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농업은 그 자체로 인류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온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농업 없이 삶은 유지되지 않으며, 농업에서 수많은 산업과 예술이 파생되고 발전되어왔다. 기술과 산업의 발전은 수많은 산업을 도태시키지만 농업은 기술을 담아낼 뿐 도태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평일 저녁 6시, 공중파 TV는 정보 프로그램의 보고처럼 맛집, 생활의 비법, 개성 넘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 중에 농촌의 풍경과 생활, 농산물을 소개해주는 코너가 각 정보프로그램마다 꼭 들어가곤 하는데 전국노래자랑처럼 이미 전국을 한번 돌고 또 돌고 몇 번을 돌았을 텐데도 여전히 소개해줄 농촌마을도, 농산물도 많은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농촌의 정경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을 보는 소소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코너는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많이 보는 정보프로그램이라는 00정보통의 ‘찾아라 미스터 리’라는 코너인데 사진 한 장에 담겨진 비경을 찾아내 똑같은 사진을 찍어낸다는 명분으로 소개해주는 지역의 이곳저곳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하고, 비경을 찾아 사진에 담아낸 모습을 보노라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구나 싶어 가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저런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무척 많은 분들이 TV 정보프로그램의 농촌 관련 코너를 재미있게 보실 텐데, 내가 농촌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대 때였다.

20대 때 문화유산 답사 모임에 들어가 한동안 답사를 다닌 적이 있다. 한 번은 호남쪽 사찰을 돌아보는 답사를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 모임 회원 중 한분이 고향집이 가깝다고 하셔서 내친김에 그분의 고향집에도 들르고,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자는데 의기투합이 되어 예정에도 없이 우르르 그분의 고향집에 가게 되었다.

시골 버스를 타고 구례로 기억되던 고향집으로 향하던 그 길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는데 생전 처음 보는 다락논들이 끝없이 줄지어 이어지고 있었다. 논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이 아름다운 곳에서 난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저절로 생기가 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게는 구례가 끝없이 이어진 아름다운 다락논으로 기억된다.

나도 농촌인 장수에 살게 되고, 논농사를 짓게 되면서 종종 구례의 다락논이 떠오르곤 했다. 왜 논을 다락논 형태로 만들어 농사지을 수밖에 없었는 지, 모내기부터 수확까지,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 해야하는 그 논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이 얼마나 고되고 숭고한 것인 지, 저절로 알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농촌에서 살게 되고, 또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 탓에 이런 저런 일에 참여를 하게 되면서 어쩌다 6차 산업, 농촌관광에도 관여를 하게 되었다. 농촌의 농도 모르던 시절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다락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강렬하게 농촌에 매료된 경험이 있는 탓에,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농업이 어떻게 형성되고 농민의 삶을 담아내고 있는지, 그 공간과 삶을 담아낸 음식이 어떻게 우리 밥상에 오르고 있는지를 알려내는 것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농촌관광이라는 것이 뜬구름 잡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수확하고 가져가는데 열중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농부가 있는 농촌, 경관이 있는 농촌, 농업을 이해하는 농촌 프로그램을 시행해보곤 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가중요농업유산 제도가 있다. 농민이 해당 지역의 환경과 사회, 풍습 등에 적응하는 동안 형성된 유형 또는 무형의 농업자원 중 국가가 보전 가치를 인정해 지정한 농업유산을 말한다.

현재까지 국가농업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9개 곳으로 전통 온돌방식인 구들장 방식의 통수로가 논바닥 밑에 설치된 청산도 구들장논,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밭을 둘러싼 돌담 제주 밭담, 산수유 군락과 낮은 돌담, 지역고유의 재배기술을 보유한 구례 산수유농업, 죽순 생산, 농기구이용 및 전통죽제품 생산하는 담양 대나무밭, 인삼재배·가공·유통의 대표지역인 금산의 인삼농업, 지리산 산간지역에 차밭을 만들어 경관과 지역문화를 형성하고 전통차 가공기술을 유지 보전하는 하동의 전통차농업, 금강송의 체계적 보존과 복원, 체험과 동식물이 함께하는 울진의 금강송 산지 농업, 산뽕나무 군락과 전통잠실, 뽕나무 재배와 양잠의 부안 유유동 양잠농업, 화산섬의 척박한 급경사지 지형에 해무를 수분으로 이용해 공급하며 경축순환농법을 활용하는 울릉도 밭농업 시스템이 그것이다.

단기간에 무엇이 이루어진 곳은 없다. 지역특징과 농업, 경관과 농민들의 삶이 어우러지는 곳, 이런 곳들이 국가농업중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단 이곳들만 중요한 농업유산일까?

농업은 그 자체로 인류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온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농업 없이 삶은 유지되지 않으며, 농업에서 수많은 산업과 예술이 파생되고 발전되어왔다. 기술과 산업의 발전은 수많은 산업을 도태시키지만 농업은 기술을 담아낼 뿐 도태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먹거리 정의는 농업이 우리사회의 숭고한 유산임을 인식하고, 농업과 농촌, 농민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농업을 유산이 아닌 사양 산업 취급을 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상징적인 지역의 농업이 아니라 농업 그 자체가 위대한 유산임을 우리사회가 인식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교육과 관련 제도들이 마련되고 발전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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