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농업을 어떻게 유지하고 농촌에 어떻게 사람을 살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농촌이 먹고 살만한 곳이 되면 된다…몇억, 몇십억짜리 이런저런 사업비 다 모아서 농민기본소득제를 실시한다면 농촌은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고, 장날은 북적북적 그야말로 시장통이 될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1972년생이다. 내 기억 속 어린 시절의 엄마 손은 시장으로 나를 이끌고 가던 손이었다. 따뜻한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없는 게 없어 보였다. 지금은 강원도에 가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서울의 미아 1동과 7동에 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그 시장에는 수수부꾸미가 있었고, 밀가루 반죽과 튀김가루를 잔뜩 묻혀 한껏 부풀어진 핫도그도, 철을 바꾸어가며 가판대에 놓이는 다양한 과일들도, 신문지에 둘둘 말아주던 생선들도 내 눈을 반짝이게 했다. 엄마에게 조르고 매달려보면 “그거 사줄 돈 없다니까” 하는 타박 아닌 타박과 동시에 핫도그가 내 손에 들리곤 했다. 그렇게 내 기억 속 시장은 늘 풍요롭고 들썩이는 곳이었다.

이제 더 이상 엄마 손을 잡고 따라나서지 않아도 내 스스로 물건을 사게 되었을 때에는 세상이 바뀌고, 대형마트가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가끔씩 동네 시장을 누벼보기는 했지만 나 역시 시장 대신 대형마트에 가는 일이 더욱 많았기에 내가 다시 시장을 즐겨 다니게 되리라고는 생각해볼 수도 없었는데 장수에서의 삶은 나를 다시 시장으로 불러들였다.

처음 장수에서 살기 시작한 때에는 ‘장날, 장날, 많이들 말하지만 농촌이라고 어디 예전같은 장날은 아니겠지. 장날이 뭐 대수겠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막상 시장이라고 나가보면 그다지 새로운 것도, 사고 싶은 물건도,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꼭 사야할 물건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어느새 3일과 8일이 되면 “아 오늘 장날이지” 하면서 시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금세 고장날 것 같이 생긴 소형 라디오도 ‘밭일할 때 가지고 나가면 그만이겠네’ 하게 되고, 말린 옥수수도 ‘시장 안 뻥튀기 집으로 가지고 가야지’ 하게 되었다. 모종이 뭔가 새로운 게 있나 좌판도 살피고, 통 얼굴 한 번 못보던 사람들 얼굴도 보게 되고, 얼굴도 모르는 누가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알고 오게 되곤 했다. 곱게 꽃단장하고 나온 할머니들, 손에 물건을 담은 비닐봉투를 잔뜩 쥐고 터미널에서 농어촌버스를 기다려 타는 어르신들은 정겹기도 애잔하기도 했다. 장날은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 날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커다란 문화 자산이라는 것을, 그 자체로 공동체라는 것을 살면 살수록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장날, 아무리 활기찬 기운이 시장을 맴돈다고 해도, 장날의 시장은 이제 늘 북적이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씩 장날, 그 작은 시장에서는 시장 살리기 자선 문화공연도 열리고, 무슨 방송국에서 가요제 같은 프로그램을 촬영하기도 한다. 도시에서는 시장에 문화를 입히고, 새로운 자원을 도입하면 장기적인 효과는 차치하고라도 시장으로 사람의 발길을 돌려세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촌의 장날이 한산해지는 것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2017년 8월 기준 농촌지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42.5%에 달한다. 두 사람 중에 한사람은 65세 이상인 셈이다. 교통약자에, 노쇠해져 근력이 나날이 떨어지는 어르신들이 언제까지고 장날이라고 시장으로 나서실 수는 없는 일이다.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는 이상, 농사지을 사람이 사라지는 걸 걱정해야 하는 것처럼 장날이라는 농촌의 문화 자체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장수의 1개읍 6개면에서 장이 서는 곳은 이미 손에 꼽힌다. 어디 장수만 그럴까? 전국의 모든 농촌에서 하나둘 장이 사라지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곳, 고령자 비율만 늘어나고 학생 수가 줄어드는 곳, 장날은 그런 곳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농촌의 지속가능성 정책의 연장선 안에 놓이지 못하고, 시장 살리기라는 개별 사업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대안시장을 꿈꾸며 지역에서 열리는 플리마켓과 직거래장터는 장날과 같이 모두의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먹거리가 정의롭다는 것은 농업을 지키고, 농촌 공동체 문화를 지키는 일이 기본이다. 농업을 어떻게 유지하고 농촌에 어떻게 사람을 살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농촌이 먹고 살만한 곳이 되면 된다. 언젠가 어느 공무원이 “어떤 사업을 하면 가능성이 있을까요” 하고 물으시길래 “몇억, 몇십억짜리 이러저런 사업비 다 모아서 농민기본소득제를 실시하면 되겠지요” 하고 대답했다. 건물만 남기고 마는 농촌사업, 무슨무슨 사업으로 살아난 농촌, 시장 살리기로 살아난 시장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장날 이야기하다 기본소득이라니 논리의 비약이거나 뜬금없는 일로 여겨지지 않기를. 농민기본소득이 되면 농촌은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고, 장날은 북적북적 그야말로 시장통이 될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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