정무역을 이용하기도 했다. 

생협의 이용실적은 해마다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소식지는 반갑게 집으로 날아왔고, 휴대전화에 문자도 종종 남겨졌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전화도 받았다. 몇 해 전 어느 날, 이용 실적이 저조하다며 이용을 많이 해달라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여기는 농촌이라 이러저러한 면에서 생협 이용이 어렵다는 말을 전했는데 그냥 알겠다고만 하셨다. 농촌에 있는 소비자 조합원들이 생협을 잘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달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러냐고만 하셨다. 어쩐지 소외감이 들었고, 영업 대상이 된 것 같았다. 

생협에게 조합원은 누구인지, 어떻게 생각되는 사람들인지 묻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 뒤로 그 때 통화한 그 사람의 문제이지 생협의 문제는 아닐거야 하면서 생협을 탈퇴하지는 않았지만 생협을 잘 이용할 수 없는 조건에 대한 아무런 미련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강의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먹거리 정의와 관련된 이야기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분들이 계시거나, 먹거리 교육의 중요성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자리를 가리지 않게 가고 있는 편이다. 생협에서도 종종 불러주시곤 한다. 

조합원 교육을 할 때, 식생활 강사를 양성할 때 그 때마다 생협은 왜 가난한 사람들의 밀집 거주 지역에 매장을 만들지 않는지, 조합비 장벽을 낮출 생각은 없는지, 경제적 약자가 조합원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생산자들을 위한 더 적극적인 노력이 있을텐데 그런 방안에 대한 논의는 있는지, 물류센터보다 더 중요한 걸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여쭤보곤 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부분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뭐 이런 문제제기가 다 있어 하고 마뜩잖은 표정을 지어 보이시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가끔씩 생협은 누구와 지향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요즘 B생협이 뉴스에 오르내리곤 한다. 생협에 걸맞는 아름다운 소식이면 좋으련만 아니다. 노조와 조합원을 탄압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노조 탄압이 벌어진 B생협의 00파크는 농촌에서 6차 산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분들이 견학처럼 자주 찾아가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무얼 보아야 하는가? 사회적경제와 상생을 말하는 조직이 행하는 일이라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당하게 해고를 하고, 거긴 우리 회사가 아니다하기도 하고, 출퇴근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원거리 배치도 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인사들에게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경고성 내용증명도 보내고 있다. 사실 이건 경고가 아니라 협박이다. 

농촌과 도시의 공생을 꿈꾸는 협동의 경제는 노동자와는 불가능한 일인가? 사회적 비판을 받는 일은 피해야하는 일인가? 생협 맞아? 묻지 않을 수 없게끔 말이다.

그동안 생협은 우리나라 먹거리 운동의 중심에 서 있어왔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유기적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왔고, 학교급식과 공공급식 운동을 해왔고, GMO의 문제점을 알려왔으며, 농업 발전을 위한 정책적 제도적 보완책을 제기해 왔고,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노동탄압과 노동권 보장에 대해 말해왔다. 생협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 그리고 앞으로 해나갈 일들은 한 두가지가 아니며 그 중요성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생협의 길을 감히 다시 묻고 싶어진다. 사회적 약자가 조합원으로 같이 가는 길을 만들어낼 수는 없겠느냐고, 물류센터나 건물을 짓는 것보다 로컬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일을 할 수는 없겠냐고, 노조를 인정하고 진짜 상생을 할 수는 없겠느냐고, 생협들 서로가 연대할 수는 없겠느냐고 말이다. 

먹거리 정의는 생산, 유통, 가공, 소비되는 모든 과정에서의 공정성을 기본으로 한다. 이것이 생협 정신일 것이다. 그저 먹거리 정의 운동을 하는 한사람으로서 생협이 먹거리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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