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읍에 가셔요?” “잉~ 서울의원 갈라고. 주사 하나 맞아야 쓰것어.” 첫 차를 기다리는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들과 인사로 나누는 이런 대화는 매번 반복된다. 읍에 나가는 이유가 한두 가지 추가될 뿐, 할머니들이 읍으로 나가는 이유는 한결같다. 병원에 가기 위해서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속에 탈이 생겨 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무릎이나 허리, 팔 등의 관절 물리치료나 진통 주사를 맞기 위해서다.

버스에 탄 많은 어르신들이 읍내 병원 거리에서 우르르 내려, 통증을 완화할 곳을 찾아 흩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하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늙을까?’ 자주 생각해 본다. 나는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해 온 것도 아니고, 종종 요가도 하고 산책도 하니 어르신들처럼 병원에 의존하며 지내진 않을 거라며 찾아오는 불안감을 몰아낸다.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며 몸이 노쇠해 지는 건 거스를 수 없으니 그 과정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다독인다. 즉, 나이가 들면 생기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노화 탓이 아니라, 농민으로 산다는 것은 건강에 위협을 받으며 사는 것임을 최근에 깨달았다.

귀농귀촌 교육을 들을 때 알게 된 김 선생님은 광주 인근에서 유기농토마토 농사를 지으신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귀농했지만, 직접 하우스를 짓고 관리할 뿐 아니라 유기농 농사법도 모르는 게 없어서 나의 농사 멘토 중 한 분이다. 장마라 농사일도 못할 때라 오랜만에 선생님의 하우스를 찾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6월에 이미 토마토 작기를 끝내고, 서울에서 허리 수술을 받고 내려 오셨단다.

“디스크가 심해져서 청담동에 잘 한다고 소문난 척추전문병원에서 수술 받고 왔어. 6인실 환자 중에 네 명이 농사짓다 온 사람이더라고. 허허허. 공동 간병인이 그러더만. 이 병원 환자 대부분이 농사짓다 온 사람이라고.”

선생님의 수술 소식과 병원 상황을 들으며 충격에 빠졌다. 선생님은 건장한 체구를 가졌고, 평생 농사지으며 늙은 분이 아니라 귀농한지 이제 10년 좀 넘었을 뿐인데 허리 수술을 받으셨다니! 서울 척추전문병원 환자 대부분이 농민이고, 평균 1000만원의 수술비를 납부하고 있다니!
그날 밤 나는 농민들의 건강 실태에 대한 자료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의료·보건 분야의 연구는 많지만,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양에서부터 적었다. 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의 의료·보건을 다루는 연구들을 몇 개만 훑어봐도 그 결론과 제언이 반복되고 있었다. 연구 결과 문제점으로 지적한 부분과 제안한 정책들이 사회에 반영되진 않기 때문일 것이다.

농촌의 의료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상식적인 사실은 제쳐두고, 도시민에 비해 농민들의 건강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의료비 지출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농촌·도시 건강실태 및 의료비용 효과 비교와 정책과제>란 제목으로 2019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농촌의 유병률과 사망률이 도시보다 높아 농촌 주민이 건강격차를 겪고 있다’고 했다. 도시에 비해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건강 불평등이 초래 된 것인지, 신체에 가해지는 노동 강도가 높아서 건강 지표가 낮은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 농민들의 건강은 도시민에 비해 취약하다는 의미다.

또한 단위 의료비용이 높은 것으로 보아 병이 심각해져서야 병원을 방문하고, 도시민에 비해  의료 비용 효과성도 낮다고 분석했다. 실외에서 반복적인 자세로 일을 해야 하는 농사일의 특성에 의해 생기는 근골격계질환이나 자외선에 의한 피부와 안구질환 등은 노동 현장으로 봤을 때 산재에 속한다. 하지만 산재보험이 없는 농민은 노동으로 생긴 병의 의료비를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그 의료비에는 도시로의 접근을 위한 시간적, 경제적 비용은 빠져 있다.  

다른 육체노동에 비해 농사일로 병을 얻거나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는 경향이 줄지 않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농사일은 다른 분야에 비해 기계화와 자동화가 안 된 부분이 여전히 많다. 대규모 농사에 적합한 기계들은 가격이 비싸고, 소농을 위한 기계나 기구는 거의 개발되어 있지 않다. 적당한 기계나 기구의 도움이 없으니 고스란히 몸을 써야만 한다.

또 공동 작업이 많은 다른 노동현장에 비해 농사일은 주로 개인이 하는 편이다. 단체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예방 운동을 한다거나, 적절한 쉬는 시간을 가지기가 어렵다. 혼자 밭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쓰러졌을 때, 사망 후에야 발견되어 사망률이 높다는 사실은 씁쓸하고 무섭다.

장마로 인해 밭일을 일주일 이상 쉬었더니 희한하게 무릎에서 신호가 왔다. 시큰거리고 앉았다 일어서기가 힘들다. 쉬면서 알았다. 내 무릎도 반복되는 작업으로 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밭에 가면 늘 밀린 일감에 마음이 바빠져 보조 의자도 안 쓰고 쪼그려 앉아 몇 시간씩 쉬지 않고 일하고, 무거운 것도 덥석덥석 들어 옮기곤 했다. 초보 농부의 몸에겐 적응할 시간이 필요 했는데, 그 시간을 주지 않았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어도 몸이 고장 나면 할 수 없다는 경각을 얻은 장마가 끝나가고 있다. 비가 그치고 밭에 나갈 땐 새로 산 보조의자 잊지 말고 챙겨야지. 알람 맞춰 놓고 한 시간에 한 번씩 스트레칭 하기도 꼭 지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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