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거긴 비 안 와? 읍은 지금 소나기 오는데!” 열흘 넘게 비가 내리는지 묻는 전화를 받았다. 한 달이 넘어가니 주변 사람들도 함께 걱정을 하고 있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뒤 가장 많이 이용하는 날씨 앱을 틈만 나면 확인하지만, 실망만 하는 나날이었다. 7월 8일 이후, 한 달하고도 열흘간 비가 내리지 않고 있었다.

비가 반가워지려면 한참이 걸릴 줄 알았다. 지난 해 ‘500년에 한 번 올 만한’ 폭우로 인한 섬진강댐 수해를 경험한 후, 난 비가 두려워졌다. 올 봄에도 이제껏 알던 보슬보슬 봄비가 아니라, 한 여름 소나기같은 장대비 내리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때면 잠을 설쳤다. 캄캄한 마당에 랜턴을 들고 나가 비가 얼마나 오는지 시간마다 확인했다. 그렇게 두려워진 비를 35도를 웃도는 한여름에 볼래야 볼 수 없었다.

밭에서 말라가는 작물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결국은 600리터 물통에 물을 채워 트럭에 싣고 밭을 돌아다녔다. 노지 고추가 주작물인 나는 자칫 고온에 뿌리가 타버릴까 걱정이 되어, 충분한 양의 물을 제대로 주기 위해 한 주 한 주 신경을 썼다.

상하수도가 아닌 5개 마을의 공동 정수장 물을 쓰는 우리 집 수도에서도 평소보다 훨씬 적은 량의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는 것이 몹시 불편해졌다. 물을 써야 할 일이 많은 시기에 동네에 비가 내리질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 쓸 물도 줄어든 상황에 밭에 줄 물을 채우는 게 눈치가 보여 결국 물주기 마저 중단했다. 그렇게 말복이 지났다.  

8월 19일, 읍내 공방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차창에 떨어지는 것이 있다. 읍내는 며칠 전부터 꽤 많은 양의 소나기가 지나갔지만, 우리 동네는 아니었다. 빗방울이 나와 함께 밭으로 가줬으면 했다. 동네에 가까워질수록 와이퍼의 속도가 빨라졌다. 한 달 하고도 열 하루만에 우리 동네, 나의 밭에 내리는 비였다! 두렵고 원망스러운 비가 다시 반갑고 고마운 존재로 돌아왔다. 1년만의 급격한 변화다.

농사는 하늘의 뜻이라는 말을 믿었다. 그렇게 겸손하게 자연에 의탁하며, 하늘이 주는 만큼 수확하고 감사하며 살고 싶었다. 내 의지와 노력, 욕심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농사임을 지난 4년간 배우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 겪는 이런 급격한 변화가 정말 하늘의 뜻일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노지 고추농사를 짓는 나에겐 지난 여름의 폭우도, 올 여름의 가뭄도 재난이다. 무더위와 가뭄, 그리고 홍수와 싸워야 하는 계절이 여름이라지만, 극에 닿은 날씨가 급격하게 반복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하늘의 뜻이라기 보단, 인간이 만든 변화가 아닐까? 난 인간이 초래한 재난같은 날씨를 고스란히 밭에서 겪어 내고 있다.

책임 정도를 한 명 한 명에게 따질 수 없고 그 피해는 그저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니, 기후 변화는 정말 재난이다. 인간이 만든 재난에 휘둘리며 농사를 짓고 싶진 않아 화가 난다. (농사 초짜가 능력 부족을 날씨 탓하며 투정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극심한 폭염과 가뭄을 겪으면서도, 붉은 열매를 만들어 내는 고추의 인내와 강인함에 마음이 누그러든다. 

내가 밭에서 체험하는 기후 변화의 공포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기후가 아닌 사람들의 일상을 어떻게 변하게 할 수 있을까? 건고추를 닦고 꼭지를 제거하느라 손도 바쁘고, 질문에 답을 찾느라 머리도 바쁘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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