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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사와디카, 나의 새로운 태국인 친구들!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그들 나라의 월급과 비교하면 엄청 많은 월급이라고만 강조치 말고,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순 없을까? 뺏기기 두려운 귀한 노동력을 가진 외국인노동자들이 우리 농촌의 한 구성원으로 존중 받는 모습이 먼 미래가 아니길 기대해 본다.


“아나씨, 바빠? 우리 집에서 일하는 태국 사람들이 갑자기 떠나겠다는데 말이 안 통해. 지금은 진짜 바쁠 때라 안 되는데 큰일 났어. 3년은 일 하기로 하고 왔는데! 내일 와서 얘기 좀 해봐줘.” 농사를 크게 짓는 지인의 전화였다. 온 가족이 함께 농사를 짓지만, 워낙 대규모다 보니 두 달 전 처음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다고 알고 있었다.

지인이 내게 도움을 청한 까닭은 구례로 오기 전 내가 태국 치앙마이에서 3년 정도 살았고, 생존형 태국어를 조금 할 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활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실력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다음 날 그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일요일이었다. 지인의 집 쪽으로 향하며 전화를 했더니 “아, 난 밖이고, 지금 금내리에서 일하고 있거든. 금내리로 가 봐.”한다. 일요일이니 쉬고 있겠거니 생각한 것은 내 착오였다. 농촌에서 휴일은 비오는 날 뿐인 것을... 도시나 공업단지의 경우에는 주로 일요일이 휴일이라 외국인노동자센터나 한국어교실이 일요일에 진행되지만, 농촌 외국인노동자들의 현실은 달랐다.

두둑이 잘 만들어진 600평 밭에서는 옥수수 파종이 한창이었다. 두둑 위로 몸을 구부려 호미로 구멍을 내고, 앞치마에서 씨를 꺼내 흙 속으로 집어넣은 뒤, 한 걸음 떼어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지인의 어머니가 부부를 불렀다. “사와디카(안녕하세요).”라는 내 인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밭 근처 정자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의 부족한 태국어 실력 탓에 의사소통은 쉽지 않았다. 구글 번역기도 쓰고, 손짓 발짓도 하며 들은 그들의 이야기는 이랬다. 3년간 한국에서 일하려고 입국했고, 구례로 오기 전에는 다른 지역 하우스에서 6개월 일했다. 하우스 농가에서는 한 겨울에 일이 없어 월급을 줄 수 없다 했다.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일할 곳을 찾다가 이곳으로 왔다. 이곳 사장님네는 친절하지만, 밭일을 할 때 너무 춥고 힘들다. 마침 다른 지역 하우스에서 일하는 친구가 자리가 생겼다고 했다. 내일이면 두 달이 꽉 차는 날이라 모레 옮기려고 했다는 것이다.

지인은 이 부부가 3년간 같이 일하기로 했다고 오해를 했다. 부부는 전반적인 한국 농촌 상황이나 계절 변화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물론 의사소통의 어려움 탓이다. 한국에 도착한 뒤, 하우스에서 반복적인 일을 하며 가을을 보냈던 부부에게 노지에서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이곳의 일들은 매일 매일 도전이었다. 한국에서의 첫 겨울, 추위에 적응하는 것만도 힘든데 노지에서의 노동은 훨씬 고됐을 테다. 따뜻한 하우스 농가를 찾아 옮기고 싶었을 마음이 이해가 됐다. 그렇더라도 농번기에 코로나까지 덮친 지금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건 너무 곤란하다고 부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앞으로 한국 날씨는 점점 더워질 것도 알려줬다. 이들은 새 일자리를 소개한 친구와 이야기 해 보기로 했다.

다음 날, 다시 전화가 왔다. “남겠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어. 적어도 7월까지는 있어 줘야 한다고 정확히 말 좀 해줘.” 전화를 건네받은 태국인이 내게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저희가 여기에서 일하면 사장님네가 모두 행복한건가요?”였다. 한 번도 뭐라고 한 적이 없는데, 자신들의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다며 걱정하던 부부는 7월까지 있기로 했다. 그 때도 하우스 일을 더 하고 싶고 친구들이 많은 지역으로 옮겨가고 싶다면,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한국농어민신문의 3월 17일자 1면의 헤드라인, “외국인 계절근로자 입국 연기, 영농철 일손부족 비상”이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 탓에 생긴 농촌의 또 다른 문제다. 동남아 식료품을 파는 유일한 읍내 마트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앞 사람이 계산대에 올린 물건 대부분이 태국 식재료였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불쑥, “콘 타이 마이카(태국인이세요)?”라며 말을 걸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이들 옆에는 고용주처럼 보이는 분이 있었다. “어느 동네에 계세요?”라고 묻는 내게 그는 “구례에 있죠 뭐.”라며 마지못해 대답한 뒤, 태국인들과 함께 급히 사라졌다. 그 땐 생각지 못했는데, 어쩌면 그는 내가 자신의 인력을 빼앗아 갈까 두려웠던 건지 모르겠다.

우리 농촌에서 외국인들이 책임지는 노동력이 얼마나 큰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꽤 오래된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이해의 노력이나 배려의 시스템은 농촌 사회에서 얼마나 증가했는지 잘 모르겠다.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가 어떤 자연환경과 문화적 배경에서 한국으로 왔는지 간단한 개요라도 확인하는 고용주는 얼마나 될까? 농촌 일이란 것이 쉬는 날을 정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지만, 기본 안정장치인 휴일은 얼마나 보장하고 있을까? 이국땅에서 모국어로 이야기하며 익숙한 음식을 함께 먹는 친구란 삶의 고단함을 푸는 큰 위로인데, 지역 내에 그런 친구가 있는 농촌의 외국인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무엇보다 그들이 그저 노동력으로만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 나라의 월급과 비교하면 엄청 많은 월급이라고만 강조치 말고,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순 없을까? 뺏기기 두려운 귀한 노동력을 가진 외국인노동자들이 우리 농촌의 한 구성원으로 존중 받는 모습이 먼 미래가 아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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