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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새로운 나의 습관, 현수막 읽기

[한국농어민신문]                     

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얼마나 대단한 행사 길래 현수막들이 이렇게 줄지어 걸렸을까? 궁금해 하며 가까이 갔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작은 이익에 철쭉 재배, 우리 땅이 아파요!”, “논 철쭉 재배 잔류농약, 우리 밥상 농약” 동네에서 동네를 이어 가며 철쭉 재배에 각성을 요구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도 주변의 새로운 변화를 포착하는 것을 좋아했다. 익숙한 동네를 걸을 때도 발보다 눈이 바빴다. 하지만 늘 새롭게 내걸리는 현수막에 신경을 쓰진 않았다. 현수막은 노골적인 광고가 주를 이루고,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의례적 구호만 있을 뿐이라고 여겼다. 나와 별 상관없는 정보나 구호들이 전경을 망치고 쓰레기만 만든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만 했었다.

그런 내가 구례에서는 현수막 거치대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는 시간이 잦다. 현수막을 ‘읽는’다.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다. 구례 현수막도 광고와 공고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편이다. 서울에서와 달리 내 일상에 왜 현수막 읽는 시간이 생겼을까? 현수막들을 분석해 보며, 내게 새로운 습관이 생긴 원인을 생각해 봤다.

40%는 상점이나 음식점, 마트 등의 개업 혹은 이벤트 광고를 목적으로 한다. 또 30% 정도는 관내에서 열리는 행사 홍보다. 이런 현수막들은 사실 도시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도 열심히 읽는다. 구례에서는 새로 생긴 음식점, 상점 하나도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질 높은 교육·문화 활동도 현수막을 통해 알게 되는 편이니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런 현수막들은 깜빡하고 있던 계절의 변화나 읽지 못했던 지역의 분위기도 알려준다. 별 상관없는 정보라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이곳에선 관련 없다 부인하기가 어렵다. 거대한 도시에서와는 달리, 물리적으로 작은 이 공간에서 나의 지역사회를 발견하나보다.

20%는 군청을 비롯한 여러 관공서의 공고용 현수막이다. 새로운 복지 서비스를 알리기도 하고, 변경된 규칙이나 시행령을 안내하기도 한다. 인터넷 공지가 일상화된 도시에 비해 여전히 인터넷 접근성이 떨어지는 주민이 많은 탓이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가진 강점이 분명히 있다. 인터넷으로는 주로 혼자 보고 말지만, 현수막은 여럿이 함께 보는 경우가 많아 공고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나머지 10% 정도는 내가 ‘정치적 현수막’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내가 습관처럼 현수막을 읽게 된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이 정치적 현수막 탓이다. 누구네 집안의 자녀 혹은 손주의 승진이나 합격, 수상 등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자주 걸린다. “축! 토지 김XX씨네 장남 아시아나항공 기장 승진!” 이라던가 “축 합격! 광의 고XX의 손자 남도 씨름대회 우승!”과 같은 현수막들이다. 처음엔 귀엽고 재미있다가, 차츰 궁금해졌다. 저런 현수막은 누가 돈 들여 거는 것일까? 집안사람이 하려나, 그 사실을 아는 주위 사람이 하려나. 개인적인 집안 경사를 공개하는 것이 어쩌면 민망하기도 할 텐데... 왜 구례에선 많이 보일까?    

축하를 내세웠지만, 명성을 떨치기 위한 목적이 강해 보이는 현수막은 평범한 개인의 것만이 아니었다. 면장, 기관장, 조합장, 군의원 심지어 군수의 개인적 활동이나 수상 소식도 내걸리는 것이 목격됐다. 한 번이라도 더 사람들 눈에 이름이 띄도록 하는 것이 지역사회에서는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안이나 단체의 힘을 키우는 방법 같다. 사적인 내용으로 공개적인 정치 활동을 하는 방식에 현수막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 정치적인 현수막이 최근 내게 큰 놀라움을 준 일이 있었다.

같은 군내에서 2개의 면과 읍을 통과해 또 다른 면으로 이동해야 할 일이 있었다. 도로 중간 중간, 못 보던 현수막이 연속해 붙었다. 얼마나 대단한 행사 길래 현수막들이 이렇게 줄지어 걸렸을까? 궁금해 하며 가까이 갔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작은 이익에 철쭉 재배, 우리 땅이 아파요!”, “논 철쭉 재배 잔류농약, 우리 밥상 농약” 동네에서 동네를 이어 가며 철쭉 재배에 각성을 요구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져 있었다.     

언제부턴가 철쭉 묘목 재배를 위해 논을 임대해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통상 임대료의 2배에서 3배가 높은 금액을 지불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농사짓기 어려워진 땅을 철쭉 농사로 내어주신다. 그런데 철쭉 농사는 일반 채소에 비해 제초제와 농약 살포 양이 훨씬 높다고 한다. 철쭉 농사를 지은 땅은 이후 3년 정도 쌀 재배가 어렵고, 당연히 친환경이나 무농약 인증 받기가 불가능한 땅이 된다. 개선되어야 할 문제지만 개인의 이해득실이 얽혀 있어 쉬운 일이 아니다. 관에서도 모른 척 하고만 있다. 이를 농민이 속한 다양한 단체들이 동시에 목소리를 드러내며 공론화와 평화적 해결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은 것이다. 진정한 현수막 정치의 사례였다.    

시간이 갈수록 현수막에서 내가 아는 이름들도 하나씩 보이고, 참여하는 활동이나 모임에서 건 현수막도 생겨난다. 그렇게 내가 구례라는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일 테다.

소소한 습관이 되어버린 현수막 읽기. 더 다양하고 의미 있는 현수막들이 지역 곳곳에 걸려 있는 상상을 해 본다. “모든 친환경 농산물! 구례 농협이 전량 수매 합니다” 라던가, “여성 청년회원을 모집 합니다” 라던가, “어르신 교통 바우처 안내를 위한 가정 방문합니다” 등등. 아! 그렇게 현수막이 많아지려면, 친환경 소재 현수막 제작 업체나 재활용 업체도 생겼으면 좋겠다. 그럼 더 즐겁게 다양한 현수막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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