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그 나이에 벌써 귀농 한 거예요?”라고 누군가 내게 물으면 대답하곤 한다. “아뇨. 구례로 이사 온 거예요.” 구례로 오기 전, 꽤 많은 귀농귀촌 교육을 들었다. 교육에서는 귀농자와 귀촌자를 구분했다. 귀농과 귀촌 사이에서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 보곤 했다. 농부로 살고는 싶지만 귀농자라기에 나는 농사로만 생계를 유지할 자신도 없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다른 귀촌자들처럼 은퇴 후 전원생활을 하거나, 프리랜서 전문직도 아니었다. 귀농도 귀촌도 아니니, 구례로 ‘이사’ 온 것이라 표현하기로 했다.

이사 후 지난 2년간 농사지은 땅은 모두 임대였다. 주변에서 집은 임대해서 살아도 농사는 내 땅에 지어야 한다고들 했다. 돈이 많다면 농지 구입 이야기는 다른 차원일 것이다. 크든 작든 땅을 산다면 대출을 받아야만 하는데 밑천도 없고, 연고도 없는 나는 농촌형 흙수저라 할만하다.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오면 대출 없이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기대와 달리 내 농지를 가지려면 빚을 져야했다. 빚을 지기가 싫었다. 더군다나 구례에서 남은 평생을 살겠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런 이유들로 나는 이 곳 저 곳 살아보고 싶은 곳이 이 지구별에 너무 많다고 허세를 부리며 땅 구입을 미뤘다.

지난 해 약초 농사를 짓느라 임대료를 주고 빌린 동네 밭에서 일 년 못 되 쫓겨났다. 빌린 밭이지만 내 작물이 자랄 땅이니 미생물 발효액을 정기적으로 뿌리고, 호미질하다 나오는 돌이며 비닐 조각을 골라내고, 퇴비도 듬뿍 줬다. 하지만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 완벽히 잡초가 제거되지 않은 밭이 주인 할머니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공들였던 땅에서 쫓겨나고 보니, 왜 어른들이 농사는 내 땅에서 지어야 한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땅을 바로 사지 않고 보류했다. 계속 농사지으며 살고 싶은 건 확실해졌지만, 농지를 우리 동네에서 구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두 상황을 겪으며 농지 매입을 보류하기만 했던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올해 임대한 밭 하나는 면소재지 마을 안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 눈을 늘 의식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처음엔 후회를 했었다. 하지만 면 전체 유일한 마트가 있다는 점이 후회를 매력으로 바꿔놨다. 나는 일 하다 지칠 때면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는 마트를 들락거리며 새참 먹는 재미에 빠졌다.

새참을 사 먹으면서 발견한 사실 하나. 많은 동네 사람들이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갔다. 아직도 외상이 가능한 가게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도시의 편의점이라면 외상으로 물건을 가지고 나올 수 있을까? 외상이 가능하다는 것은 농촌 지역사회에는 관계망이 유지되고 있고,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가 여전히 많다는 의미였다. 나는 우리 동네의 그 관계망과 신뢰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밭일을 하며 참새 방앗간처럼 자주 마트를 출입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스크림 두 개를 집어 들었는데 계산대의 직원이 말했다. “바 아이스크림은 세 개에 천원이에요. 한 개면 육백 원이구요. 세 개 사서 두 개는 지금 먹고, 하나는 나중에 와서 먹어요.” 몇 백 원을 아끼며 다음에 공짜로 먹는 듯한 아이스크림 하나가 생긴 것 보다, 내게도 이 동네에 관계망이 생긴 듯 해 기분이 몹시 묘했다.

두 번째 상황은 며칠 전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발생했다. “아나씨, 우리 어머니가 아나씨네 밭에서 고들빼기 캐가는 사람들한테서 고들빼기 뺏어 놨어. 와서 가져 가.” 면소재지 마을 안 밭에는 고추를 심었었는데 고추와 지지대 정리 작업을 마쳐 땅바닥이 드러난 상태였다. 밭에는 희한하게 잡초처럼 저절로 자란 고들빼기가 많았는데, 아주머니 세 분이 지나가다 차를 세워 놓고 고들빼기를 캐고 있었단다. 그 상황을 친하게 지내는 이웃의 시어머니께서 보시고 혼을 내며 내가 임대한 밭에서 도시 사람들이 캔 고들빼기 봉지를 뺏었단다.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도시민이 지나가다 고들빼기를 좀 캐 가는 것 정도는 봐 줄 수 있는데 뭘 굳이 뺏으셨나 했다. 그런데 할머니의 그 마음을 상상하니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맡겨놓고 오던 날의 그 느낌이 다시 밀려왔다. 문득, 나도 이 동네에 땅을 갖고 싶어졌다.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내가 농사지을 땅 구입을 보류했던 것은 사실 방어 기제였다. 앞날은 알 수 없다느니, 빚지기 싫다느니는 다 핑계였다. 귀농귀촌 교육을 통해 나는 시골 사회 텃세가 얼마나 심한지, 외지인이 속지 않고 땅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수없이 들었다. 나 역시 이웃들에게 상처를 받진 않을까, 속아서 땅을 사진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언제든지 이 동네가 싫으면 떠나면 된다고, 땅이 생기면 떠나기 어려워질테니 사지 말자며 미뤘던 것이다.

올 한 해 무농약 고추 농사를 지었던 밭도 내년엔 지을 수 없게 됐다. 지난해처럼 쫓겨나는 것은 아니지만, 급히 농사지을 땅이 필요한 주인 할아버지의 조카분 상황 탓에 어쩔 수 없다. 또다시 농사지을 땅을 구해야 하는 신세다. 메뚜기처럼 이 땅 저 땅 찾아 다니는 신세 탓에 내 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확실해 진 것은 아니다. 이 동네가 한 마지기 밭 매입에도 큰 고심과 용기가 필요한 나의 방어 기제를 풀게 만든 것이 더 큰 이유다.

내 생애 두 번째 농사가 마무리 되고 있다. 아직은 그저 농사가 재미있는 나는 혹시라도 경작지를 구하지 못할까 걱정도 된다. 쉽지 않을 테다. 그래도 내년, 세 번째 농사는 우리 동네 내 땅에서 짓는 상상을 하며 그 걱정을 눌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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