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우리 음식은 손이 많이 가. 귀찮여. 우리야 어릴 적부터 하고 살아 손에 익어서 한다지만, 젊은 사람은 하지 마~ 배우지 말어!” 마침내 뒷집 할머니에게 두부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됐다. 두부를 함께 만들면서 할머니는 끊임없이 뭐 하러 이런 걸 배우냐고 핀잔이시다.

뒷집 할머니는 농한기인 겨울이 되면 정기적으로 두부와 도토리묵을 만드신다. 그리고 한 모씩 얻어먹을 때 마다 나는 부탁을 해 왔다. “어머니~ 뚜부랑 묵 쑬 때 저도 좀 불러 달라니까요~ 저 진짜 배우고 싶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날 부르지 않고 혼자 뚝딱 만드신 뒤, 맛보라고 부르기만 하셨다.

설을 앞두고 두부를 만들 것이 분명해 이번엔 약속을 받아 뒀다. 약속한 시간 보다 일찍 갔지만 할머니는 이미 불린 콩을 갈고 계셨다. “옛날엔 콩을 다 맷돌로 갈아야 허니 힘들었지만, 요즘은 이 닉샤기(믹서)가 있어서 뚜부 만들기도 쉬워 졌어~” 날이 추워 이틀 전부터 불렸다는 메주콩을 믹서에 조금씩 넣으면서 곱게 갈았다. 이미 뒤꼍 화덕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양은솥에 물을 끓이기 위해서다.

곱게 간 콩물을 팔팔 끓는 솥에 부어 한소끔 끓였다. 할머니의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해 나는 정신없이 화덕에 나무를 집어넣으며 불을 살폈다. 이렇게 화덕을 써야 할 때를 위해 일 년 내내 주워 모은 나뭇가지들이 화덕 옆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끓인 콩물을 면포 주머니에 붓고 물만 짜냈다(이 콩물의 잔유물이 비지다). 그 물을 다시 솥에 붓고 끓였다. 이 때 잘 보지 않으면 물이 넘쳐 버리기 때문에 잘 지켜보고 있으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어느 정도 끓였다 싶을 때 간수를 넣으셨다. 곧 몽실몽실 순두부가 떠올랐다. 순두부로 변한 물을 다시 면포를 깐 두부판에 부었다. 그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 물을 빼기 시작했다. 두부를 사 먹어 본 적 없다는 할머니는 두부 전용 나무 틀, 채반,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발, 면포 등을 다 갖춰 놓으셨다. “요로코롬 두고 물 빠지길 기다렸다가 썰어 묵으면 돼~. 할 수 있겄어?”

그토록 고대했던 두부 만들기 수업 틈틈이 나는 사진을 찍었다. 할머니는 늘 내가 사진을 찍을 때 마다 “별걸 다 찍어싸~” 라며 희한해 하셨다. 할머니에겐 너무나 일상적이고 설명 필요 없이 손에 익은 과정들이 내겐 사진과 녹음 기록이 없으면 따라 하기가 힘들다. 기록이 있어도 나 혼자 하려면 막막하기 일쑤다. 선생님이 늘 곁에 있어야 실력이 생길 듯하다.

뒷집 할머니에게 배울 건 두부와 묵 만드는 법만이 아니다. 설 준비만 해도 배울 것 투성이다. 늙은 호박이 많다고 호박 조청을 만들고, 말려 놓았던 쑥을 손질해 쑥인절미를 하셨다. 가래떡을 뽑고, 두부와 묵을 만드셨다. 구례 특유의 방법으로 유과와 부각을 숯불에 구워 만들고, 닭고기를 뼈째 토막 내어 닭장떡국 끓일 준비도 하셨다. 말려 뒀던 옥수수 알을 발라 뻥튀기도 해 오셨다.

이젠 힘이 부치셔서 방앗간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작업은 다 할머니 손으로 하신다. 모두 할머니가 키우고 채취하여 수확한 농산물들로 만들어 지는 먹거리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뒷집 할머니뿐만 아니라 동네 대부분의 부엌에서 이런 먹거리들이 만들어진다. 설 명절 뿐 아니라, 구례의 자연 환경과 식생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긴 먹거리들이 계절 마다 있다. 나는 동네 어머니들의 부엌이 궁금하고, 그 안에서 만들어 지는 먹거리들을 배우고 싶다.

배우고 싶은 삶의 기술은 여러 가지다. 무슨 작물이든지 재배법부터 손질하여 보관하는 법까지 모르는 농사일이 없다. 하지만 이것저것 물어 보는 내게 어머니들은 손사래 치신다. 뭣 하러 고생스런 것을 배우려 하냐고, 요즘 같이 편한 세상에 돈만 있으면 다 된다며 배우지 말라 하신다. 이 분들이 가진 삶의 기술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내 능력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워 나는 그저 웃기만 한다. 

훌륭한 선생님은 단순히 기술만 가르치지 않는다. 오랫동안 쌓인 삶의 기술뿐만 아니라 지혜 역시 어느 철학자 못지않다. 특히 할머니들이 던지는 삶의 위로는 그 무게가 남다르다. “어째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촌으로 들어 온 겨~. 그래도 절믕께 몸만 움직이면 이 촌에선 다 묵고 살어! 우리도 다 그리 살았어.” 동네 어머니들이 고생스레 농사짓지 말라는 잔소리만큼 자주 하는 말이다. 꿋꿋하고 성실하게만 살면 농촌에선 다 먹고 살 수 있으니 걱정 말라는 이 말에 나는 힘을 얻는다. 어머니들이 그리 살았다고 하니까, 나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직 겨울이 한참 남은 것 같은데 정월대보름이 지났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올 해는 마을마다 하던 큰 행사인 달집태우기를 다들 하지 않았다. 여느 해 보다 빠르고, 달집태우기도 없으니 대보름이 지난 게 실감나질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밭마다 할머니들이 나와 계셨다. 대보름이 지났으니 올 해 농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겨울잠에서 깨어나 새 농사를 준비하라고 나의 선생님들이 직접 몸으로 알려주신다. 아직 겨울이 남았거니 하며 게으름 피고 있었는데, 밭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올 한 해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배우게 될까? 선생님들 곁에서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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