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병에 담아 팔거면, 실링캡이랑 수축 필름 정도는 기본적으로 해야 되는 거 아냐?” 농촌에 살기 전에는 내가 무언가를 파는 일, 즉 장사를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농사를 지으며 살면, 생산한 농산물을 누군가에게 팔고 그 교환의 대가로 생활의 일부를 감당하는 장사를 해야 함을 뒤늦게 알았다.

그런데 먹거리 장사를 하는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지적은 상품의 맛과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포장에 관해서다. “감말랭이 정말 맛있더라. 근데 포장은 좀 바꿔 보는 게 어때?”, “네 밤조림 주변에 선물로 돌려 보게 포장을 좀 고급스럽게 해 봐.”

이전에는 생산물을 주변에 나눠 주기만 했지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 때는 집에 있는 아무 박스에 담아, 상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싸서 보내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돈을 받고 보낼 때는 뭔가 달라져야 했다. 수확물 중에 색이나 모양이 좋고 크기도 큰 것만 판매용으로 선별하는데, 내용물만 챙겨선 안됐다. 포장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상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포장’이 나의 농장사 생활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내 일상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를 줄이는 삶을 꿈꾸며 농촌으로 왔다. 하지만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선 포장재라는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들게 되는 딜레마에 놓였다. 상품이 팔리면 기뻐야 하는데, 마냥 기쁘지가 않다. 상품 하나가 택배 포장 되어 나갈 때 발생하는 쓰레기들이 내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딜레마를 해결해야 했다.

포장재로 플라스틱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 소재가 아닌 농산물 포장재는 극히 드물다. 고춧가루나 감말랭이처럼 밀봉 포장 되어야 하는 경우, 가장 쉬운 포장재는 지퍼백류다. 지퍼백은 플라스틱 소재가 대부분이다. 차선책으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생분해성’ 지퍼백을 찾았다. 기업이 아닌 소규모 농가가 인터넷에서 구매 가능한 생분해성 지퍼백은 몇 개 안된다. 다양한 디자인에 내용물을 부각시켜 주는 기존 지퍼백들과 비교하면, 상품이라기 보단 집에서 쓰기 위해 담아 놓은 느낌을 준다.

검색을 하고 또 해서, 크라프트 종이를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PLA) 위에 코팅한 포장재를 찾았는데 품절이었다. 포장재 회사로 전화를 했더니 국내에서는 생산이 안 돼 대만에서 수입해 오는데, 워낙 판매량이 적어 더 이상 수입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은 반복됐다. 볏짚, 밀짚, 옥수수 전분 등 생분해 되는 바이오매스 소재의 포장재나 기발한 방식의 종이 포장재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구매가 어려웠다.

반면에 다른 나라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데 국내에서는 흔히 사용하는 포장재도 많았다. 나는 액체가 있는 가공품은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병에 담아 열탕으로 밀봉해 판매한다. 그런데 액체가 뚜껑에 닫는 것을 막는 용도로 쓰는 실링캡, 물리적으로 액체가 세는 것을 방지하기 보단 뚜껑을 열지 않은 새 제품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수축 필름 같은 것이 없는 내 병 포장품은 자주 입방아에 올랐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식품의 경우 포장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위생적이라 여기고, 스티커나 박스가 없으면 돈을 주고 산 상품이라 보지 않는 듯하다.

감과 밤 수확을 시작하며, 이를 가공해 담을 포장재를 준비한다. 지난 해 반응을 바탕으로 수없이 알아 봤지만, 딜레마는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다. 몇 개 없는 선택지 중에 고른 플라스틱이 아닌 소재들로 포장하니, 덜 예쁘고, 덜 세련돼 보일테다. 심지어 가격은 더 비싸다. 조금이라도 환경에 해가 덜 되도록 친환경 소재로 된 포장재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의지를 언제까지 지켜나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왜 플라스틱을 대체하거나, 자연 분해되는 소재의 농산물 포장재를 개발하는 국내 업체는 드물까? 왜 정부는 농산물 포장재 지원 사업을 펼칠 때 친환경 소재의 포장재를 구입하도록 권장하는 조항을 넣거나, 가격이 높아 친환경 포장재 구매를 망설이는 농가를 지원하는 정책을 펴지 않을까? 포장되지 않은 농산물을 자신의 장바구니에 담아 가는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거나, 포장되지 않은 농산물을 판매하는 상점이 늘어나는 건 어떨까? 해결 못 한 딜레마를 품고서 수없는 질문과 상상만 한다.

물론 포장재 개선 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포장재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이 분명한 당면 과제는 소비자들의 의식이 변하고, 정부가 마트나 기업을 일정 부분 규제할 때 현실화 된다.

쓰레기 문제가 연일 뉴스에 거론되고 있다. 농산물을 포장해 판매하는 농민 역시 이 문제를 만드는 주범 중 하나다. 화학 농약이나 비료 사용을 줄인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곳으로 우리 농촌의 프레임을 전환하고자 힘써 왔다면, 이젠 농산물을 담는 포장 역시 친환경으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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